한국기독공보 현장칼럼 2021.09.03.
코로나 확산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았던 때, 새벽 2시에 아이 둘이 동시에 열이 나고 창백해지다가 금방이라도 까무러칠 것 같았다. 둘이 각자 다른 이유로 아팠던 것 같은데 급할 때는 판단력도 떨어지는 것 같다. 119를 부르니 신속하게 요원들이 도착했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맸고 신도 벗지 않은 채로 들어와 코로나 여부부터 확인을 했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고 상태도 호전되어 한숨 돌리고 그 일은 헤프닝으로 끝났다.
왜 그런지, 어찌될지 '알지 못 하는' 상황이 되니 한 시간도 안되는 그 짧은 시간이 며칠이나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지고 두려움으로 마음이 극도로 위축되는 것을 경험했다. 이처럼 늘 평온하게 살던 중에 어느 날 한 심각한 사건을 겪으면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원망섞인 말을 내뱉은 적이 누구나 다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삶에 어쩌다가 한 번 등장하는 그 불편한 상황'을 매일 겪는다면 과연 어떨까? 삶이 지옥같다고 느낄 수도 있다.
모금을 하게 되면서 수많은 선한 단체가 돌보고 섬기는 이들의 이야기를 매일 듣게 된다. 너무 절망적이어서 과연 그들이 잘 견뎌낼 수 있을지 마음을 졸일 때도 많다. 부모의 이혼으로 증조 할머니와 살고 있는 7살 어린이, 엄마가 감옥에 있어 언니를 엄마처럼 알고 크는 세살배기 아이,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수입이 없어 월세가 밀리고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된 사람,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고 이혼 후에 혼자 아이를 돌보며 생계도 책임져야 하는 엄마, 희귀난치병을 앓는 아이를 밤낮 보살피며 보험도 되지 않는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아빠. 이들의 삶은 매일이 고난이다.
고난을 계속 겪다보면 어느 날엔가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오히려 절망의 늪에 빠지기 쉬울 것 같다. 심지어 그 고난의 이유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요한복음에 기록되었듯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누구의 죄로 인함인지, 자기 때문인지 그 부모 때문인지' 탓할 곳을 찾고 싶지만 그 답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어둡고 절망적이며 암울하기만 할까.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정부가 돌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도처에 널려 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세상에 내던져진 청소년들은 실수하기도 쉽고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다. 한 번 실수했다고 평생을 포기하고 살지 않도록 그들의 상처를 싸매고 위로하고 돌보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일들은 한 두 차례 찾아가 돈 몇 푼과 선물 좀 건넨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매일 유혹받고 매일 실수하고 매일 좌절하는데, 매일 매일 또 일어설 수 있도록 오래 참고 사랑하고 기다려주고 의지가 되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렵기도 하다. 그들 속에서 함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깨어진 가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심리적으로 불안해 자해를 반복하던 한 아이를 돌본 목사님이 계셨다. 밤이나 낮이나 아이로부터 연락이 오면 찾아가 쓰레기 가득한 방을 치우고 먹을 것을 주고 어깨를 두드려 주며 그 아이에게 희망을 들려주기를 몇 년간 계속 하셨다. 실은 그렇게 돌본 아이들이 꽤 많았다. 오랜 시간 후에 그 아이가 고백했다고 한다. '세상에 내 편이 없는 줄 알았는데, 목사님이 제 편이신 걸 알았어요.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이 계신 것도 알겠어요.'
세상이 아무리 지옥같이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소망이 있는 사람은 살아갈 이유가 있다. 살기 힘든 것은 조건이나 상황때문이 아니라 그 마음에 소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들 한다. 뭐라도 부여잡고 살아내고자 하는 마음이 인간에게 있다. 그 때 한 줄기 빛이 되는 것은 어마어마한 희생이 아니라 한 마디의 위로, 작은 인정과 사랑, 작은 것이라도 나를 위해 내어주는 마음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내 편이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낼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겠는가.
2021년은 참으로 각박하다. 코로나로 인한 오랜 단절, 그로 인한 우울증와 울화감의 증가, 세상에 대한 염증과 비판의 목소리가 사방에 넘쳐난다. 그 와중에 아프간 난민들 391명이 한국 땅을 밟았고 이들에 대해서 환영과 염려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답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에 있을 것이다. 더욱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할 일은 비판과 염세가 아니라 눈을 들어 산을 보고, 도움이 어디에서 올지를 구하는 것이다. 응답하라, 2021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