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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작꼬작 Jul 12. 2023

내 차가 찌그러졌다

적반하장, 사필귀정, 쌤통!

(커버 이미지: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보험사에 보냈던 자료)


내 차를 모래언덕에 긁어먹고 비싼 수업료를 치른 후, 3년간 아무 일 없이 차를 잘 타고 다녔다.


그리고 코비드 팬데믹이 조금 사그라들고 있던 2021년 10월 무렵, 한 동네 축제에 다녀오던 길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 날벼락에서 배운 것들을 우선 간추려보자면,

1. 차 사고가 나면 꼭! 사고 현장의 사진과 영상을 찍어야 한다는 것

2. 보험에는 반드시! 렌터카 옵션을 넣어야 한다는 것

이렇게 두 가지였다.


축제를 잘 즐기고 집에 오는 길, 마트에 들러서 뭘 사갈까, 하는 평범한 대화를 하며 주택가를 지나고 있었다. 이 주택가는 양쪽으로 집이 늘어서 있어서 항상 '공과 아이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늘 천천히 다니는 길이었다.


갑자기, 앞에서 흰 픽업트럭이 후진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자기 집에서 도로로 나오는 중이었다. 속도가 꽤 빠르다 싶어서 차를 멈췄는데, 엥? 내 차 가까이까지 와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후진을 했다. 경적을 울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트럭의 뒷부분이 내 차를 누르는 게 느껴졌다.


상대방도 우리도 차에서 내렸다. 내 차 운전석 부분이 찌그러지고 상처 난 것이 보였다. 어이없게도, 상대방은 우리에게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맨발로 픽업트럭에서 뛰어내리다시피 내린 그 사람은 언뜻 봐도 우리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였다.


스페인어로 뭐라고 중얼거리던 그 사람은 우리에게 차를 빼자고 했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차를 두는 게 폐가 될 것 같아 일단 그러자고 한 후 한쪽으로 차를 댔다.


차에서 내려 나는 사진을 찍고, 남편은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잘 들리지 않는 기계 음성에 남편은 고군분투를 했다. 처음 신고해 보는 거라 어떤 정보를 묻는지 대답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우리가 차를 살펴보고 있는 동안 사고를 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길을 건너온 그는 이웃집 아저씨였는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다 들었는데, 그쪽 잘못이 절대로 아니에요. 보험사와 경찰에 신고하세요.'

사고를 당한 데다 삿대질에 고함도 들어서 어안이 벙벙했는데 이 말에 용기가 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목격자로서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아쉽게도 그분은 자기는 차고에 있어서 듣기만 했을 뿐, 보지는 못했기에 목격자는 되어줄 수 없다고 했다. 이웃 간의 관계도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비록 목격자는 되어주지 못하셨지만, 나에게는 제삼자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 것 자체가 큰 용기가 되어주었다.


사고가 난 곳으로 가자 그 맨발의 운전자는 자기 차에 반쯤 올라타있고, 부모님과 동생 두 명까지 온 가족이 총출동해 차를 둘러싸고 있었다.


보험사에서 운전면허증과 보험증을 교환하고 헤어지라고 했으니 정보를 달라고 하자, 갑자기 그쪽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런 정보를 준다는 건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한다는 뜻이라며, 자기 잘못은 없으니 정보를 줄 수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때까지 침착했던 우리도 소리지름을 당하자 화가 났다. 경찰에 신고하라고 윽박을 지르길래 '그래, 신고해!'라고 맞대응했다. 그쪽에서는 '네가 해!'라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


경찰에 전화하자 다친 사람이 있는지, 차가 고장 나 길을 막고 있는 상태인지를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럼 경찰은 출동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상대편이 소리를 지르며 위협적으로 나온다, 면허증도 보험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한다고 말하자 스피커폰 통화를 요청했다.


경찰과 통화한 후에야 그쪽에서는 마지못해 보험과 연락처를 줬다.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발생했던 일을 사실 그대로 적어두는 것이었다.

이전의 사고 경험을 통해, 곧 보험사에서 전화가 올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한 장소, 사고 당시 내 운행 속도, 순차적으로 있었던 일들 -트럭을 보았고, 멈췄고, 경적을 울렸고, 부딪혔다-을 기록해 뒀다.


보험사에서 에이전트가 배정되었고 전화가 왔다. 역시 사고 경위를 물었고 다친 곳이 없는지도 물었다. 상대방의 보험 정보도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보험 약관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 것인지 알려주었다.


이번에는 일이 좀 더 복잡했다. 유효 기간이 지난 보험증을 내민 상대방 때문에, 보험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였다.


1. 상대방이 무보험일 경우,

1-1. 나의 보험 중 Uninsured Motorist 조항으로 수리를 해야 한다.

1-2. 이 경우 디덕터블 $1,000을 내가 지불해야 할 것이다.

1-3. 차를 렌트할 수 있는 조항에는 가입되어 있지 않다. 차가 수리되는 동안 렌트한 비용은 모두 내가 내야 한다.


2. 상대방 보험이 유효할 경우,

2-1. 누구의 잘못인지를 가려야 한다.

2-2. 그런데 목격자나 영상 증거가 없으므로, 차의 대미지를 보고 전문가들이 감정할 것이다.

2-3. 평가가 완료될 때까지 몇 달의 시간이 걸린다.

2-4. 상대방 과실로 결론지어질 경우, 수리 비용이나 렌트 비용을 상대방 보험사에서 지불해 줄 것이지만 우선은 내가 내고 환급 (reimburse) 받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이런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정리하느라 머리털이 빠지는 것 같았다.


앞부분이 보기 싫게 구겨져버린 차를 타고 다니기를 열흘, 보험사 에이전트로부터 반가운 연락이 왔다. 상대방 보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UM이라는 최악의 경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과실을 따질 일이 남았다. 현장에서 찍어온 사진을 첨부해 보냈지만, 차를 옮기는 바람에 사고 당시의 사진이 없어서 서로 말로써 과실을 주장하는, 'word vs. word'의 상황이 되었다. 


사진으로 우리 잘못이 아닌 게 증명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상대방에서는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denied liability) 주장했다. 길에 있는 자신을 우리가 뒤에서 박았다고. 정말 그렇게 믿고 있어서 한없이 당당하게, 맨발로 삿대질까지 하며 소리를 지른 것인지, 보험사에 변명한답시고 그렇게 말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손상 부위를 바탕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문적으로 감정하는 보험사 사람들끼리 잘못을 가릴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도, 상대방 보험사에서 연락이 온 순간부터 우리의 디덕터블은 면제 (waive) 되었다.  


혹시 모를 가능성 때문에 차를 렌트하지 못했다. 상대방에서 렌트 비용을 내주지 않을 것이 걱정되어서였다. 차라리 우리 보험에 렌터카 보장 약관이 있었다면 마음 편히 차를 빌렸을 텐데, 한 달에 몇 달러 더 내는 것이 아까워 이런 불편을 감수하게 될 줄 몰랐다. 


남편은 차로 15분 거리를 버스로 1시간 15분을 걸려 다니기 시작했다. 버스를 놓치거나 환승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더 걸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동안 나는 집에 꼼짝없이 묶여있어야 했다. 차가 있고 운전을 하는 친구들이 가끔 놀아주러 집에 왔고,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친구들에게도 아주 고마웠다.


또 다른 불행은 차 수리 일정이 한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담당자가 수리 완료를 약속했던 날에만 통화를 했음에도 여러 차례 기한이 늘어났다. 2주였던 기한은 3주로, 한 달로, 한 달 2주로 미뤄졌다. 단 한 번도 독촉하지 않았지만, 계속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마지막에는 약간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결국 10월 초에 맡겼던 차를 찾아온 것은 11월 넷째 주 수요일,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바로 전날이었다.



두 달에 가까운 인내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대시캠을 달았고 렌터카 조항을 보험에 더했다. 


사고 현장의 사진을 야무지게 찍었으면, 그래서 상대방 보험으로부터 과실의 백 퍼센트가 그쪽에 있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면 걱정 없이 차를 렌트해서 편하게 다녔을 텐데, 하는 후회가 컸다. 상대가 후진하는 순간의 영상이 담긴 대시캠 (블랙박스)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속 시원했을까!


대시캠을 달지 않았던 이유는 스트릿 파킹을 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아파트는 건물 뒤에 지정 주차장이 있었는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파트 앞 도로에 주차를 하는 데다 '대시캠이 있으면 그걸 뜯어가려고 차 창문을 깬다.'는 말을 들어왔던 터라 오히려 차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대시캠을 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차를 찾아온 후, 우리는 금방 대시캠을 사서 달았다. 도로변보다 훨씬 안전한 지정 주차 자리가 생겼고, 몇 년 사이에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에서도 대시캠이 흔해지고 가격도 비싸지 않기 때문에 굳이 그걸 뜯기 위해 도둑질하는 일이 없다는 말도 들었다. 



평상시에 운전을 할 때에도, 나는 항상 사고 발생 시 행동 요령을 생각하고 하는 편이었다. '사고는 어느 때나 발생할 수 있고 그 사고를 겪어야 진짜 운전자가 된다'는 요상한 철학을 갖고 있기도 해서, 누가 운전에 관해 물으면 '아직 사고도 안 나 본 초보'라고 대답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사고가 발생하고 상대방이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버벅거렸다. 머리로만 아는 것과 실제 겪는 것의 차이가 이런 것인가 보다. 

사고 발생 시 행동 요령. 지나고 나니 이 모든 것을 빼먹지 않고 하기는 했는데, 매끄럽지는 않았다. (출처 ValuePenguin)


또 이 사고로, 미국에서 사고가 나면 언성 높일 일이 없다는 통념도 박살(..)이 나 버렸다.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마지막으로, 보험 회사에서는 끝내 과실 비율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달라는 내 이메일은 씹혔다. 보험료가 갱신 때에도 오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우리 잘못이 없는 것으로 처리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몇 년 후, 다른 보험사로 옮길 때 'Letter of Experience'라는, 일종의 사고 기록 조회를 해 보았을 때 내 과실은 0으로 되어 있었다. 상대방 과실 100으로 아마 보험료가 꽤나 올랐을 것이다. 쌤통이다!




대시캠을 쓸 일이 그 후로 전혀 없기를 바랐지만,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다른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앞이 아닌, 뒤가 받혔다. 다음 글은 비교적 처리가 쉬웠던, 또 한 번의 사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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