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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작꼬작 Jul 15. 2023

결혼기념일에 사고라니

고무 타는 냄새의 정체가 뒤차였을 줄이야

작년 6월 10일은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마침 금요일이길래 미리 레스토랑에 저녁 식사 예약을 해 놓고, 남편은 학교로, 나는 튜터링으로 각자 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처음으로 블루라인 트롤리(지상철)를 타 보는 날이었다. 튜터님과 샌디에이고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 갔다. 튜터링이 끝나고 트롤리역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고 잠시 집에 갔다가 학교로 남편을 데리러 가는 게 내 일정이었다. 


집에 가는 익숙한 길을 아무 생각 없이 운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끼익, 하는 소리. 동시에 코를 찌르는 고무 타는 냄새. '누가 운전을 잘못했군.'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뒤에서 충격이 왔다. 운전을 잘못한 그 사람은 바로 내 뒤차였고, 내 차를 들이박은 것이다!


사고 현장에서


사고가 난 곳은 고속도로였다. I-5 고속도로에서 SR-52 고속도로로 나가는 길이면서 동시에 길먼 길 (Gilman Drive)에서 고속도로로 나오는 출구이기도 해서, 교통흐름이 꽤 복잡한 곳이다. 


오후 세시 경이었지만 차가 꽤 많아서 서행하고 있었다. 앞 차가 멈췄다 출발했고, 나도 멈췄다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얼떨떨했지만, 저번 사고에서 배운 걸 기억했다.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내린다. 사고 상황을 찍기 전에는 차를 옮기지 않는다. 상대방과 말싸움하지 않는다.


몸이 놀랐는지 손이 떨렸지만 카메라를 켰다. 동영상 모드로 바꾸고 차에서 내려, 상대 차와 내 차를 찍었다. 상대방은 옆으로 차를 빼라고 (역시나)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기다리라고 했다. 


차를 찍고 있는 사이, 지난번 차 사고 때의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절한 사람이 나타났다. 트럭을 운전하는 분이었는데 샌디에이고 시 공무원이신 것 같았다. 


그분은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 때문에 위험하니 길가에 서 있으면 차를 대신 옮겨주시겠다고 제안했다.  차를 옮기는 동안 상대방과 정보를 교환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감사하다고 연신 말씀드리고 한쪽으로 비켜섰다. 


내 차도 내 차였지만 상대방 차는 어이가 없을 만큼 부서졌다. 내 차는 뒷 범퍼 아래쪽이 떨어지고 후방등이 깨지는 정도였지만, 상대 차는 앞부분이 완전히 망가져서 알 수 없는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다. 

당황스러울 만큼 구겨져버린 상대방 차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내 범퍼 조각. 알고 보니 저 차는 내 나이보다도 오래된 차였다.

이번에는 전보다 정상적인 사람이 운전자라, 다치지 않았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사고가 난 후에 아픈지 안 아픈지를 바로 알 수 없기 때문에, 향후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확답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다. 등에 충격이 왔고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차를 다 옮겨주신 아저씨가 와서 구급차 (Medic)를 부를지 물으셨다. 나와 상대방 모두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는 고속도로 순찰대 (Highway Patrol)에 벌써 연락을 하셨다. 


상대방의 이름, 연락처, 운전면허증을 받고 내 것도 줬다. 순찰대분들이 와서 보험정보도 교환하라고 했는데, 이 나보다 한참 어린 운전자 (운전면허증에는 생년월일이 쓰여있다.)가 당황했는지 보험 앱에 로그인하는 번호를 모르겠다고 한다. 


당황스러웠지만 옆에서 순찰대분들이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을 찾아오면 된다고 안심시켜 줬다. 이 사람이 그렇게 나 빠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는데,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운전해도 될지 아닐지 확신이 가지 않는 차를 타고 상대방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 보험 회사에 연락하려고 했는데 순찰대분들이 만류했다. 안전한 곳에 가서 하라고. 


사고 후 처리 과정


차 사고가 났지만 아무튼 남편을 데리러 가야 해서 바로 학교로 갔다. 오는 길에는 남편이 운전을 했다. 집에 와서 보험사에 사고를 접수하고 또 같은 과정을 겪었다. 


다행히 그날 저녁, 상대방의 보험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후에는 이전과 거의 비슷했다. 


1. 클레임을 접수하고, 2. 보험사와 통화하고, 3. 정비소에 차를 맡기고, 4. 차를 찾아온다. 


수리비는 일체 내지 않았고, 우리 보험사인 AAA가 상대 보험사에 구상권으로 청구할 것이었다.


뒤차가 앞차를 박은 경우에는 뒤차 과실이 100으로 잡힌다. 이번에는 대시캠에 확실히 녹화된 장면도 있어서 과실을 다툴 여지도 없었다. 그래서 마음 편히 차를 수리할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지불식 간 일어난 사고 때문에 근육이나 인대가 놀랄 수도 있다지만 아직 내 몸이 튼튼하다. 


혹시나 아플까 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변호사 선임을 추천했다. 변호사를 선임하면 병원비와 차 수리비는 물론 별도의 보상금까지 받을 수 있다. 상대 보험 회사에서 지불한 합의금을 변호사, 병원, 사고당사자가 같은 비율로 나눠 가진다고 했다. 


아팠다면 변호사를 생각했을 테지만 아프지 않아서 차를 수리하는 것으로 사고 처리를 마무리했다. 상대방 측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도 이럴 줄 몰랐다는 듯, 갓길에 쭈그려 앉아 머리를 감싸 쥔 상대 운전자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와중에도 좋은 일이 있다면


이 일로 차를 렌트했는데, 이번에는 정비소에서 부품을 다 가져온 후 연락을 주면 차를 맡기는 식으로 변경되어서 2주 만에 렌터카를 반납하고 내 차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마 그전 해에 부품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홍역을 치른 후 방식을 바꾼 것 같았다. 


렌트했던 차는 뷰익 앙코르였다. SUV를 몰아보니 느낌이 새삼 달랐다. 나쁜 일 사이에 좋은 일 하나는 이렇게 새로운 차를 몰아보는 경험이었다. 


또 한 가지, 사고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주는 친절한 분들께 고마웠다. 지난번에는 이웃집 아저씨가 내 편이 되어주었고, 이번에는 지나가던 분이 도와주셨다. 고속도로 순찰대 분들도 어찌나 멋있던지. 


비록 일 년도 안 되어 또 사고가 났지만 아무 곳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잃어버린 결혼기념일 저녁 식사는 다음 날, 영화 데이트로 대신했다. 


이게 마지막 사고였다면 참 좋았겠지만, 또 내 차는 찌그러지고 수리받을 일이 생기게 된다. 이번에는 고속도로 순찰대가 아닌,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다음 글은 마지막 사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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