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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작꼬작 Oct 03. 2023

육개장과 탕수육을 집에서 해 먹는다는 것

어떤 요리든 일단 집에서 해 본다

(커버 사진: 몇 년 전 추석, 집에서 해 먹는 명절 요리들. 미국에 온 첫 해부터 우리는 명절마다 상을 차렸다.)


미국으로 오랫동안 가 있을 것이라고 한 친구에게 말한 날, 그 친구가 그랬다. 

"너, 거기 가면 별 거 다 집에서 해 먹고 있는 너를 발견하게 될걸?" 


맞다. 필리핀에서 일 년, 미국에서 일 년, 해외생활을 겪어본 그 친구의 말처럼 지금 나는 집에서 별 걸 다 해 먹는다. 


지금도 그다지 뛰어난 요리 실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결혼 전에는 더더욱 처참했다. 십 대 시절부터 요리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주방에는 물 마실 때 밖에 안 들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후자였다.


라면이라도 끓일라치면 물을 못 맞추기 일쑤, 밥 지을 줄도 모를만큼 요리의 '이응'과도 관련이 없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더 심해서 퇴근길에 피자 한 판 사들고 룰루랄라 집에 가는 일이 잦았다. 혼자 살아본 적도 없다. 


엄마는 부엌에 있으면 다른 사람이 있으면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그리고 결혼하면 평생 할 집안일이니 엄마와 함께 있을 때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딸 사랑으로 부엌과 거리를 두게 하셨다. 맞벌이면서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가족들의 매일 밥, 반찬, 국을 차려줬던 엄마의 사랑. (그리고 다 클 때까지 부엌일 도울 생각도 없던 나쁜 딸내미)


그랬는데 결혼을 하자마자 미국에 왔다. 친정엄마의 밑반찬 찬스라는 것을 꿈꿀 수도 없는 상황, 마트에 가면 낯선 식재료만 가득.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는 끼니때와 고파지는 배에 생각나지 않는 메뉴. 식생활이 험난해졌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결혼하면 요리 실력이 자동으로 늘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믿는 구석이 있고 대책이 있었다. 내가 요리를 못 하면, 나머지 한 사람이 하면 되지. 


남편의 요리 실력이 내 믿는 구석이다.  


우선, 남편 가족 (지금은 내 가족이기도 하지만)의 식문화는 우리 집의 그것과 너무나 다르다. 소화 기관이 약한 우리 부모님은 '적게, 맵지 않게, 짜지 않게'가 매끼니의 모토다. 한편 남편의 가족분들은 엄청나게 잘 드신다. 연세가 아흔에 가까우신 시할아버지께서는 우리 집 국그릇 크기의 그릇에 밥을 고봉밥으로 드시고, 대접에 국을 드신다. 아빠 식사량의 두 배다. 


오 남매 중 유일한 여자이자 베테랑 전업 주부셨던 시어머니는 온갖 것을 집에서 하실 수 있다. 처음 남편의 고향집에 갔을 때 대야 가득한 우렁이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우렁 된장 재료였다. 이런 것도 집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솜씨가, 가히 문화 충격이었다. 


엄마에게 살가운 남편은 옆에서 모든 것을 배우고, 함께 하며 자랐다. 집에서는 '간잽이'로 통할만큼 한 숟갈 먹어보면 어떤 양념이 부족한지, 얼마나 더 넣어야 하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요리 초보에게 그런 남편의 재능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남편의 요리 실력에 힘입어 우리는 거의 모든 요리를 집에서 해 먹었고 지금도 그렇다. 


미국의 외식 물가는 식재료 물가에 비교하면 아주 비싸다. 입에 맞는 식당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기껏 큰맘 먹고 가난한 학생 주머니에서 돈을 냈는데, 남편 입맛에는 미달이었다. 집에서 해 먹는 게 더 저렴하고 더 맛있으니 외식은 자연스럽게 최소화되었다. 


게다가 신혼 시절, 같이 요리해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지금도 작은 메사누에바의 부엌에 나란히 서서 요리하던 그 시절은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여러 요인들이 더해져 우리는 온갖 요리를 집에서 해 먹는다. 육개장도, 탕수육도, 감자탕도, 여러 종류의 김치도, 명절 음식도 모두 둘이서 만들어 먹는다. 오랜 요리 경력의 많은 주부님들에게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우리 나이대에는 자취를 하면서도 요리는 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은 걸 생각하면 꽤 부지런한 것 같다. 


한국에 있었다면 집 앞 단골 식당에 가서 밑반찬과 함께 저렴한 가격으로 편하게 먹었을 요리들을 직접 하다 보면 힘들 때도 있다. 뿌듯함과는 별개로 손이 너무 많이 가는 음식을 하면 '사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직접 요리를 하는 수고로움과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장 보러 가는 것의 번거로움이다. 한 곳에서 필요한 모든 식재료를 살 수 있던 한국의 종합마트나 시장과 달리, 여기서는 여러 곳을 다녀야 필요한 식재료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특히 한식 재료를 사려면 더 그렇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식재료를 사는 것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일반적인 미국 마트, 창고형 매장, 한인 마켓, 그 외 가끔 가는 곳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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