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
12월.
k는 일상생활에 큰 부분부터 작은 부분까지
순식간에 버거워졌다
큰 부분이라 하면
무언가를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작은 부분이라 하면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
마치 도미노를 차근히 세우다가 삐끗한 것도 아닌,
실수로 얕게 스친 옷자락에 와르르 무너진 것만 같이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시작점을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k는 요즘만큼 불안함 없이 일상을 평온하게 보낸 적이 거의 없었기에 더욱 의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하며 앉아있다가 시선 끝에 닿는 것이 하나 있었다
시든 채 방치된 화분.
‘저거였구나!’
애지중지 키우던 k의 ‘심비디움’
‘심비디움’은 키우기에도 난이도가 조금 있는데
꽃을 피우는 것이 더 어려운 축에 속한다
겨울에 꽃이 피는 ‘심비디움’은 잘 관리하면 4개월 정도를 감상할 수 있다
k는 몇 년간 꽃대조차 보지 못하다가 지난 9월에 드디어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꽃이 피면 잘 관리해서 봄까지 봐야겠단 심산으로
공을 들였다
꽃대가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급하게 본가에 일이 생겨 며칠을 자고 왔어야 했는데
그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더니
k의 꽃은 피어나지도 못한 채 시들어버렸다
물도 부족하고 화분을 옮기지 않아 햇빛에 노출된 탓이었겠지
k는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 핑계로 속상함을 외면하고 있었다
k는 무릎을 잡고 일어나 방치된 화분 속 남은 ‘심비디움’과 흙을 빼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감정은 까다로운 식물 같기도 하다고.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일로 뿌리가 썩어버리거나 서서히 말라비틀어진다
뿌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겉으로 바로 보이지 않아서 뒤늦게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 감정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화분을 다 정리하고 빼낸 흙과 ‘심비디움’을 버리러 나오는 길에 k는 입김이 가득 나오는 것이, 바닥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밟는 소리가, 짙고 아름답게 노을이 지는 모습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 키우기 쉬운 식물이 뭐가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