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글거리던 땅, 스페인
A said :
7.13 Barcelona PM ?? : ??
오늘 길을 마치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에 힘을 내보려 하지만 몸뚱이에 남아있는 힘은 얼마 되지 않는 듯하다. 그래도 이제 황량한 풍경보다는 조금씩 녹색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남쪽으로 올수록 햇빛과 친근하고 여유 있는 사람들의 성향이 자전거와는 가깝지 않은지 자전거에 대한 배려를 길에서 찾기 힘들다. 자전거 길이 따로 있을 리 만무한 형편은 미리 들어 인지하고 있었지만 막상 산속의 좁디 좁은 차도에서 달리려니 아슬아슬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산속의 실낱같은 2차선에서 한참 달리는 와중에 뒤에서는 커다란 덤프트럭이 으르렁대며 달려온다. 달리 멈출 갓길도 없고 반대 차선으로 잠시 가려니 굽이굽이 구부러진 길 때문에 혹시나 반대편에서 오고 있을 차는 보이지 않는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페달을 밟아 겨우 벗어나곤 한다.
한참을 달리다 겨우 도시 비스무리한 광경이 보인다. 높지는 않지만 야트막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이제야 오늘 다다를 도시에 가까워지는 듯하다. 도착해간다는 사실에 흥분해서인지 멀쩡히 길에 서있는 가로등을 보고 괜스레 반가운 마음에 속도를 줄이지도 못한 채 부딪히는 멍청한 사고도 일삼는다. 한참 도심에 접어들 무렵 수많은 신호등과 만난다. 계속 겪어오던 사고들을 반면교사 삼아 급하게 가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차피 목적지에 들어섰으니 여유로운 마음으로 신호를 꼬박꼬박 지키며 달리던 찰나, 벼락을 맞는다. 복잡한 사거리에서 분명 초록불 신호가 떨어져 그래도 조금 여유를 두고 거리를 건너는데 뒤쪽에서 무언가 충격이 느껴진다. 충격이 느껴지긴 하지만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터라 영문을 모르고 털썩 쓰러진다. 생각지도 못한 충격에 땅으로 떨어져 뒹굴면서도 입에서는 간만에 고국의 욕설이 튀어나온다. 신호의 마지막에 걸린 덤프트럭이 마주치는 차선에서 지나가고 있던 자전거의 뒷바퀴를 치고 지나간 것이다. 그 덕에 자전거 위에 있던 장본인은 영문도 모른 채 아스팔트 길바닥 한가운데에서 뒹굴게 된다. 놀라서 나와 달래는 가해자의 울먹이는 눈망울을 보니 막상 또 할 말이 없어진다. 몸뚱이 여기저기서 쑤시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잘잘못을 따질 기운도 나지 않는다.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도 미처 하지 못한 채 그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고 다시 상처 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미련하게도 앞으로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던 넝마가 된 몸보다는 당장 저 앞에 오늘 다다를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드디어 자전거를 끌고 바르셀로나의 도심 한가운데로 진입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도시에서 휴가철을 맞아 바다가 보이는 환상적인 광경을 즐기는 수많은 행락객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군중 속에서 행색이 남루하기로는 손에 꼽힐 두 이방인은 자전거 위에서 숙소를 찾아 헤맨다. 얼굴에는 시커먼 땟자국이 가득하고 온 몸에선 퀴퀴한 땀내가 진동을 하지만 북적대는 인파 속에 슬그머니 묻어가다 보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골목 여기저기 빨래 거리를 창 밖으로 가득 메운 건물들을 보면서 빨랫감도 바짝 마르게 하는 맑은 날씨의 바르셀로나에 이르름을 실감한다. 대도시들 안에 꼭 하나쯤은 있어 보일 듯한 음침해 보이는 골목 속의 숙소를 찾아 이틀 쉬어 갈 만반의 준비를 한다.
빈둥댈 만반의 채비를 하고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할 동행 S군을 만난다. S군은 T형이 여행을 떠나기 전 타국에서 공부(혹은 즐거운 시간들)를 함께한 사이다.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거나 오랫동안 머무른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두 번 여행한 적이 있었고 마침 이 곳에서의 여행 일정이 겹쳐 만난다. 저녁도 먹고 길거리에서 맥주도 홀짝이며 밤거리를 배회한다. 높은 전망대에 올라 유명한 명소들도 보이는 눈앞의 야경을 바라보니 용케 페달을 밟아서 이 곳까지 이르고, 또 지금 있는 장소에 서있음이 꽤나 벅차다.
P.S.1 S군과 만나 당연하듯 그가 이끄는 대로 다니긴 했지만 한참을 다니다 보니 참 신통방통하다. S군이 우리를 안내하긴 하지만 그 역시 몇 번 방문한 경험이 있는 이방인 일뿐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서 끼니를 때워야 할지 궁금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면 둘은 S군의 얼굴만 바라보게 된다. 다행히 야무진 S군은 큰 어려움 없이 이곳저곳을 안내하고 충분히 즐거운 경험을 함께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할수록 참 재미있고 고마운 사실이다.
T said :
DAY 19
그게 뭐 별거라고.
몇 달 같이 먹고, 놀고, 자고 했던
진원이 보니깐 그렇게 좋다.
진원이에게
내가 잘츠부르크에서 맡았던
모든 행복의 냄새가 남아있어 그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