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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4. 2021

서른다섯 번째 날.

다다른 그 땅, 포르투갈

A said : 

 

7.27 Lisbon PM 23 : 34 


 기간이 길지 않았지만 흡수한 알코올과 비례해 전혀 짧게 느껴지지 않았던 며칠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날이다. 마침 둘은 북쪽의 Porto로 향하는 일정이 같아 계속 같이 간단다. 역시나 전날 밤의 숙취에서 다 헤어나지 못한 채 둘은 졸다 깨다 짐을 챙긴다. 영 속이 안 좋은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간단히 주스 몇 잔을 틀어넣고는 무거운 가방을 둘러멘다. 숙소 입구에서 배웅을 하는데 신나게 놀 때는 못 보던 영 어색한 표정이다. 한 번씩 껴안으며 또 보자는 말에 서로 피식 웃기만 한다. 돌계단에 앉아 숙소 앞의 언덕길을 내려가는 둘을 잠시 멍하니 바라본다.


 같이 있던 둘도 나가고 T형도 오기로 해서 숙소를 옮긴다. 짐을 챙기는데 아침부터 새로운 손님이 들어온다. 근육질 몸에 온통 그림을 그려 얼룩덜룩한 그가 악수를 건네는데 첫사랑을 만난 듯 손이 떨린다. 굵직한 목소리로 스위스에 왔다고 이야기하는데 왠지 너털웃음이 나온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시설이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대충 예약을 했는데, 묘하게 있던 곳에서 불과 3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지도를 보며 찾아가다 이 부근에 지박령이 붙어있나 혼자 비실비실 웃는다. 숙소에 대충 짐을 놓고 빈둥대고 있는데 곧 있어 T형이 도착한다. 떨어진 지 일주일이나 됐을까 싶은데 그 사이에 더 마르고 더 색깔이 까매졌다. T형은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온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하다. 드디어 목표에 도달한 감동적인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별 반응이 없다. 속으로 느끼는 엄청난 환희를 너덜너덜해진 몸이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나 보다. 


 휴식을 취하다 오래간만에 안장에서 내려온 T형을 쫓아 시내로 나간다. 며칠 일찍 와봤다고 괜히 우쭐대며 앞장선다. 쇼핑도 하고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는 T형의 모습을, 스스로도 자전거에서 내리던 마드리드에서부터 저랬을까 싶어 주의 깊게 쳐다본다. 이런저런 볼일을 다 보고 저녁을 먹으려는데 T형이 라면이 먹고 싶단다. 여태껏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딱히 고국의 음식이 생각나는 적이 없었던 둘인데 마지막에 와서 라면을 떠올리는 것을 보아하니 마지막을 맞이하는 몸뚱이가 고달픔의 끝에 다다른 듯하다. 한국 라면을 파는 식료품점을 힘들게 찾아 간만에 고국의 식재료들을 영접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포장지의 한글들을 보니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이산가족을 재회한 느낌이다. 숙소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라면을 끓여 먹는다. 종착지에 와서까지 한국 라면을 먹는 모습이 웃기기는 하지만 그제야 정말 이 날들이 끝나가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잘 먹고 배를 두들기며 노곤했지만 왠지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T said : 

 

DAY 33 

-

몬타조 항구에 도착했다. 

마지막 1킬로를 남기고 예상대로 울컥했는데, 

울음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강하게 한숨이 나왔다. 

안도의 한숨. 해방감의 한숨.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처럼, 

끝날 때까지도 진짜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

분 차이로 앞에 가는 페리를 놓치는 바람에 

한 시간 반을 기다리며 일기를 쓴다. 

수십 일 동안 왔는데 고작 한 시간 반이 무슨 문제이겠냐 만은. 

조금만 더 빨리 탈걸, 중간에 편의점에 들리지 말걸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

누군가는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천천히 가는 법, 

남에게 추월당해도 신경 쓰지 않는 법,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 법을 배웠다는데 

나는 반대의 것을 배웠다.


힘들어도 나를 추월하는 사람이 있으면 따라잡고 싶고, 

혼자 가는 길이라도 마냥 천천히 가는 건 몸이 내키지 않아 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거나 이렇게 돼 버린걸 어떻게 하겠는가.

다만, 

때로는 빨리 가고 싶더라도 조금 천천히, 

쉬지 않고 우직하게 가는 게 더 좋다는 건 확실히 배웠다. 

근면 성실한 토끼 혹은 모터 달린 거북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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