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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Jul 13. 2020

진작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돌이키지 않고선 알 수 없던 것

꺼져, 꺼지라고.


1996년 가을께 어느 날, 그날 저녁 왜인지 형은 없었다. 저녁 먹은 지 한참이 지난 그 언제쯤 엄마 아빠가 나를 거실로 불러냈다. 


우리 이제 갈라서기로 했으니 엄마 아빠 둘 중 하나 선택해.



전후 맥락 설명 없는 일방적 통보.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엄마 아빠는 나를 낳았고, 20년 가까이 같이 살았으며, 또 저녁을 함께 했던가 보다. 다른 말은 없었다.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형은 왜 이 시간까지 집에 없는지, 저녁은 잘 먹었는지 같은 그 어떤 말도 없었다. 근데 왠지 그런 엄마 아빠의 태도가 굉장히 배려 깊다고 느껴졌다. 다른 말들 필요했을까. 어떤 말들을 덧붙여도 결론은 하나이며 메시지도 하나였다. 쓸데없이 그 의미를 미화하는 작업들은 괜한 오해와 시간낭비만 가져올 뿐이지 않을까. 어찌 됐던 일부는 그들의 결정-이혼-이고, 또 다른 나머지는 나의 결정-엄마 아빠-으로 남았다. 각자의 권한과 영역이 명확했기 때문에, 남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혼탁한 정보의 난입은 저지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엄마 아빠가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고려했을 거라곤 1도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의도와 다른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일어나기도 하고, 이 경우도 그러했다. 둘은 같이 하던 지난 20년간의 시간을 삭제하기로 했고, 이제 자식도 같이 키우지 않을 것이며, 함께하는 저녁도 없기로 결정했다. 이 모든 과정을 끝내는 것은 나의 몫으로 남았다. 엄마 아빠 중 한 명을 선택하는 것. 사실 느닷없이 내가 최종결정자가 된 것만 같아 좀 벙찌긴 했다. 그들의 문제를 나에게 던져놓고 알아서 처분하라는 것과 같달까. 근데  난 그들의 반반이 섞인 존재이니 어떤 점에서 판사의 판결보다 엄마 아빠에겐 더 정확하고 명확한 판단이 될지 모르니까. 여하튼 그러해서 엄마와 아빠 중 누군가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아빠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그 당시에는 크게 의식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아침에 눈 떠보니 엄마 아빠는 집에 없었고, 대충 아침 먹고 학교가라는 쪽지가 식탁 위에 있었던 거 같다. 아빠가 새벽에 급작스럽게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날, 그러니까 아빠가 쓰러졌던 새벽에서 이어지는 그날 오후께 학교 담임 선생님한테 전해 들은 거 같다. 지금 아빠가 병원에서 수술받고 입원 중이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야간 자율학습을 빠지고 병원에 갔다. 집에서 꽤 먼 병원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두 번을 갈아탔다. 거의 두 시간은 걸린 듯해했다. 일분일초가 다급한 상황에서 도시 두 개는 건너가야 하는 이곳까지 왜 왔을까 싶다. 나중에 그 병원이 심장 쪽 관련해선 유명한 곳이라서 그곳으로 정했다고 들었다. 여하튼 그땐 왜 가까운 병원 두고 이곳이지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문은 아빠가 쓰러지고 응급차가 오고 하는 과정 중 그 어떤 부분도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빠가 화장실에서 쓰러지고, 엄마가 발견하고, 신고하고, 구급대원이 오고, 아빠는 들것이든 어떻게든 실려 나가고, 집 문이 닫히고. 이 중 어떤 것도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게 없다. 엄마 아빠와 구급대원들이 자는 아이를 배려해 너무나도 조용히 속닥이며 일을 처리했던 걸까? 그렇다면 결론은 그 난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나는 어떤 동요도 느끼지 못한 채 자고 잇었다는 것다. 엄마 아빠 둘 중 선택하라는 통보를 받은 그날, 굉장한 숙면에 취했던 거다. 


아무튼, 그날이 지나고 엄마 아빠는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을 유지했다. 누구의 엄마와 아빠처럼, 혹은 누구의 아내와 남편처럼 여전히 함께했고, 때로는 말다툼을 하고, 가끔 주변 지인들에게 되지도 않는 자식 자랑을 하고 혹은 욕을 하고, 그런 부부의 모습 말이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 중 누구를 선택해야 했던 나의 최종권한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마치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처럼 사그르 사라졌다. 아니, 어쩌면 그 선택은 다시 엄마 아빠에게로 돌아가 각자가 각자를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서로의 반반이 섞인 내가 아닌, 100% 서로의 입장에서 판결을 내린 것이다.


또다시 어영부영 시간이 지났고, 그럭저럭 백년해로했다고 볼만한 시점에, 아이러니하게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이라는 공간 자체가 갖는 아우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침울함과 비통함이 얕게 깔려 있었지만, 나름 천수를 누린 호상이었던 탓에 커다란 감정적 동요 없이 식을 치렀다. 거기다 엄마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혼의 위기를 겪었지만 몸이 성치 않은 아빠와 끝까지 함께한 고결한 아내의 위상을 가졌다. 그런 탓에 장례식은 마치 한 위인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자리가 돼 고인에 대한 찬양 8과 그를 상실한 슬픔 2가 적당히 어울린 곳이 되었다. 


정말 좋은 아내분을 두셨습니다. 그 상심 제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래도 이렇게 여전히 건강하게 지내시니 다행입니다.


그분은. 정말이지 저의 롤모델입니다. 두 자녀도 탄탄한 지위도 얻으셨고,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아버님도 예전에 비하면 정말 보기 좋으셔요. 그분 뒷바라지가 없었으면 가능했겠어요?


그런 분과 평생을 함께했다니 정말 큰 복입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셔야 합니다.



살실 말 한마디 하기 어려운 장례식장에서 저렇게들 말하는 걸 보면 얼마나 차분한 식장이었는지 얼추 짐작할 수 있다. 뻔한 위로의 말들이었지만, 아빠는 그렇게만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뭐가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지 어딘가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고 있었다. 처음 한동안은 "네, 그렇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맞장구도 치고 상대의 호의에 대한 반응을 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개만 떨굴 뿐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상대에게는 그런 모습이 마치 너무나 큰 상실감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것처럼 보인 듯하다. 행여 본인들이 실수한 것은 아닌가 싶어 냉큼 자리를 떴다. 눈치 없는 사람들은 아빠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다시 위로의 말들을 전했고 그러면 아빠는 더욱 고개를 떨궜다. 뭔가 악순환이었다.


늦은 새벽이 됐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하나둘 줄어들고, 이미 왔던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떠 아빠와 나 둘만 남았다. 자리에 털썩 앉은 아빠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수술 후 몇십 년 동안 끊은 담배였다.


담배 펴도 돼?

뭐 어때. 나도 살만큼 살았고 이제 옆에서 뭐라 할 사람도 없는데.


아빠는 한 번 크게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뭐라고 떠들어. 젠장...


아빠는 다시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그리고 담배연기를 나를 향해 내뿜었다.


젠장할... 다 니가 그때 선택을 안 해서 이 모양 난 거 아냐.

뭐가?


정말 뭐지?


아빠 엄마 둘 중 하나 선택하라는 거. 왜 안 했냐?

아.. 아니 근데 아빠가 그렇게 된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

그래도 하라고 했으면 했어야지. 젠장!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아니 상황이 상황이었고 그 후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난 누구 선택할래' 이러고 있어.

그래... 됐다.

근데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아빠는 다시 담배를 한입 물어 당겼다.


너, 우리가 왜 지금까지 같이 살았는지 알아?

뭔데?

니가 아빠 엄마 중 선택하지 않아서 그래. 그 답변을 기다리느라 이 시간이 흘렀고, 결국 니 엄마는 답도 못 듣고 떠난 거야.


이 무슨 개 같은 소리인지. 자기들 멋대로 최종권한을 줬다가 앗아가고는 그게 아직까지 나에게 있다며 나를 탓하고 있다. 


아빠... 아직도 답을 듣고 싶다면 난 엄마를 택했을 거야. 아니 엄마를 택했어.

알아. 아마 그랬겠지.


젠장, 엄마의 장례식에서 나는 굉장한 모멸감과 패배감을 맛보고 있다.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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