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정은 Oct 12. 2015

엄마에 대하여

1. 엄부자모라던데 

    우리집은 '엄부엄엄엄모'였다


    특히 도덕과 예절에 있어서만큼은

    가혹하다 싶을만큼

    한 치의 실수도 용납을 하지 않는

    매서운 엄마였다

   

    너무 엄격해서

    엄마가 언니와 나를 보육원에 맡기고

    귀신으로 변해 버리는 꿈을 꾼 적도 있다

    

    신데렐라를 읽은 날엔

    엄마도 계모가 아닐까 싶었다

  


2. 엄마가 내게 했던 큰 협박은

    '도망' 이었다

  

    너 이렇게 이렇게하면

    엄마 도망갈거야


    세상에 이런 잔인한 엄마가 어딨나



3. 나는 모유를 

    무려 네 살때까지 먹었는데


    그 때문인지

    엄마가 그렇게 무서워도

    나는 늘 엄마를 찾고 

    엄마 곁을 벗어나려 하지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4. 우리가 제법 크면서

    어린시절의 에피소드는 

    꽤 재미있는 대화소재다


    언니와 동생은

    놀러나갔다하면 함흥차사인데

   

    나는 한 시간에 한 번씩 들어와서

    뭐 먹을거 없나

    냉장고 문 한 번 열고 나가고

    또 한 시간만에 들어와서는

    냉장고 문 한 번 열고 나가기를

    반복했다고 했다


    엄마 도망갔을까봐

    확인한거였네요



5. 학창시절,

    나는 엄마가 학교에 자주 오길 바랐다


    은사님들은 나를 제법 예뻐해주셨는데

    엄마도 그분들과 

    쫀쫀한 유대관계를 맺었으면 했다

    하지만 엄마는 학교에 잘 오질 않았다

   

    내가 거의 매년 임원을 맡았기 때문에

    체육대회와 같은 행사가 있으면

    간식을 나눠줘야하므로

    어쩔 수 없이 학교로 와야했는데

    

    그나마도 잠깐 와서는 급히 인사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6. 그뿐만 아니라

    친구엄마들과도 결속을 다지며

    입시정보에 능한 학부모이길 바랐거늘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고등학교때

    대기가 대단히 길다는 그룹과외 멤버가

    자기 과외팀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했다

    실제 성적으로 손가락에 꼽는 애들이었다

    

    그 애 엄마가 집으로 전화도 했지만

    내 엄마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유는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며

    주중에 기숙사학교에서 혹사했으면 

    주말엔 좀 쉬라는 것이었다


    어쩐지 월 4회에 50만원 돈이

    과해서가 아니었을까 의심해본다



7. 그래도 엄마가 

    내 입시에 영 신경 안 쓴 건 아니다

    

    엄마는 학교로 

    수요일마다 책을 한 권씩 넣어줬다

    언어영역이 약했기 때문이다

     

     '상록수'나 '서편제'를 읽으며 

     안타깝고 답답해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한테

     참 고마운 일이다



8. 엄마의 키를 추월하면서

    우리는 꽤 괜찮은 친구가 되었다

   

    어릴 때처럼 엄하지도 않고

    이야기도 잘 통하고 

    함께 있으면 재미있다

    

    언니는 이따금씩

    어린시절 좀 더 다정하지 않던 엄마에 대해

    그 때 왜 그랬는지 서운함을 토로한다

    

    나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하지 않는다



9. 초등학교 4-5학년 때 쯤

    우연히 엄마의 어린시절 사진을 보았다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엄마한테 어린 시절이 있다니!


    그 날 밤,

    나는 내 멋대로 엄마의 인생을 그려보았다

   


10. 엄마는 막내다

      외할머니께서 40대에 낳은 귀한 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 대신 공무원이 되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낳았다

      

      아빠도 할머니께서 40대에 낳은 막내라

      할머니 외할머니 모두 연세가 많으시다


      그러니 아이들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

      일을 그만 둬야한다


       자기 일 열심히 하며

       즐겁게 살던 아가씨가

 

       갑자기 자기 인생은 사라져버린

       아이 셋을 정신없이 키워야 하는

       엄마가 되버렸다


      혼자 애 셋 키우는 것도 힘들었을텐데

      아빠는 직업특성상 

      휴일도 없이 바쁘고

      혹시라도 우리들이 잘못하면 

      비난은 배가 되므로

      

      엄마는

      더 가혹하게, 더 엄격히

      우리를 키웠다



11. 그 날,

      엄마의 어린 시절 사진으로

      어린 나는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12.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으므로

      완벽하지 못했지만


      엄마가 그 누구보다

      우리 삼남매를

      그리고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많이 서툰 엄마였지만

      어릴 때의 엄한 엄마도

      지금의 자애로운 엄마도

      나는 다 좋다



13. 출산을 앞둔 언니를 보며

      엄마가 생각나서

      몇 자 적어보았다


      부모님께는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해드려도 

      나중에 후회한다고 한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해드려야겠다

      

      엄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지금처럼만!

      (아빠두염)

작가의 이전글 글을 쓰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