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이름과 주소를 비롯한 기본 인적사항을 적고 대학교까지 써내려 가면, 그 아래는 도무지 채우기가 막막했다. 분명 이것저것 일을 벌여보고 실패한 것들도 많은데, 어찌 그걸 객관화해서 증명하려니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맞다. 일을 벌리 되, 성공했어야 했다.
그 성공은 ‘서류 증명’이 가능해야 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더라도 수상하여 서류 증명을 받았어야, 스케이트보드를 탄 시간이 의미 있었다고 증명할 수 있다.(하지만 면접에서 ‘그럼 스케이트보드를 계속 타시지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냐’는 질문을 받을 수 있다.)
나에게 그럴만한 것이 없다고, 심지어 운전면허도 없다고 자각했을 때, 지금의 나를 만든 원인을 찾아봤다. 대학원 진학에 실패해서? 그전에 학부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나? 일단 학부부터가 문제였나?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
의문들은 소급을 거듭해 가정환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데카르트는 명석판명한 사실을 철저하게 가려내기 위하여 자신의 신체조차 의심했다.
이런 모호한 것을 가려내고 점차 범위를 좁혀나가며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사유 흐름을 방법적 회의라고 한다면,
이력서를 쓰면서 방법적 회의를 실습할 수 있다.
실습을 거듭하면, 스스로에 대한 회의의 진행 속도가 놀랄 만큼 빨라진다.
면접관이 물어보는 질문들을 답하고 나서 면접실을 나오면서 질문들이 내포하고 있는 진짜 의미와 내가 한 대답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논리적인 소급 없이 단번에 알 수 있다.
심지어 질문에 대답하는 동시에, 말들이 입 밖을 떠남과 동시에 회의를 할 수도 있다.
‘사람을 단순히 수치화할 수 없다’
‘개인의 삶과 생각들을 단순히 이력서에 담지 못한다.’
‘스펙보다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취업 시장에 뛰어들기 전, 이런 말들을 되새기며 나의 유리함을 점치기도 했다.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패기가 가득하던 시절에, 내가 쓴 소설을 대학교 내 국문학과 선생님에게 보여드린 적이 있었다. 그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인위적이라도,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봐라”.
글들은, 특히 소설과 자기소개서 같이 필자의 자유도가 높은 글들은 오히려 더욱 필자의 경험에 기반하는 것 같다. 그것을 ‘어떻게’ 들어내고 감추는지 결정하는 것만이 글 쓰는 이들의 몫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력서 안에서의 내 경험은 스펙이 되고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는 ‘가능성’으로 치환된다. 스펙을 이겨내는 경험은 스펙이 된다.
이렇게 따져보니, 내가 갖고 있는 이야기들은 돈 버는 일들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들이었다. 그리고는 무슨 자신감과 오만함으로 그동안 돈을 좇지 않았는지 스스로가 의아해지면서,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경제 · 경영 · 자기계발서 앞에서 겸손해졌다.
도서관을 벗어나 마주하게 된 사회에 대한 설렘이 사라지고, 나에 대한 방법적 회의가 셀 수 없이 반복되자, 이력서들이 엇비슷해졌다. 스스로를 객관화하는데 익숙해져 있었고, 냉담하기까지 했다.
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전투력 측정 안경을 낀 것 같았다. 물론, 내 전투력밖에 측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러 취업 알선 사이트들의 지표들을 통해 내 전투력이 열등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메일을 확인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메일의 제목과 첫 문장만을 봐도 합격 당락을 알 수 있었다.
사과로 시작하거나, 나를 칭찬하는 내용이 있다면 대부분 탈락이었다.
불합격 확인을 처음 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잘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그때의 느낌을 떠올릴 수 있다. 비록 그 시작이 실패일지라고, 내가 ‘사회’라고 불리는 경제적 활동을 시작했다는 설렘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하나 둘 불합격 알림이 쌓여갔고, 어쩔 때는 그 알림조차 오지 않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점차 설렘은 사라졌다. 뜬구름 같았던 ‘청년 실업’이 내 통장과 생활에 스며 들어와 그 모습을 확실히 드러냈다.
불합격 알림 들은 내가 그 사회현상에 속해 있다는 걸 거듭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다음 전형으로 가는 합격 알림 들은 불합격과 합격의 알림을 받는 생활을 격려했다.
여느 때보다 핸드폰의 알림에 예민해지고, 문자들을 소중히 여겼다.
마침내 내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지 가늠하고, 그것을 살만한 곳들이 어디 있는지 찾아냈다.
내가 첫 입사한 회사의 동기들은 능력이 출중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한 동료는 어디서 훈련을 받고 온 것 같았다. 잔혹한 업무 기계 같았다. 디자인 툴(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등), 글쓰기 능력, 마케팅, 심지어 인사동향까지 다 꿰뚫고 있었다.
나는 직장에 들어가서 동료들을 보고서야 과거의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대학원을 준비하며 세상 물정 모르고 오만했다.
동료들을 볼 때마다 그 능력들이 우러나왔을 시간들을 가늠하며, 내 시간은 어디로 향해 있었는지 계속해서 곱씹었다.
점차 내 시간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흘러왔고 당시 어떠한 모습을 띄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동료들의 시간은 끝내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어떠한 시간을 보내고,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었어야 동료들 같은 뭐든지 척척 해내는 사람이 되었을지 가늠이 안됐다.
다른 시간들을 보내고 다른 능력들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한편에 줄줄이 앉아 있는 동기들은 큰 의지가 됐다. 용감하리만큼 무딘 경제적 감각을 멍청하다 놀리지 않고, 위로해주고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는 ‘고용 불안정’이라는 다음 페이지를 함께 맞닥 들였다.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어떠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 짚어보는 방법적 회의가 날마다 시행되었고, 이러한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메일을 써댔다.
그 메일들에 대한 피드백들을 받고 다른 이들의 알림을 보면서, 능력이 출중하고 뭐든지 척척 해내며, 심지어 사회생활까지 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를 포함한 내 동기들은 다시 구직하는 이들이 되었다.
이 과정, 그리고 순환들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를 제쳐야만 누군가의 동료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함을 뒤로하고
또다시 누군가의 동료가 되기 위하여 글을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닌다.
ref.
-글의 제목과 구성 모두 : 김연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2009이상 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