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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Oct 17. 2021

'사랑손님과 어머니'짧게 읽기

 - 문학으로 배우는 첫 심리학 수업

 ◆ 홍당무처럼 얼굴 빨개지는 어머니     


 옥희는 여섯 살 난 여자아이다. 옥희네 식구는 옥희와 어머니, 이렇게 둘이다. 중학교를 다니는 외삼촌도 함께 지내지만 일주일에 한 번 보기도 어려울 만큼 밖으로 쏘다닌다. 사람들은 옥희 어머니를 두고 과부라고 부른다. 외할머니 이야기대로라면 옥희 아버지는 옥희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옥희가 없을 때, 장롱 속에서 아주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을 꺼내 보고는 했다. 


  어느 날 낯선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왔다. 아버지의 옛 친구라는데 근처 학교에 선생님으로 오게 되어 그날부터 옥희네 집에서 하숙을 하기로 했다. 옥희는 까닭 없이 아저씨가 친근하게 느껴졌고 아저씨도 옥희를 아주 귀여워해주었다. 옥희는 아저씨 방에 놀러 가서 그림책도 보고 과자도 가끔 얻어먹었다. 


  하루는 아저씨가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옥희는 스스럼없이 아저씨 옆에 앉았다. 아저씨는 옥희에게 좋아하는 반찬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삶은 달걀.” 

  그러자 아저씨는 옥희가 좋아하는 달걀을 집어주었다. 옥희는 달걀을 먹으며, 아저씨에게 묻는다.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있어요?” 

  “나도 삶은 달걀.”


  옥희는 그 즉시 엄마에게 쫓아가 사랑손님이 달걀을 좋아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옥희에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주의를 줬지만, 이상하게 그 다음날부터 어머니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달걀을 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옥희는 아저씨와 함께 뒷산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 친구가 사랑 아저씨를 옥희의 아빠로 오해하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옥희는 아저씨가 진짜 자기 아빠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말을 아저씨한테 건넸다. 옥희는 아저씨도 그 말을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저씨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옥희를 나무라며 말했다. 


  “그런 소리하면 못써.”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일요일 예배당에서 옥희가 아저씨에게 아는 체를 하자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옥희를 외면했다. 어머니도 이상했다. 아저씨가 예배당에 왔다고 말하자 어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홍당무처럼 빨개지지 않는가?  


  며칠 후 옥희는 유치원에서 꽃병에 든 꽃을 두어 송이 집으로 가져 왔다.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는 줄 알고 몰래 가져온 거다. 어머니는 꽃을 보더니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응, 이 꽃! 저, 사랑 아저씨가 엄마 갖다 주라고 줘.”

  그러자 어머니의 얼굴이 꽃보다도 더 빨갛게 되었다.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옥희야, 그런 걸 받아오면 안 돼. 너 이 꽃 이 얘기 아무보고도 하지 말아라. 응?”

  어머니는 곧 꽃을 버릴 줄 알았는데 꽃병에 꽂아서 풍금 뒤에 두었다. 그리고 꽃이 시들자 꽃대는 내버리고 꽃은 찬송가 갈피에 곱게 끼워두었다. 


 ◆ 욕망과 금기 사이에서 갈등하는 어머니


  음력으로 보름날. 옥희는 아저씨 방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풍금소리가 들려왔다. 옥희는 곧장 안방으로 갔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흰옷을 입은 어머니가 불도 켜지 않고 고요히 풍금을 연주하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노래도 연주도 끝이 났다. 어머니는 옥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옥희를 꼭 껴안더니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옥희야, 난 너 하나면 그뿐이다.”


  며칠 후 옥희는 아저씨로부터 봉투를 하나 받았다. 아저씨는 밥값이니까 어머니께 전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지폐 말고도 종이 한 장이 더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종이에 쓰인 글을 읽는 내내 얼굴이 붉었다 파랬다 하면서 손을 와들와들 떨었다. 이상한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장롱 속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옷을 꺼내서 하나씩 만져보기도 하고, 잠들기 전 기도를 할 때에도 계속 같은 구절을 되풀이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시험에 들지 말게······ 시험에 들지 말게······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어느 일요일, 어머니는 갑자기 옥희를 부르더니 아빠가 보고 싶으냐고 물었다. 옥희는, 

  어머니는 그날 후로 어떤 날은 꽤 유쾌해서 풍금도 연주하고 노래도 불렀다. 그런데 어머니의 노래는 소리 없는 울음으로 끝나는 때가 많았다.   

  “응. 우리도 아빠가 하나 있으면·····.”

  그러자 어머니가 혼잣말 하듯이 말을 이었다.  

  “옥희야, 옥희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단다.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사람들이 욕을 해. 옥희 어머니는 화냥년이다 이러고 세상이 욕을 해. 옥희는 언제나 엄마하고 같이 살자. 옥희 엄마는 옥희 하나면 그뿐이야. 세상 다른 건 다 소용없어.”  


  그날 밤 어머니는 옥희에게 흰 손수건을 꺼내며 사랑 아저씨 것이니 전해주라고 말한다. 옥희는 손수건 속에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펴보지 않고 아저씨에게 가져다준다. 그런데 아저씨가 이상하다. 손수건을 받더니 얼굴이 파래지고 입술을 깨물었다. 


  며칠 뒤 아저씨는 멀리 떠나고 말았다. 어머니는 뒷산에 올라 기차가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더니, 집에 와서는 찬송가 갈피에 꽂아둔 마른 꽃잎들을 꺼내 옥희에게 내다버리라고 한다. 어머니는 마치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얼굴이 파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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