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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Oct 19. 2021

'주홍글씨' 짧게 읽기

 - 문학으로 배우는 첫 심리학 수업

아버지가 없는 아이를 낳은 여인!


  17세기 중엽, 뉴잉글랜드 메사추세츠의 보스턴. 영국의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위해 아메리카로 이민을 떠난 지 스무 해 남짓 지난 때였다. 청교도들은 엄격한 도덕에 따라 일체의 향락을 배격하며 살고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자치사회를 구성하여 법률을 만들었고 그에 따라 질서를 지켜갔다. 공동체를 이끌 총독이 있었고 치안판사들이 형벌을 내렸으며, 무엇보다도 공동체를 이끌 교회 목사들이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인이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채 시장 한 가운데에 설치된 처형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헤스터 프린. 형편상 남편보다 먼저 뉴잉글랜드로 이민을 왔고 홀로 지낸 지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니! 그건 명백히 남편 아닌 다른 사람과 부정을 저질렀다는 증거였다. 


  여자는 스스로 만든 주홍빛 글자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 A. ‘adultery’의 약자로 간통을 의미하는 글자였다. 여자는 엄격한 청교도 윤리를 적용했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2년 동안 남편이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찾아오지도 않았기에 판사들은 그녀에게 처형대에서 자신의 죄를 공개한 뒤, 주홍글자를 평생 달고 지낼 것을 형벌로 내렸다. 


  여자가 세 시간이 넘도록 처형대에서 치욕을 드러내던 그때, 한 낯선 사내가 구경꾼에게 어찌 된 사정인지를 물어왔다. 

  “대체 그 아비가 도대체 누구랍니까?”

  “형씨. 그건 수수께끼요. 헤스터 부인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까요.”

  흥미롭게도 헤스터는 그 낯선 사내를 오랫동안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오랫동안 학자로 살아왔던 나이 지긋한 로저 칠링워스였다. 한때 ‘프린’이라는 성을 가졌던 헤스터의 남편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성 불구로, 자신의 열등감을 숨기려고 젊고 아름다운, 하지만 가난했던 헤스터와 결혼했고, 그 후로도 아내를 내팽개친 채 자기 공부와 의학공부만 해왔던 사람이었다. 


  처형대의 일이 끝나고 감옥에 갇힌 그녀에게 칠링워스가 찾아왔다. 헤스터는 말했다.

  “전 당신에게 몹쓸 짓을 했어요.”

  “먼저 잘못을 저지른 쪽은 나요. 꽃봉오리 같던 당신의 청춘을 이미 시들어버린 나와 위선적인 관계를 맺게 했으니까. 당신에게 복수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도대체 그자가 누구요? 끝내 밝히지 않겠소? 하지만 언젠가 그자는 내 손아귀에 들어오고 말 걸.”


  그는 예전과 달리 교활한 웃음을 띠며 감옥을 나섰다. 마치 마귀가 들어앉은 것만 같았다. 

  수감 기한이 끝나자 헤스터는 마을로 돌아왔다. 그녀에게는 저주와 치욕의 글자 A가 가슴에 달려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멸시의 시선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헤스터는 당당하게 A자를 감추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뛰어난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갔으며, 자신이 모은 돈을 어렵고 불쌍한 이들을 돕는 데 썼다. 마을 사람들도 차츰 헤스터의 진정성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헤스터는 딸 펄과 함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헤스터와 달리 나날이 수척해가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헤스터의 교구 목사 딤즈데일이었다. 그는 옥스퍼드를 졸업한 수재였으며 젊고 유능했다. 모든 이들은 그를 사랑과 존경으로 대했다. 그런 그가 아무 까닭도 없이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는 늘 죄의식에 시달렸으며 한손을 가슴에 얹는 이상한 버릇마저 생겼다. 그가 바로 헤스터와 죄를 저지른 남자였다.       



가면이 죄의식을 낳고, 죄의식은 죽음을 낳고


  딤즈데일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영혼의 고통이 신체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딤즈데일은 늘 생각했다. 헤스터가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밝혔더라면 고통스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을 텐데. 그는 겉으로 존경받는 목사였지만 속으로는 죄의식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런 딤즈데일에게 낯선 사내가 접근했다. 그는 나이 든 노인이었지만 유능한 의사였다. 그는 딤즈데일의 교회에 나가 목사와 친분을 쌓은 뒤, 그의 병을 돌본다는 구실로 목사와 같은 집에서 살게 된다. 그의 이름은 로저 칠링워스. 헤스터 프린의 전 남편이었다. 그는 딤즈데일이 아내와 간통을 저지른 사람임을 알자 딤즈데일을 은밀히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의 양심을 바늘로 콕콕 찌르듯 계획적으로 영혼을 파멸시킬 심산이었다. 


  우연히 딤즈데일의 상태를 알게 된 헤스터는 잠자코 있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전 남편이 딤즈데일을 못살게 군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헤스터는 딤즈데일을 만난다. 그녀는 인근 마을의 전도사를 만나고 돌아오는 딤즈데일을 숲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가엾은 분. 당신이 이 지경에 이르다니요. 떠나세요. 제발! 더 이상 이렇게 비참하게 사실 순 없어요.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 행복한 곳으로 떠나세요.”

  딤즈데일은 머뭇거렸다. 그러자 헤스터가 다시 말했다. 

  “로저 칠링워스의 눈을 감출 곳이 어딘가 있지 않겠어요? 혼자가 아니에요. 함께 떠나자고요. 자, 이제 뒤를 돌아보지 말기로 해요.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어요!”

  헤스터는 간곡하게 말했다. 그러자 딤즈데일은 기운을 차렸다. 그는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생기를 느꼈다. 헤스터의 간절하고 오랜 설득에 딤즈데일도 마침내 그녀를 따르기로 한다. 헤스터는 곧장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인근 해안에 머물고 있는 스페인 무역선에 배표를 구해놓은 것이다. 


  하지만 짧았던 행복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숲에서 헤스터와 딤즈데일이 만나던 그 순간 누군가 그들을 지켜봤고 교활한 늙은이 로저 칠링워스도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배표를 구해서 헤스터와 딤즈데일을 따라나설 작정이었고 끝까지 그들을 괴롭힐 심산이었다. 


  한편 뉴잉글랜드의 경축일. 선거로 뽑힌 새로운 총독이 부임하는 날이었다. 시장에는 온갖 사람들이 모였고 축제를 경축하기 위해 딤즈데일 목사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젊은 목사의 설교에 모두 감명을 받았다. 


  설교를 마친 젊은 목사는 모든 힘을 설교에 쏟아 부었는지 제대로 걷지 못했다. 무슨 일인지 그는 처형대 쪽으로 힘겹게 걸으며 한 여인을 불렀다. 그러자 그 여인이 다가와 그를 부축해서 처형대로 올라섰다. 바로 헤스터 프린이었다. 


  “그동안 저를 사랑해주신 여러분! 이 사람을 보십시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 죄인을! 저는 7년 전에 마땅히 섰어야 할 이곳에 지금 섰습니다. 지금 이 여인이 차고 있는 주홍 글자, 그 징표는 저에게도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 무서운 죄의 증거를.” 


  딤즈데일은 갑자기 가슴에서 목사의 띠를 떼어냈다. 그러자 무서운 징표가 드러났다. 그리고 얼마 후 목사는 숨을 거두었다. 시들어가던 영혼이 더 이상 죄의식을 버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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