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배우는 첫 심리학 수업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다. 개츠비가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극복하고 싶었던 것은 뭘까? 그건 데이지를 비롯한 상류사회에 대한 열등감이다. 열등감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개츠비가 성공한 까닭, 개츠비의 화려한 현재는 모두 데이지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다. 이처럼 열등감은 사람을 보다 나은 존재로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열등감을 긍정적으로 접근한 학자다. 그는 열등감이 인간에게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동기를 부여해준다고 보았다. 아들러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게 태어난다. 그리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이 모자라다는 열등감을 느낀다. 그 열등감이 엄마의 젖을 빨게 하고, 아빠의 보호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는 사랑스러운 몸짓을 하며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서 연약한 자신을 돌보게 한다.
열등감이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열등감에 대한 태도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 노력했지만, 자신의 본 모습, 열등했던 자신의 과거는 철저히 숨기려 했다. 그가 자신을 숨기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자기과시다. 거대한 저택을 사들이고 사치스러운 파티를 열어서 자기를 과시하면 사람들은 그가 농촌 출신 시골뜨기가 아니라 빌헬름 황제의 조카이거나 최소한 암흑가의 보스 정도로 여기게 된다.
아들러는 자기과시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허영심과 강한 인정욕구가 자리를 잡고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인정 욕구가 강할수록 남보다 우월해지려는 욕망이 커지는데, 그로 인해 허영심에 사로잡힐 위험도 함께 높아진다. 개츠비의 생활을 보라. 이는 과도한 인정 욕구가 빚어낸 허영심의 산물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개인의 허영심이 문제가 될까? 그렇다. 허영심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이들을 압도하겠다는 정복 욕구를 지닌다. 그들은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오히려 자기보다 잘난 이들이 추락할 때,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니 이들은 종종 반사회적인 일마저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독재자 히틀러를 떠올려보라. 그가 유태인을 학살한 까닭은 당시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이어가던 유태인에 대한 열등 콤플렉스 때문일지 모른다. 어떻게든 유태인을 넘어서야 한다는 과도한 인정욕구와 허영심, 그것이 유태인 학살로 이어졌을 것이다.
열등감에 시달리던 개츠비가 진정 바라는 것은 꼭 데이지가 아니었다. 그는 데이지를 통해 뭔가 다른 것을 욕망하고 있었다. 개츠비가 너무도 흠모하고 열망했지만 결코 다가갈 수 없었던 ‘상류 사회’, 그것이 개츠비의 진짜 욕망이었다. 한 번 가정해보라. 데이지가 아름다운 용모에 착한 심성을 지녔지만 그저 그런 시골뜨기였다면, 개츠비가 모든 걸 걸고 사랑했을까?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내려놓고 순박한 시골뜨기로 되돌아갔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사랑스러워도 데이지가 상류층이 아니었다면, 개츠비는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데이지는 개츠비에게 단순히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 일종의 ‘아메리칸드림’에 가까웠다.
개츠비는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이라는 현실에 불만을 갖고 살아왔다. 젊은 시절 그는 어떻게든 그 ‘부끄러운’ 환경으로부터 달아나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그 무렵에 만난 데이지는 부와 명예를 가진 완벽한 가문 출신이었다.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신분 상승을 해줄 수 있는 뚜렷한 징표와도 같았다. 모든 청년들이 사모하는 데이지. 그 여자를 자기 연인으로 만든다면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고 우월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방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접할 때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오히려 어려웠던 과거를 당당히 밝히며, 그동안 자신이 기울여왔던 노력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낸다. 게다가 유혹에 빠지거나 나태해질 때, 자신의 열등했던 과거를 자기 의지를 되새길 귀한 기억으로 삼기까지 한다.
그런데 개츠비는 그게 아니었다. 열등했던 과거를 숨기고, 지우고, 또 미화하려 했다. 열등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부정적으로만 느낀 것이다. 따라서 열등감 자체가 아니라 열등감 주위에 형성된 부정적인 감정이 문제다. 아들러는 이처럼 열등감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열등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이는 과도한 열등감이 원인이 된 심리 현상으로,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타인을 속이거나 스스로에게 과도한 보상을 하려는 특징이 있다. 이 경우 소소한 행복이나 보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권력·자본·이룰 수 없는 사랑 등 과잉 보상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열등 콤플렉스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스스로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추구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게 ‘다른 관점을 취하는 일’이다. 아들러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대체로 자기중심성이 아주 높다고 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자기 기준을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타인에 대한 이해도 생기고 갈등도 줄어들 뿐 아니라 자신을 기준을 점검할 수도 있다.
자존감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주위의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격려는 아들러 학파의 핵심 상담 기법으로 낙담에 빠진 이들이 삶의 과제에 용기 있게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지지와 격려는 낮은 자기 개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밑거름으로 충분하다.
덧붙여 자존감을 높이려면 당사자는 타인의 평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더 나아가 남에게 비난이나 미움을 받아도 별 거 아니라는 대담한 인식이 중요하다. 누군가 불합리한 이유로 비난을 반복한다면, 그저 바람 소리나 빗방울 소리라고 여기는 게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길이다. 애써 인정받으려는 욕망은 어디까지나 타인에게 나를 맞추는 일이다. 그러니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게 중요하다. 그 첫걸음은 부정적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