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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Oct 25. 2021

카프카의 '변신' 짧게 읽기

문학으로 배우는 첫 심리학 수업

벌레가 되어 버린 그레고르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길한 꿈에서 깨어나자 자신이 한 마리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꿈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틀림없는 자기 방이었다. 


  그레고르는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출근이 늦었기 때문이다. 그는 외판사원이었다. 벌써 5년째 기차로 지역을 순회하며 고된 외판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외판일은 일 년 내내 낯선 사람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교제도, 친해지는 사람도 없이 일해야 하는 고달프고 외로운 직업이었다. 


  5년 전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하자 그레고르는 미친 듯이 일에 전념했다. 천식을 앓는 어머니는 일을 하기 어려웠고, 철부지 어린 여동생이 생계를 도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레고르는 아버지의 파산이라는 비극을 가족들에게서 하루 빨리 지우게 하려고 남보다 훨씬 열심히 일했으며, 그 결과 일개 점원에서 정식 외판원으로 금세 승진할 수 있었다. 


  외판원이 된 후부터 그레고르는 충분히 돈을 벌기 시작했다. 가족들의 생활은 나아졌고 지금 살고 있는 좋은 집도 얻을 수 있었다.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안락한 삶과 행복, 만족을 이뤄낸 것에 스스로 대견스러워 했다. 그는 이번 크리스마스 때 누이동생 그레테가 그토록 가기 원하던 음악학교에 어떻게든 보내주겠다고 약속할 참이었다. 불가능해보였던 그 일을 해준다는 것만으로 그레고르의 가슴은 뿌듯했다. 이처럼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정작 그는 하루 용돈으로 고작 2,3굴덴을 쓰는 게 전부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좁은 방에 틀어박혀 작은 액자를 만드는 것을 취미로 삼을 뿐이었다. 


  그레고르는 외판원으로서도 늘 최선을 다했다.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멀리까지 출장 가는 일이 잦았고, 5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아파서 결근한 적도 없었다. 일이 고되기는 했지만 사장의 눈치를 봐가며 꾸준히 실적을 유지해왔다. 얼마 전에도 꽤 괜찮은 계약을 따내 주문서를 제출해두었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벌레가 되다니. 그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대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출근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그레고르는 답답했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마음이 불안했다. 시간이 흐르자 회사의 지배인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레고르의 부모는 그레고르가 아프다고 둘러댔지만 지배인은 개의치 않고 방 앞에서 그레고르를 압박했다.


  “사소한 병은 영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참아내야만 합니다. 그레고르! 자네의 최근 실적은 별로 신통치가 못해. 알아듣겠나?”


  이 말에 그레고르는 흥분했다. 어떻게든 출근을 해야 했다. 그래야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고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배인에게 당장 준비해서 출근하겠다고 정신없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 소리는 문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단지 짐승의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그레고르는 지배인에게 자기 사정을 말하려고 벌레가 된 채로 방을 나섰다. 이를 지켜본 지배인은 기겁을 하며 도망쳤고, 깜짝 놀란 아버지는 한동안 훌쩍이더니 이내 마음을 바꿔 그레고르를 방으로 몰아넣으려고 했다. 아버지는 막무가내였고 그레고르는 그대로 방에 갇혔다. 



납작하게 말라버린 그레고르의 최후


  그날 방문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레고르는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그는 생각했다. 당장은 소란을 피우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이런 모습이 가족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으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지내며 가족들의 불쾌감을 덜어주어야 한다. 


  새벽녘에 누이동생이 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보고 흠칫 놀라며 다시 문을 닫아버렸다. 잠시 후 동생은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식사는 늘 이렇게 동생의 몫이 되었다.


  그레고르가 변신한 지 한 달쯤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그 즈음 그레고르는 방안에 있는 게 답답해서 천장과 벽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동생은 이를 알아차리고 방안에 있는 가구를 치우려 했다. 하지만 혼자서 감당하기가 어려워 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했다. 어머니는 동생과 가구를 치우다 문득 생각난 듯, 가구를 모두 치우면 그레고르가 섭섭하게 여기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러자 쇼파 밑에 숨어 있던 그레고르는 자기 물건을 하나쯤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머니와 동생이 나간 틈을 타서 벽에 붙어 있던 액자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한 번도 그레고르를 본 적이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보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동생에게 전후 사정을 듣더니 그레고르에게 뭔가를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사과였다. 제대로 겨냥도 하지 않은 사과들이 날아왔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등에 정통으로 박혔다. 그때 어머니가 달려 나왔다. 그녀는 외쳤다.

  “제발! 그레고르를 살려줘요! 부탁이에요.” 


  사과 사건이 터지고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하숙을 들였다. 그들은 질서와 청결을 우선시하는 신사들이었다. 어느 날 저녁 시간. 사내들은 식사를 하고 있었고 동생이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사내들은 바이올린 소리를 듣더니 연주를 직접 보고 싶다고 청했다. 이때 그레고르도 누이동생의 바이올린 연주 소리를 듣고 방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런데 바이올린 연주를 청했던 사내들이 몹시 지겹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레고르는 동생이 더 이상 모욕당하지 않도록 자기 방에서 연주를 하자는 신호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사내 중 한 사람이 아버지를 부르며 거실을 기어 다니는 그레고르를 가리키더니 곧 하숙을 해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동생은 이 일에 무척 화가 났다. 

  “이제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어요. 저것을 없애 버려야 해요. 내쫓아 버리는 거예요.”


  그레고르는 방안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애정을 갖고 집안 식구들의 일을 생각해봤다. 자신이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그의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졌다. 그리고 그의 콧구멍에서 마지막 숨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다음날 동생 그레테가 숨이 끊어진 채 납작하게 말라붙은 그레고르를 보며 말했다. 

  “정말, 어쩌면 저렇게 여위었을까? 하기는 꽤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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