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에 비해 머리만 컸다. 지하실 속에 있었지만, 내가 상상하고 꿈꾸던 곳은 지하 세계속에만 있진 않았다. 멈춰서서 보다가 계속 보니까 눈 앞에 있던 꽃이 내가 키운 꽃인 줄로만 알았다. 그것이 나의 첫 실패. 연립주택의 삶이란 그렇게 가깝게 모여있다. 모여서 서로를 알지 못 하고 같은 크기로 조정된다. 같은 크기인 것들끼리 모이는 게 나쁘진 않지만, 그러다 보면 서로의 계단을 궁금해하지 않고 내려가는 사람도 올라가는 사람도 어디를 붙잡아야 할지 혼란스럽게 된다.
1. 내려가 보지 않음.
아팠는데 내 아픔을 인정하기까진 오래 걸렸다. 어쩌면 건강하게 태어난 나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건강한 폐를 가지고 내려가는 계단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어린 나는 주눅들어 있었지만, 명랑이 있었다. 보고 있으면 쪼만한 게 어쭈, 하고 쓰다듬어주고 싶은 건방진 눈을 가진 나. 가진 게 없으면 목이라도 빳빳해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받고 싶지 않아서. 더 아닌 척, 괜찮은 척을 했다. 자꾸 그렇게 속이다 보니 말하는 입까지 빼앗겼다. 말해야 할 때마다 도망치고 숨었다. 잘 숨었다면 이러한 가슴 아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태어났기 때문에 그 속에서 아픔까지 먹었다. 아픔을 아팠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아물 수도 있었다. 상처입은 치유자(나르만 저)를 보면 상처 받은 자의 쓸모란 아픔의 크기를 재어볼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자신을 향하던 몸에서 다시 바깥을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쓸모는 누가 정하는 걸까? 나는 내 쓸모를 어떻게 정해볼 수 있을까? 나는 쓰기 말곤 그닥 잘 하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쓰기도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잘 해도 박수를 치며 크게 말한다. 클 수 있는 내가 될 것 같아 나에게 계속 박수를 쳐준다. 박수를 계속 치다 보면 옆 사람에게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잘 하고 있다고. 나아질 거라고. 끝이라고 단정짓지 말라고 말이다.
2. 창문을 열고
걸으면서 하는 생각들은 대부분 쓸데없지만, 쓸모가 아주 없지만은 않다. 걷다 보면 걷고 있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걷고 있는 생각이다. 꿈에 대해서는 말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너무 많이 있다. 나는 걸어가고 있는 생각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노르웨이 레이네, 레이네의 마당을 상상해 본다. 보지 못 했다고 가지지 못한 것은 아니다. 보지 못 했기에 더욱 꿈꾸며 다른 레이네로 갈 수도 있다. 모두에게 어울릴만한 모습으로 말이다. 나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평화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나.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잘 싸우는 기술을 습득하지 못해 더 큰 화를 낸다. 그러다 보면 좋았던 나까지 사라져버리고 만다. 한번 낸 화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레이네는 어디론가 가버린다. 레이네의 마당엔 슬픔만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 마당을 매일 걷기란 무리라고 본다. 설사 그것이 우리가 믿는 진실과 다르다 해도 진실은 어디에나 있고 다 맞고 옳은 것은 아니다. 마당은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것을 망한 마당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3. 하늘에서
사랑을 연구한 학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사랑에 매몰 된 학자는 누가 있는지 모르겠다. 고작 사랑이라며 비웃던 사람들이 대다수 였다. 우리는 무엇으로 성장하고 자라며 다시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일까. 도약하는 사랑은 허들을 만든다. 그 허들은 뛰어넘고자 하는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알 수 없는 허들이다. 왜 그것들이 생겨났냐고 물어도 답은 없다. 답이 없기에 허들은 아름답다. 만약 그것이 설명되어 질 수 있었다면 모두 같은 허들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크고 높은 허들을 갖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렇다면 같은 허들 속에서 사랑은 때가 없어진다. 때가 없어진 사랑은 시력을 잃고 안개로 변하게 된다. 안개 속의 사랑은 실체가 없다. 실체는 없지만 존재하는 사랑이라 말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화를 느낀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얼마나 다양한가. 정의내릴 수 없음. 그것의 가치는 허들 넘기 속에 있다. 그러니 너무 사랑을 얕잡아 보지 말아라. 연구가 실패해도 사랑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우리가 알았던 때에도, 알지 못 했던 때에도 사랑은 사랑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한다.
4. 지하실
물이 차는 곳이었다. 곰팡이가 자라나는 곳. 그곳엔 액자가 걸려있었다. 엄마가 신문을 오려 끼워둔 것이었다. 서로 다른 구름 모양이 서로를 응시한다. 보고 있다. 엄마는 그것을 왜 지하실에 걸어둔 것일까?
5. 노르웨이 레이네
길찾기, 길찾기 버튼을 다시 눌렀다. 새로운 셋팅 값으로.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길을 만들어간다는 느낌으로 간다. 비겁했지만, 좋은 눈을 가지고 있다. 좋은 눈이란 좋게 보려고 애쓰는 눈일 것이다. 그 눈은 꼭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몇 개의 길을 가게 되던 길로 나아가려는 의지는 생을 잇는다. 모두의 도움을 받으며 노르웨이 레이네는 다양한 사진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