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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Jul 12. 2024

메이 (air mail)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오른쪽 발과 왼쪽 발을 두고 어느 쪽을 먼저 내디뎌야 할까. 

이 맑음 속에 사실은 비구름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면 반쯤 정신 나간 소리겠지. 

아침 일기예보에 없는 이야기니까. 

아니야, 내가 가는 곳엔 늘 비가 왔다니까.       


오른발.      


동네가 무척 조용하다. 한적하다고 해야 하나 

자동차 바퀴에 슬리퍼라도 신겼나 봐 달리는 소리마저 왜 이렇게 나지막할까.

눈치 없는 내 발소리가 부끄럽게.

이곳에서 살고 싶다. 

이런 바보 같은 생각도 살게 되면 지워질 생각이지.   

   

왼발.      


오래된 목조 계단을 올라가 한 사람만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좁은. 

왼편 창으로는 파릇파릇한 공원의 나무가 보이고 

오른편 창으로는 방금 내가 걸어온 그 나지막한 길이 보여. 

자리를 잡고 앉으면 읽을 수 없는 메뉴판이 앞에 놓이지. 

고민할 것도 없으면서 그것들을 읽을 수 있다는 듯이 고민을 하고, 

앞장으로 갔다 뒷장으로 갔다 반복하지. 

서툰 그 나라 말로 인기 메뉴가 무언지 물어봐. 여기까지 와서 실패하고 싶지 않으니까. 

마스터는 자기 할 일을 하며 천천히 기다려줘.


다음 손님은 별말 없이 자리에 앉아 아무런 메뉴도 고르지 않지. 

그런데도 배달되는 커피잔을 보며, 세상에 얼마나 오랜 세월 같은 시간에 와서

똑같은 커피를 몇 잔이나 마셨을까? 차마 물어볼 수 없는 궁금증을 가져보지. 

알아듣지는 못해도 마스터와 주고받는 아주 짧은 대화에서 서로의 시간이 느껴져. 

카페를 이루고 있는 분위기이자 공기 같다고 말이야.

나이 지긋한 마스터 뒤로 한 남자가 팔짱을 끼고 웃고 있어. 

마스터 전의 마스터였겠지 짐작하며 보고 있는데 

구수한 커피 향과 마스터의 빨간 애기 사과 같은 펜던트가 눈에 들어왔어. 

나름의 사연과 이야기를 가졌을 것만 같은 눈으로 빛이 마주쳤지.     



1977년, 시작에 와있어. 

커피를 내리는 마스터의 손이 떨려.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면서 옛날 방식 그대로 커피를 내리는 1977년은 시끄러운 기계음이 빠진 물 주전자 끓는 소리로 가득해.      

부부의 커피 맛은 달랐다고 하는데 커피에도 각자의 얼굴이 있구나. 

서로 다른 손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그랬을지도 모르지. 

묘하게 다른 그 맛을 알아본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때로 나도 돌아간다면 차이를 알아챌 수 있었을까?      

메이, 다음엔 너와 함께 오고 싶어. (진부하고 뻔한 말이지만)

그래도 투명한 유리잔 앞에서 이런 마음을 갖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

아무리 긴 문장으로 설명하려고 해도 설명되지 않는 이곳의 공기를 너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너는 이곳에서 어떤 시간의 나이테를 느낄까?

그것이 내 것과 다른 것이라 해도 실망하지 않겠지. 그걸 느껴보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오자는 말을 건네는 거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또 다른 카페를 가지게 되는 셈이야. 

쪼개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두 개의 조각이니까.      

이제 왔던 길을 더듬어 혼자 돌아가야 해.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지만,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예의는 아닐 거야. 

시간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아. 

오후 늦은 시간에 올걸. 

해가 질락 말락 하는 시간에 앉아 테이블로 지는 빛의 기울기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이곳의 창을 몰랐으니까. 

이렇게 다음 시간이 정해졌네. 



그때도 창가 자리 말고 마스터를 볼 수 있는 오픈 테이블에 앉자.

빨간 애기 펜던트가 가진 비밀들을 조심스레 펼쳐 볼 수 있게.

삐그덕 거리는 한 사람분의 목조 계단을 나란히 오르는 것도 꽤 재밌을 거야. 

설마 우리 때문에 무너지는 건 아닐까 불안해하며.      

왔던 길을 함께 되돌아가는 하루를 그려보고 있어. 

그런 우리 두 사람의 뒷모습을 누군가 몰래 사진으로 찍는 거지. 

우리는 볼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는 사진 속에 

영원히 남자.      




1977년이 찍힌 사진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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