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Jul 25. 2024

수경

 사람들이 전하는 가짜 뉴스를 믿지 않았다. 비 오는 날 지하철을 타고 압구정로데오역에 내려 떨어지는 비가 보이는 투명 천장을 바라볼 때. 사람들의 말도 이처럼 투명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수경은 생각했다. 바라보는 것과 보이는 것 중에서 사실은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내리는 빗소리에 집중하며 수경은 일터로 향한다. 비 오는 풍경은 채도가 낮다. 그런 속에서도 수경은 빗소리와 우산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저 거리에 사람들이 서 있구나. 수경과 같은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다니고 백화점으로 쇼핑을 하러 온다는 것. 같은 거리와 풍경 속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것에 집중하다 보면 세상에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을 따라 유니폼 안으로 팔을 집어넣는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작은 기쁨과 발견은 언제나 어디서나 있을 수 있다. 숨 돌릴 시간 없이 바빴지만 쉬는 시간에 먹게 될 아이스크림을 그리며 수경은 상품을 담고 고객을 향해 웃는다. 누군가는 그게 자본주의 미소 아니냐 하겠지만, 웃는 이가 진심이라면 미소에 매겨지는 가격은 없다. 백화점에 오래 있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얼굴들도 있고, 새롭게 보게 되는 얼굴들도 있다. 자주 보는 얼굴들은 익숙해서 반갑고 새롭게 마주치는 얼굴들은 단조로운 일상에 틈을 내준다.      


 오후 6시쯤이었을 거다. 대기줄 아닌 쇼케이스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수경 대신 고주임이 먼저 가서 말을 걸었다. “찾으시는 거 있으실까요? 도와드릴까요??” 남자는 질문에도 대답없이 쇼케이스 안 상품만 바라보고 있었다. 고주임이 수경을 쳐다봤다.      


“편하게 혼자 보시겠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비켜주려는데 남자가 느닷없이 고주임을 불러세웠다.      


“아가씨, 최근에 언제 하늘 올려다봤어요?”      


하늘, 같은 하늘 아래 하늘을 말하는 건가? 고주임이 대답을 하지 못 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수경이 나섰다.      


“전 어제도 보았습니다.”

“그래요? 아가씨는 좀 대화가 되겠네. 왜 요즘 사람들이 하늘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 아마도 여유가 없어서 그렇겠죠?”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둘의 대화를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듣던 고주임은 수경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 무례한 손님과 오래 말을 섞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럴 시간 있으면 앞에 줄 선 사람들을 먼저 응대하는 게 매뉴얼상 맞으니까. 수경은 고객의 질문이 궁금했다. 백화점 식품 코너에 와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 사람의 마음속엔 무엇이 있기에 이런 질문을 여기 와서 던지는 걸까?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손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지금 줄이 좀 길어서요. 뒤로 가서 서주시겠어요.”

“난 아가씨랑 이야기하려던 게 아닌데” 하면서 수경을 쳐다봤다.

“하늘엔 그럼 뭐가 있을 것 같나요?”

수경은 휴대폰을 꺼내 손님 앞에서 보이게 녹음버튼을 눌렀다.

“흥미로운 질문을 자꾸 하셔서 녹음 좀 하겠습니다. 그래도 되죠?”

남자는 그러라면서 상관없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하늘에 뭐가 있다는 거죠?”


 역으로 다시 수경이 질문을 던졌다.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남자도 지지 않았다.

 “답을 가지고 저한테 질문하시는 것 같아서 여쭤봤습니다.”     


 남자는 수경의 눈을 뚫어져라 본다. 무언가 알고 싶어 하는 눈이었다. 수경도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남자 팔에 뱀 문신. 뱀?      


 “저는 하늘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질문을 하면서 연구에 도움이 될만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어요. 바쁘신 줄 알지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이렇게 무작위로 다니시면서 하시는 거로군요.”     


 수경도 모르게 속마음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수경은 답답했다. 자신은 일하는 사람이고, 여기는 백화점이다. 굳이 남의 일터까지 와서 수집하고자 하는 연구라는 게 뭘까? 궁금은 했지만 따져 묻지 않았다. 언성을 높인다 한들 서로에게 좋을 게 없을 테니까. 수경은 아까 점심때 먹은 아이스크림콘을 떠올리며 제발 제발 남자가 가주기만을 기다렸다.


 “아가씨, 내가 이런 질문 하니까 기분이 어때요? 짜증나??”     


 남자는 다시 한번 수경을 보았다. 거기엔 어떤 기분도 담겨있지 않았다. 수경은 정체 모를 남자가 퇴근을 2시간 앞둔 시간에 와서 저러는 것이 백화점의 문제인지, 사회의 문제인지, 비가 오는 날씨 탓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고주임은 비가 오는 날이면 정신 나간 사람들이 더 많이 밖에 나온다고 불만을 털어놓곤 했다. 그렇다면 비는 우리에게 해롭기만 하고 나쁘기만 한 걸까? 앞으로 이런 일엔 비기 와서 그렇구나, 하며 날씨 탓만 하면 되는 걸까. 사람이라면 저마다 조금씩 이상함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자신의 이상함도 타인의 이상함도 누구의 이상함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그걸 받아들이기엔 시간은 짧고 사람들 하루하루가 고되다. 돈 벌며 살아가는 일 말이다. 남자는 수경의 휴대폰을 자기 앞으로 가져가면서 대답을 재촉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고객님은 어떠신가요?“


 남자는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수경을 바라봤다. 남의 생각을 읽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수경도 남자도 서로의 생각을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안다는 짐작만 있을 뿐이다.수경은 떠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려 했는데 고주임이 쓸데없는 말엔 길게 대꾸하지 말라며 나무랐다. 자리로 돌아와남자의 뒷모습을 찾았지만 남자는 마치 그 공간에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있었는데 없어진 사람. 백화점 식품 코너에는 밖을 볼 수 있는 창이 나 있지 않다. 지금도 비가 내리는지 아닌지 볼 수 없고 비 오는 밤하늘은 유독 더 새까맣다. 밤은 원래 그런 거라지만. 비 그친 바깥 공기에서 나는 비 냄새를 수경은 좋아한다. 밤이 아무리 까매봤자 수경은 그 안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 찾는 사람이다. 수경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수경.







작가의 이전글 마라탕에 빠진 4단계 사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