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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Sep 17. 2023

이 재밌는 걸 혼자 탔어?!

엄마 대신 라이더가 되었지 03

20대 초부터 바이크를 탔다는 남편과 연애할 때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바이크 타는 남자라 끌린 것도 아니고, 바이크를 타서 싫은 것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건 하고 살아야지. 보호장비 갖춰타고 몇 년째 무사고라는데 알아서 잘하겠지. 바이크만 위험한가? 차도 위험하고, 자전거는 위태롭고, 길 걸어 다니는 것도 불안한 세상인데.


보통은 바이크 한번 타려면 연인이나 가족의 허락을 받거나 몰래 타기도 한다는데, 나는 안 된다고 한 적이 없다. "형들이랑 속초 가기로 했어." "응, 잘 갔다 와~" "성수동 밤바리나 갈까..." "그래, 놀다 와~" 심지어 쭈뼛쭈뼛 "나 알차 타도 돼?" 물어볼 때도 "타~ 더 나이 들면 허리 아파서라도 못 탄다." 부추기는 쪽이었다.


*알차: R차. 레이싱 바이크를 모방해서 만든(Replica) 스포츠 바이크. 디자인이 미끈하고 속도가 빨라서 거의 엎드리다시피 착 붙어서 타게 된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쇼옹!! 하며 멀어지는 오토바이들.


아니나 다를까. 몇 달 신나게 타고 다니더니 허리도 아프고 너무 빨라서 계속 타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겠더라며 투어러 모델로 바꾸겠단다.


*투어러: Tourer. 장거리 여행에 적합한 바이크. 오래 운전해도 피로도가 적은 디자인이라서 의자에 앉아있는 것처럼 편한 자세로 탈 수 있다.


괜한 허세 안 부리고 알아서 자기 몸 챙기는 게 귀여워서 혼자 씨익 웃었다.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질려도 봐야지. 못하게 막아봤자 소용없다. 그때 할 수 있는 건 그때 하고 넘어가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 꾹꾹 참고 지내다가 늦바람 들면 자기는 몸 고생, 주변 사람은 마음 고생.


바이크 타는 남자와 연애하면 뒤에 같이 타고 다니면서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다니던데, 연애와 결혼 합쳐서 5년이 넘을 때까지 나는 바이크 뒤에 앉아본 적도 없었다. 혹시라도 사고가 나서 다치게 할까 봐 남편은 나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절대 뒤에 태우지 않는 사람이다. 겁 많은 나도 딱히 타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그런데,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10년 넘게 해 오던 강의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미뤄지고,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고, 버스나 지하철 타는 것도 조심스러운 시간이 1년을 넘기면서 '갑갑한데 나도 바이크나 타볼까...' 하던 마음이 '바이크라도 타야겠어!! 지금 당장!'으로 붙같이 번졌다.


샛노란 바이크를 사서 뀰(꿀+귤)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고, 주차장에서 느릿느릿 연습하던 시기를 거쳐 처음 도로를 달린 날의 감동이란...! 겁이 나서 숨도 제대로 못 쉬겠더니 점점 풍경도 보이고 따뜻한 햇살도 느껴졌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 기분은 마치 바닷가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멋대로 춤추고, 하늘은 두 눈 가득 들어차고.


앞뒤로 달리는 차가 생생하게 보이고, 횡단보도에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잘 보였다. 좁은 골목에서 유모차나 강아지를 마주치면 크게 말해주고 싶을 지경. "무서워하지 마세요~ 제가 다 보고 있어요. 너무 잘 보여요!" 차에서는 보닛이나 창틀 때문에 안 보이던 것들이 시력이 좋아진 것처럼 잘 보였다.


난생처음 도로를 달린 후 바이크에서 내리자마자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통~! 통~! 제자리 점프를 했다. 계단을 뛰어 올라와 두꺼운 라이딩 재킷을 벗으면서는 흔들흔들 막춤까지 췄다. "와~ 이 재밌는 걸 지금까지 혼자 탔어?!" 남편이 피식 웃는다. "아, 약 올라." "왜애~? 지금까진 혼자 재밌었는데 내가 너무 신나니까?" "어!!" "히힛. 신~난~다!"





감정 카드로 워크숍을 진행하다 보면 최근 느낀 감정으로 '즐거운' '흥분되는' '신나는' 같은 감정을 고르는 어른이 거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 그런데, 바이크 탈 때는 신난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물 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울 때, 마음이 무채색일 때, 이유 없이 무기력할 때 스스로에게 처방할 소소한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둘이서 바이크 타고 갈만한 카페며 새로 나온 장비며 같이 나눌 이야깃거리가 늘어난 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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