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신 라이더가 되었지 04
남편과 바이크를 타고 달리면서 나누는 길 위의 대화를 좋아한다. 식탁에 마주 앉아서,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하는 대화랑 확실히 다르다. 목소리 톤도 달라지고, 나오는 이야기도 새로워진다. 때론 더 오붓하게, 때론 더 유치하게.
처음 헬멧을 살 때 남편이 "세나도 사야 돼." 했을 땐 "세나가 뭐야?" 어리둥절했다. 세나는 블루투스 기기 브랜드 중 하나인데, 이게 있어야 음악을 듣거나 전화 통화도 할 수 있다. 여럿이 바이크를 탈 때는 서로 연결해서 길 정보를 공유하고 실없는 농담으로 낄낄대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룹 통화랑 비슷한데,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연결은 끊긴다. 하긴, 시끄러운 도로에서 "여기서! 우회전!!" 소리 지르는 게 아니겠지. 백허그로 뒤에 타서 "사랑한다구요!!" 고백하는 장면 같은 걸 너무 봤나? 바이크 타고는 다 그렇게 얘기하는 줄 알았다.
'아, 그러니까 차랑 휴대폰을 무선 연결하는 거랑 비슷하구나. 그럼 소리가 어디로 들리고 말은 어떻게 하는 거지?' 블루투스 스피커를 헬멧에 설치하면 거대한 헤드폰을 쓴 것처럼 음악이나 목소리가 잘 들린다. 비 오는 날은 토독토독 헬멧에 부딪히는 빗소리와 잔잔한 음악이 어루어져 마음이 몽글해진다. 조그마한 마이크는 헬멧 속에 넣기도 하고 헬멧 밖에 붙이기도 한다.
각자의 바이크로 저 멀리 따로 달리면서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속닥속닥 얘기할 수 있다니 신기했다. 연애하던 시절 늦은 밤 나른하게 통화하던 기분이 들어서 조금 간지럽기까지 했다. '맞아, 얘 전화 목소리가 이랬지.' 익숙하면서 낯설다. 결혼하고 매일 붙어지내면서는 시시콜콜한 통화를 할 일이 없으니까. 부부의 카톡이란 ‘나 집으로 출발’ 귀가 알람, ‘이제 요가원 도착’ 위치 공유, 웃긴 밈 링크 전달이 대부분이니까. (이런 담백한 변화가 싫진 않다.)
"저 차 끼어들 거 같으니까 조심~" "오키!" 위태로운 도로 상황을 서로 알려주기도 하지만, 순간의 감정을 놓치지 않고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와! 오늘 하늘 너무 예쁘다!" "어, 진짜 그러네~" 키 큰 플라타너스가 터널처럼 늘어선 길을 지날 때마다 "여기 여기, 내가 좋아하는 길!" 말했더니 "오늘은 너가 좋아하는 길 지나서 죽 직진할 거야." 응용할 줄 아는 남편이 귀엽다.
걷기와 달리기도 그렇듯 몸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은 산뜻하다. 현실이 답답하고 미래가 불안할 때 좁은 집에서 둘이 부대끼다 보면 마주 보고 한숨만 쉬는데, 신나게 바이크를 타다 보면 "까짓 거, 어떻게든 되겠지!" 단순해진다. 다 괜찮고, 다 잘될 것 같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 차 많고 사람 많은 복잡한 서울의 도로를 헤쳐 나가다 보면 동지애마저 생긴다. 서로가 새삼 고맙고 든든하다.
그래서, 집 안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싶으면 도레미파솔~ 솔 톤으로 목소리를 높여 남편을 부추긴다.
"우리, 바이크 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