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신 라이더가 되었지 02
사람들은 아홉 살 차이 나는 우리를 신기해하지만, 정작 우리는 나이차를 거의 못 느끼고 산다. 또래에 비해 나는 철이 없는 편이고 남편은 어른스러운 편이라 그런가? 하긴, 원래도 나는 동갑이나 연하가 좋았고, 남편도 연하보다는 연상이 잘 맞았다고 하니 아홉 살 차이는 처음이어도 연상연하 커플 자체에는 둘 다 거부감이 없었다.
4년 넘게 연애하고 결혼한 지 4년 째인 지금도 아홉 살 차이가 실감 나는 때는 거의 없다. 우리가 나이 차이를 느낄 때는 옛날 TV 프로그램이나 20년 전 핫하던 연예인, 2002년 월드컵 얘기를 할 때 정도? 핑클 뮤직비디오가 자료화면으로 방송에 나오면 "크흐, 저 때가 대학교 1학년이던가?" "헐! 난 초등학생이었는데!" "으앜ㅋㅋㅋㅋ" 마주 보고 한참 웃는다. (그리고, 이런 류의 얘기는 매번 우리의 웃음 버튼이다.)
나는 대학 생활을 삐삐로 시작해서 자우림의 17171771에 담긴 애틋함을 알지만, 남편은 "응? 그게 뭐야?" 삐삐를 모른다. 기숙사 공중전화 박스 쪽 창가에 붙어서 시티폰으로 삐삐를 확인하던 짧은 시절을 거치고 나서야 나는 휴대폰을 썼는데, 남편은 고등학생 때부터 휴대폰을 쓰던 세대이다.
어쩌다 라디오에서 올드팝이 나올 때도 "와, 진짜 세대가 다르구나." 싶은데, 사실 이건 나이 차이 보다 음악 취향 차이가 더 크다. 나는 오성식의 굿모닝 팝스 들으면서 영어 공부하길 좋아하던 아이였고, 남편은 힙합과 검도, 마술을 좋아하던 아이였으니까. 음악 취향 다른 건 지금도 여전하다. 우리 집은 운전대 잡은 사람의 플레이리스트가 우선권을 가지기 때문에 어쩔 땐 힙합보다 발라드나 BTS가 듣고 싶어서 "내가 운전할게, 내가 내가!" 운전석에 냉큼 앉아버린다.
남편은 포켓몬, 게임, 애니메이션 같은 이야기만 나오면 어렸을 때처럼 신이 난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얘는 이상해 씨고, 진화하면 이상해 풀이 되는 거고~" "안 궁금해~ 설명 안 해줘도 된다고오!" 귀를 막으면 눈이 더 반짝반짝 빛나서 "거기서 진화하면 이상해 꽃이 되는 거야~ 그래가지구~" "아~아~ 안 들려 안 들려!" 듣기 싫어해놓고, 포켓몬 스티커가 들어있는 치킨 너겟을 마켓컬리로 스윽 주문해 주는 나도 참... 이런 게 사랑인가?
강산도 변할 9년이라는 시간만큼 우리가 공유하는 과거의 기억은 다르지만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오늘을 어떤 일상으로 채우고 싶은지에 대한 그림은 비슷하다. 그리고, 비슷한 그림체로 살아가는 게 결혼 생활에서는 큰 힘이 된다.
우리는 어떤 동네에서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주말을 어떻게 보내고 휴가는 어디로 떠나고 싶은지 죽이 잘 맞는다. 돈을 얼마나 벌고 싶은지, 아니 어떻게 벌고 싶은지, 어떤 돈은 망설임 없이 쓰고, 어떤 돈은 아끼는지가 비슷하다. 아이를 원하는지 혹은 아이 없는 삶을 원하는지, 어떤 스타일의 사람들을 좋아하고, 어떤 유형의 인간은 못 견디는지도 닮았다.
하지만, 닮은 마음을 맞춰보는 건 쉽다. 잘 맞을 때 잘 지내는 거야 누구와도 쉽지. 부부로 살아가는 데 더 중요한 건 나와 다르다고 손 놓아버리거나 나를 몰라준다고 등 돌려버리는 닳은 마음이 되지 않도록 애쓰는 게 아닐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다른 점을 발견하고 냉담해지기보다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마음, 울컥 화내고 못난 말로 짜증 낸 후 머쓱해진 마음을 늦기 전에 털어놓고 사과하는 용기, 상대방의 시큰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한 유치한 노력 같은 것.
물 흐르듯 편안한 사이라고 자부하는 우리 부부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불 같은 마음을 퍼붓다가 먼저 데어버리기도 하고 뾰족한 말로 쏘아붙여 깊은 곳을 찌를 때도 있지만, 늦어도 그 밤을 넘기기 전에는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잘못은 확실하게 인정하고, 팔 붙잡고 매달리고, 힘껏 안아주고, 웃는 얼굴 한번 보려고 우스꽝스럽게 망가지기도 한다. 화나고 서운하다는 말도 숨기지 않지만,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는다.
이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이고 싶으니까. 다르고 다른 두 사람이 가족으로 살기 위해 애쓰는 건 서로가 없는 삶을 살아내는 것보단 훨씬 쉬울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