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흑백 다이얼이 난이도 '극악'인 이유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이 다이얼에 루브르의 명화를 새긴 시계를 공개했습니다. 이 정도면 두 역사의 만남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명품 시계 브랜드(명맥이 끊인 적 없는 브랜드 중) 바쉐론 콘스탄틴이 루브르 박물관의 명화를 다이얼에 담는 프로젝트를 이어간다고 밝혔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1755년 장 마크 바쉐론이 스위스 제네바에 공장을 열면서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2019년 루브르 박물관과 파트너십을 맺은 뒤 2020년 기욤 쿠스투의 '마를리의 말'이라는 조각을 작품을 다이얼에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번엔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그림 '앙기아리 전투 속 깃발을 위한 투쟁'을 그려넣었습니다. 플랑드르 출신 화가인 루벤스는 17세기 초 이탈리아에 머무르면서 피렌체 시뇨리아 궁(현 베키오 궁)의 대회의실 건립에 참여했는데, 이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라는 작품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루벤스는 이후 다양한 기법으로 모사해 '앙기아리 전투 속 깃발을 위한 투쟁'을 만들었습니다.
모노크롬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작품을 위해 바쉐론 콘스탄틴은 그리자이유(grisaille) 에나멜 기법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리자이유 에나멜이란 일반적으로 검은 바탕에 흰색 등 한 계열 색으로 대상을 묘사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검은 바탕에 흰색 에나멜로 그림을 그린 건데, 얼핏 보기엔 한 색으로 그림을 그리다보니 단순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한 색으로 섬세한 묘사를 해야하다 보니 상당한 고가 시계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작업을 위해 바쉐론 콘스탄틴은 블랑 드 리모주라는 흰 에나멜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건 에나멜 작업은 색이 바뀔 때마다 가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명암을 표현하려면 각각 색이 다른 에나멜을 준비해놓은 뒤, 색이 바뀔 때마다 가열하다보니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수로 손상될 가능성도 높아지죠.
이번 작품을 만드는 데엔 갈색, 회색-갈색, 세피아-갈색, 크림-갈색 등 20가지 색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20가지 에나멜을 만들어 놓고 각 색이 필요한 구간마다 에나멜을 채워 넣은 뒤, 색이 바뀔 때마다 가열한 겁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도 에나멜이 상하지 않으려면 정말 많은 기술과 시행착오가 필요하겠죠.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를 경매에 부쳐 수익금을 박물관 교육 등에 기부하는 이 프로젝트는 '손목 위의 걸작(Masterpiece on your wrist)'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했습니다.
정확히는 시계를 완성한 뒤에 경매에 부치는 게 아니라, 낙찰된 이가 원하는 루브르의 소장품을 그려주는 식입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루브르의 작품을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로 손목에 올릴 수 있는 겁니다.
사실 바쉐론 콘스탄틴과 루브르가 파트너십을 맺은 과정도 상당히 재밌는데요, 2016년 'The Creation of the World' 이라는 클락을 복원하기 위해 서로 기술을 공유했다고 합니다. 루이 15세 시절인 1754년 시계 기술의 정수라고도 불리는 작품이라는군요.
루이 펠라(Louis Ferla) 바쉐론 콘스탄틴 CEO 역시 "수 세기에 걸쳐 역사를 쌓아온 두 기관이 21세기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협력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예술과 문화에 헌신하는 데에 오랫동안 두각을 보인 우리 메종은 루브르와 함께 함꼐 역사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