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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치노트 Aug 28. 2023

오메가의 에퀴녹스, 리베르소보다 먼저 탄생한 두 다이얼

오메가의 1980년대를 담은 시계

오메가 에퀴녹스. (사진=오메가 제공)

얼마 전 인스타그램으로 오메가(Omega)의 에퀴녹스(Equinoxe)라는 시계를 봤습니다. 한 쿼츠 무브먼트로 두 다이얼을 움직이는 이 시계는 케이스를 뒤집어 디지털과 아날로그 다이얼을 모두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시계가 만들어진 게 1981년이니, 당시로선 젊고 스마트한 느낌과 클래식한 기분을 모두 낼 수 있는 '양면 잠바' 같은 매력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시계 애호가들이 본다면 어딘지 모르게 경쟁사 거장들의 작품이 연상되는 디자인이지만, 케이스를 뒤집어 두 다이얼을 이용할 수 있는 '듀오 페이스' 기능을 도입한 것으로는 예거 르쿨트르(Jaeger Le-Coultre)보다 13년이나 앞선 기록도 나름대로 가진 매력적인 시계입니다.


이 시계의 레퍼런스는 DL 386.0813입니다. 케이스 소재는 스테인리스 스틸입니다. 까르띠에(Cartier)의 산토스(Santons)나 오데마피게(Audemars Piguet)의 로얄 오크(Royal Oak)처럼 스크루로 장식한 골드 플레이티드 베젤이 특징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리베르소와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이 시계는 쿼츠 무브먼트로 작동합니다. 무브먼트는 칼리버 1655를 사용했고, 방수는 30미터 정도입니다. 가격은 현재 크로노24 기준 약 1000~3000달러 사이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오메가의 에퀴녹스를 이야기하면서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죠. 예거 르쿨트르가 리베르소를 만든 건 1931년입니다. 케이스 위와 아래에 세 줄이 들어간 아르데코 디자인과, 폴로 스포츠 경기 중 글래스가 깨지지 않도록 다이얼을 뒤집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이야기는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익히 알려졌죠.


처음 리베르소는 한 면만 시계 다이얼이었고, 다른 면은 스틸 플레이트였습니다. 여기에 여러 각인을 하거나 에나멜 장식을 넣기도 했죠. 배트맨 시리즈에선 주인공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이 이중생활을 암시하듯 리베르소를 차기도 했습니다.


이후 예거 르쿨트르는 케이스의 양면을 듀얼타임 다이얼로 만들면서 자신들의 기술력을 증명해냅니다. 한개 무브먼트로 각기 다른 시간을 보여주는 두 다이얼을 작동시킨 거죠. 예거 르쿨트르는 한 면은 자신이 사는 지역의 시간을, 다른 면은 여행지의 시간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리베르소 클래식 모노페이스. (사진=예거 르쿨트르 제공)

재밌는 점은 예거 르쿨트르가 이런 듀오 페이스 기능을 선보인 연도가 1994년이라는 점입니다. 오메가가 듀오 페이스를 보여준 지 13년이 지나서야 이런 기능을 넣은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해외 시계 전문 미디어 '타임 타이드(Time-Tide)'는 첫 듀오 페이스 시계는 오메가가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기엔 조금 조심스러운 감도 있습니다. 먼저 오메가와 예거 르쿨트르가 아닌 다른 브랜드에서 먼저 듀오 페이스 시계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한 오메가와 달리, 예거 르쿨트르는 하나뿐인 매뉴얼 와인딩 무브먼트로 두 다이얼이 각기 다른 시간을 나타내도록 설계하는 기계식 시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연도만으로 비교하기엔 조금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 그대로 듀오 페이스는 오메가가 먼저 만들었을지 몰라도, 기계식 시계로서의 성과는 예거 르쿨트르가 먼저 낸 거죠.


오메가의 에퀴녹스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어딘지 모르게 당시 경쟁사의 디자인 냄새가 짙게 납니다. 케이스를 뒤집는 방식은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와 비슷하고, 스트랩은 1970년에 출시된 오데마피게의 로얄 오크를 연상시킵니다.


다만 쿼츠 파동의 여파가 강하게 남았던 1980년대, 쿼츠 무브먼트로 정확성과 기능성을 높인 드레스워치 사이즈의 럭셔리 스포츠 스틸 워치가 탄생한 점은 큰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기계식 시계를 만들던 럭셔리 브랜드들이 어려움을 겪던 시절, 보다 많은 소비자의 수요를 반영하려는 노력이 곳곳에 들어간 점에서 한 시대를 보여주는 훌륭한 시계인 거죠.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오메가가 에퀴녹스를 출시했을 때 낸 광고가 조금 새롭게 다가옵니다. '오메가의 새 에퀴녹스. 케이스를 뒤집어 두 시간을 알 수 있는 다이얼. 현격히(Brilliantly) 다른.'


이 시계가 등장한 1981년으로부터 2년 뒤, 오메가가 속한 SSIH(시계산업스위스협회)가 스와치 그룹에 통합되면서 오메가 역시 스와치 패밀리로 편입됩니다. SSIH는 1930년 오메가와 티쏘(Tissot)가 불경기 속에 살아남기 위해 통합하면서 탄생한 협회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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