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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Jul 26. 2021

저 페미니즘... 해도 될까요?

기혼 여성, 아이 엄마, 여교사.


내가 가지고 살아가며 주로 불리는 이름들은 페미니즘과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는다.


나는 비혼의, 화장기 없는 얼굴의,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매체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동경한다. 여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놓고, 속박되지 않는 삶의 모델을 제시하는 이들을 사랑한다. 생각과 신념이 외형과 이름이 모두 일치하는 그런 여성들의 삶을 보면서 '와 씨, 진짜 멋있다. 나도 저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중얼거린다.


그러면서 나는, 남편에게 물병 뚜껑을 열어달라고 하고, 길을 잘 못 찾거나 운전 실수를 할 때 마음껏 타박한다. 나의 소득이 남편에 비해 약간 적은 것에 균형감을 느낀다. 벽에 구멍을 뚫거나 가구 조립을 하면서 지나치게 우쭐댄다. 또는 학교에서 "남학생들은 단순하지만 뒤끝이 없어서 좋아요.", "나도 여자지만 여자애들은 어려울 때가 많아요. 아주 복잡하다니까요." 이런 말들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다. 마음에 안 드는 중년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여자들이 더 무서워." 이런 말이 툭 나와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자주 반성한다. 유치원에서 오는 가정통신문에 '엄마와 함께하는', '엄마가 신경 써 주세요' 이런 표현을 보고 분노하다가도,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하고 식히곤 한다. 세상보다 나를 먼저 검열해야 된다. 이 사회에서 태어나 아주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적당한 시기에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경험한 여자인 내 머릿속에 모순이 산더미니까. 세상이 나를 정상으로 보고 있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내 세상의 외부엔 비판할 건 천지 삐까리다. 결혼했더니 남편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남편 아침 걱정을 해대고, 애 낳고 복직했더니 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퇴근시간만 되면 빨리 안 가고 뭐하냐 성화고, 낮에 애 데리고 지하철 타면 심심한 장년층의 공식 참견 대상으로 전락...  남편의 부모는...... (너무 뻔해서 생략)


그런데 일단 내부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 속에다가 아주 꼬장꼬장한 페미니스트 한 분을 모셔다 놓을 생각이다. '아, 저 이렇게 생각했는데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이건.... 아니죠?' '아이고, 제가 또 망발을 했네요. 반성합니다!!!!' 또 때로는 '저 지금 좀 괜찮았나요? 하하하' 이러면서 그분께 인정받기 위해 발 동동 굴러 보려고 한다.


페미니스트라고 말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발 끝이라도 담그면 동경하는 그 세계가 흐려지는 건 아닌지. 그런데 모르겠다 일단 나는 좀 달라져야겠고, 방향성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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