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점심을 먹으러 신촌에 나가보니 신촌 상권의 침체가 연세로의 차없는 거리 때문이라며 차없는 거리를 폐지하라는 의도의 플랜카드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신촌 상권의 침체야 워낙 오래되었다. 내가 학부생이었을 때가 신촌 상권이 침체되기 시작했을 때니까. 어쩌다 신촌에서 선배들을 따라 축제기획도 참여해보고, 차없는 거리를 추진하려던 초반의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했었는데, 과연 차없는 거리 때문에 교통량이 줄고 연세로에 일반 차량들이 다니지 않아서 신촌 상권이 침체되는 것일까?
내 생각에 좋은 상권은 별게 아니다. 걸을만 하고, 먹을만 하면 된다. 그리고 기억에 남을만한 유니크함이 더해지면 대박이 난다.
신촌하면 생각나던 가게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프랜차이즈들이 가득차고, 주말에만 잠깐 닫는 반쪽짜리 차없는 거리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에게 제대로 기억에 남지도 않는 축제들을 유치해왔다(걷는데 방해만 되는 물총축제는 난 아직도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는 토마토 집어던지는 스페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트렌드가 바뀌면서 사람들이 더 힙하고 아기자기하고 유니크하며 먹을 맛, 걷는 맛 나는 곳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거기에 창천공원에 전혀 고래를 닮지 않은, 투표 때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연장은 왜 지어놨는지 모르겠다. 홍대의 상상마당처럼 뭔가 지어놓은 것 같은데 신촌하면 파랑고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모르겠다.(방금 찾아보니 인스타 해쉬태그에 신촌파랑고래가 1000개도 안된다. 만든지 3년이 넘었는데.)
내 생각에 일단 신촌을 걸을만한 곳으로 만드려면 경의선 철길과 신촌이 이어지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철길을 걷다가 신촌에서 차도 마시고, 밥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 경의선 철길이 만들어지고 신촌은 마치 새로운 고속도로가 생겨 파리가 날리게 된 국도변의 휴게소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서강대 부근에서 경의선 철길이 가까운데 이걸 어떻게든 신촌으로 이어지는 이미지로 만들어 경의선 철길의 새로운 중간 기착지로서의 신촌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물리적으로는 신촌로가 경의선 철길과의 연결을 가로막고 있는데 이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 신촌에만 있는 맛집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면 신촌에서 밥먹고 산책해서 연희, 연남에서 차를 마시는 그림도 나올 수 있다.(요즘은 신촌 뒷골목에 맛집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유니크함이 더해져야 하는데.. 잘되는 상권들은 뭔가 유니크함이 있다. 철길이든, 낮은 건물들로 인한 고즈넉함이든, 공장이었던 곳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든. 그런 유니크함들이 인스타에 업로드 되고 사람들이 그곳으로 붐비게 된다. 신촌은 그나마 넓은 보행로, 차없는 거리가 그나마 기억에 남는 요소였는데, 이를 없앤다면 다른 유니크한 브랜딩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차 없는 거리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신촌에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만한, 늘 고정되어 있고, 의미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나라면 연세로에 있는 아스팔트를 다 뜯어내고 완전 보행로로 만든다음 노천 커피거리를 만들든, 뭐를 하든 어쨌든 기억에 남는 무언가를 만들 것 같다. 차 없는 거리를 시행한지 8년이 넘었지만 차 없는 거리라는 껍데기만 있을 뿐 확실한 알맹이가 없다. 윤중로에는 항상 봄이면 벚꽃이 피고 사람들로 가득찬다. 경의선 철길을 생각하면 항상 푸릇푸릇한 잔디위에 모인 사람들이 생각난다. 안타깝지만 신촌에는 그런게 없다.
차없는 거리를 없애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야 더 절박하고 어려운 상황과 사연들이 있으시겠지만, 차없는 거리가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없어져야만 한다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라도 지금 학생으로 돌아가서 와이프와 데이트하라고 하면 조금만 더 걸어서 연남동으로 갈 것 같다. 심지어 지난주 결혼기념일에도 연희동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연애 이후 13년간 신촌에서 밥먹고, 차마시고, 영화를 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궂이 신촌에서 데이트를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신촌 상권의 부활은 왜 신촌으로 사람들이 와야 하는지 이유를 찾는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차없는 거리든, 벚꽃이든,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