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듯 하다. 남편의 대학원 뒷바라지를 10년간 하던 엘리자베스는 결국 이혼을 선택하고 뉴욕으로 돌아온다. 반가운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녀는 '리즈'의 삶과, '베스'의 삶을 앞에 두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결혼이라는 첫 번째 선택이 실패로 끝났기에 더욱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리라는 결심과 함께. 그리고 상상인지 현실인지 불명확한 두 개의 삶은 각자의 방향으로 서로 교차하며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뮤지컬 이프덴은 최근 대중화되고 있는 소재인 평행우주를 뮤지컬로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엘리자베스가 두 개의 삶을 놓고 고민을 시작하는 순간 하나의 세트를 두고 화려하게 배경이 전환되며 '리즈'의 삶과 '베스'의 삶이 무대에서 정신없이 펼쳐진다. 마치 두 개의 평행우주 속의 지구를 넘나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초반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지금이 리즈의 삶인지, 베스의 삶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극에서는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와 커리어 등 삶에서 현실로 부딪칠 수 있는 다양한 주제들이 두 개의 삶을 통해 펼쳐진다. 리즈의 삶에서는 선택의 중심에 '사랑'이 있었고, 베스의 삶에서는 '커리어'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펼쳐지던 두 개의 삶은 모두 '죽음'이라는 결말에 다다르면서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죽음 앞에서 엘리자베스는 어떠한 선택을 해도 그것이 자신의 삶이며 무엇이 되었든 뛰어들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연출적으로는 차라리 이번에 욕을 제대로 먹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이 모든게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뻗어나간 상상이었다는 식으로 조금은 가볍게 마무리를 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고, 마케팅적으로는 관객들에게 두 개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분기점을 잡아서 관객의 선택에 따라 극의 진행이 달라지게 했다면 다회차 공연 관람의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두 개의 삶 중 한 쪽에 더 무게를 실어주는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 아쉬움이 모두 잊혀질 정도로 강렬하게 남는 건 정선아 배우의 연기력이었다. 일과 사랑을 놓고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리즈와 베스라는 같지만 다른 두 인물의 미묘한 차이를 정확하게 연기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그를 잃은 슬픔을 소름 돋도록 완벽하게 표현하는 정선아 배우의 연기력을 보는 것이 이 공연에서의 가장 큰 재미였다.
부모님 덕분에 짧은 2박 3일의 자유를 누리며 공연도 보면서 와이프와 신혼시절로 돌아가볼 수 있었다. 2박 3일 뒤 부모님댁에서 첫째를 데려와 엊그제는 아이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다. 어제는 둘째까지 모두 합류해 우리 가족이 완전체가 되었다. 마치 그 과정이 공연의 전개과정 같아서 색다른 느낌이었다. 8년간의 결혼 생활이 5일만에 리마인더 되는 느낌이랄까.
나 또한 리즈와 베스의 삶 처럼 선택의 기로에 있었고, 결국 선택을 했다. 뮤지컬을 보며 내가 선택한 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결혼 전 자유롭고 즐거웠던 연애 시절이 생각났고, 신혼 초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과 결혼 후 아이들을 만나며 황홀했던 순간들도 스쳐지나갔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들만큼 현실에서 부딪쳐야 하는 다양한 고민과 아픔들도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절망감이 들때도 있었다. 어쨌든 그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들이다. 이미 선택에 뛰어들었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만약 내가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를 가끔 생각해보는 것은 재미있는 상상인 것 같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력도 훌륭하겠지만 정선아 배우 회차를 관람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