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은 긴 출산 후기 글
(이어서) 분만실 간호사 분들의 친절하지만 신속하고 프로페셔널한 손길에 따라 나는 어느새 수술방에 도착하여 침대에 누워있었다. 모든 일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져서 수술실에 들어와 있는 순간에도 어안이 벙벙했다. 이제 좀 있으면 내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낸다니. 그런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날 곳에 도착해서 준비를 속속들이 마치고 있었다.
의료진분들은 매우 여유가 있어 보였다. 마치 고요했던 긴 당직 밤에 하나의 이벤트가 생겨서 모두 조금은 들떠보이기도 했고(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정신없는 상태에서의 느낌), 제일 먼저 - 그리고 생각해보니 유일하게 - 아까 만났던 마취 선생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척추에 무통주사를 위해 꽂아 놓은 바늘이 있어서 그쪽으로도 마취가 가능해요. 근데 그렇게 되면 전신마취가 되어서 이따가 아이를 못 볼 수도 있어요."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네! 좋아.. 아니 괜찮아요! 그냥 전신마취로 재워주세요."
사실 나는 읽은 많은 후기에서 하반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진행하면 절개하는 느낌, 차가운 촉감, 소리 등등 감각이 살아있으므로 느낄 수 있는 두려움에 떨고 있던 중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안전하게 그리고 좀 더 편안하게 아이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아이 얼굴은 이제 앞으로 평생 볼 것이고, 밖에서 기다리는 남편이 아이를 잘 만나 확인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대답하고, 분명히 그 이후 몇 마디를 더 선생님과 대화했던 것 같은데, 여느 다른 마취와 마찬가지로 다음 기억은 수술이 끝난 후였다.
다행히 정신이 빨리 들어 아이가 수술실 밖을 나가기 전에 잠깐 볼 수 있었다. 몽롱한 상태에서도 우렁차게 우는 목소리, 포대기에 잘 쌓여있는 모습, 그리고 안정적인 수술실의 분위기에서 모든 것이 잘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수술을 마무리하고 아이는 잠시 아빠와 만나고 신생아실로, 그리고 나는 입원실로 이동하기 전 잠시 회복실에서 남편과 다시 만났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남편과 한 대화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둘 다 조금 들뜬상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우선 인증사진 먼저 보여달라고 하고 - 태지가 아직 덕지덕지 붙어있고 있는 대로 힘을 주어 얼굴을 찌그리고 우는 모습이 하나도 이쁘지 않은데 이뻐 보이는 그런 사진 - 손가락 발가락 다 세어 봤냐, 동영상은 왜 안 찍었냐 등등 물어보니 그럴 새도 없이 사진 두장 후다닥 찍고 데려갔다고 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새벽에 한 긴급 분만이라 신생아실 가서 아이를 씻기고 돌보고 그리고 첫 면회시간을 준비하려면 바쁜 스케줄이었을 것 같다.
내가 울었냐, 눈물이 났냐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았단다. 워낙 눈물이 없는 사람이라 - 단 한번, 코로나 검사 코 찌를 때 찔끔한 것이 내가 본 처음이자 마지막 남편 눈물이다 - 그러려니 했지만, 나중에 우리 엄마한테 물어보니 정서방이랑 통화할 때 울먹울먹 한 것 같다고 하는데 ㅎㅎ 머 남편에게 물어봐도 아니라고 할게 뻔하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남편이 감동적인 순간을 가졌구나 정도로 훈훈하게 정리하련다.
아직은 아이를 만나보지 않아서인지 먼가 계속 얼떨떨함이 이어지는 밤이었다. 저녁부터 자정까지, 이게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파도 속에 울렁이는 기분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