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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교사 Aug 17. 2019

벼룩시장 인생

없는 것 없는 벼룩시장


유학생활 쇼핑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건 벼룩시장이다. 벼룩시장은 4월 첫 주를 시작으로 10월까지 매월 첫 주 일요일에 시청광장에서 열린다. 시청광장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따라 골목골목마다 장이 서는데, 장이 워낙 커서 한 바퀴를 다 돌려면 반나절 이상은 족히 걸린다.      

벼룩시장에는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다. 가방, 신발, 옷가지, 주방용품, 전자제품, 장난감, 책, 문구류, 침구류까지…     

이런 벼룩시장은 힘든 유학생활에 숨통을 트여 주고, 살림살이에 쏠쏠한 재미를 주기에 넉넉하다. 그래서인지 봄 내음이 나기 시작하면 가슴은 벌써부터 뛰기 시작하고 마음은 이미 벼룩시장에 가있다.      

벼룩시장에 나오는 물건은 품질 면에서도 우수하다. 시중의 저가 상표부터 시작해서 휘슬러 압력솥, 지멘스·브라운마크의 전자제품, H&M과 베네통 상표가 붙은 옷과 신발까지.     

이렇게 나온 옷가지와 신발은 깨끗이 세탁되어 있는데다 깔끔한 집은 다림질까지 해서 나오기 때문에 중고라 해도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다. 가격은 그 어디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다. 유학 초에는 천 원 정도면 아이들 티셔츠나 바지 한 장, 아주 좋은 코끼리표(Elepfant) 가죽 신발까지 너끈히 살 수 있었다. 지금은 그 가격대에서 생각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보통 벼룩시장 제품은 천원 안팎에서 흥정이 시작된다. 서로 재미나 재활용을 목적으로 한 만남이기 때문에 가격을 그렇게 높게 책정하지 않는데다, 정말 친절한 주인은 그냥 공짜로 물건을 건네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든 한 몫 잡으려는 사람이나 장사꾼은 있기 마련. 그런 이들을 만나면 흥정도 안 되고, 벼룩시장의 깎는 재미도 사라진다.      

벼룩시장이 서는 전날은 잠을 설친다. 그리고 알람 없이도 눈이 저절로 떠진다. 알람 없이는 절대 못 일어나는 내가 말이다. 어떤 분은 벼룩시장이 서는 전날에는 목욕재개를 하고 기다린다고 말할 정도로, 유학생활에서 벼룩시장은 신성할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벼룩시장 내 경쟁자들     

벼룩시장에서 나의 치열한 경쟁자가 있다면 바로 터키 아줌마들이다. 이들도 벼룩시장의 단골 고객 중 하나이다. 이것은 그들의 독일 삶이 녹녹치 않음을 말해준다. 독일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데다, 그들이 하는 일이래야 허드렛일, 아니면 케밥 장사와 같은 자영업이 주를 이루니 말이다. 자연히 수입 또한 넉넉하지 않을 수 밖에. 그런 수입 속에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가자면 그들에게도 벼룩시장이 나만큼 긴요할 게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벼룩시장을 돌며 좋은 물건을 내가 치를 수 있는 가격보다 훨씬 웃돈에 흥정해 사버린다. 그래서 그들보다 서두르지 않으면 벼룩시장에서 싸고 좋은 물건을 놓치기 일쑤이다.     

이런 경쟁자들 때문에 벼룩시장 출근 시간은 나날이 빨라져 새벽 5시 반이 되었다. 공식적인 개장시간은 오전 8시지만, 6시만 되어도 부지런한 주인은 손님 맞을 준비를 끝내고 있기 때문이다.


벼룩시장 인생

벼룩시장 이용의 꿀팁 중 하나는 당장 필요치 않아도 미리미리 큰 사이즈의 옷가지며 신발을 사두어야 한다는 것. 정작 필요할 때 사려면 원하는 사이즈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신장으로 치면 이곳의 중학생 정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신장에 맞춰 중학생 사이즈를 사도 입을 수가 없다. 엉덩이와 허벅지통이 아이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의보다 바지를 고를 때가 더 고민스럽다. 대안은 허리와 통이 맞는 어른 것을 골라 바지 길이를 잘라 입던지, 아니면 몇 번 접어 입는 것이다.     

옷은 이렇게 줄여서든, 걷어서든 입을 수 있지만 전자제품의 경우는 다르다. 사실 전자제품을 벼룩시장에서 사기에는 리스크가 조금 있다. 바로 전원을 꽂고 확인할 수 없고, 벼룩시장 특성상 하자가 있을 때 물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테이프가 씹히는 플레이어를 구입해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좋은 물건을 많이, 그리고 싸게 사서 돌아오는 기분은,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어부들의 만선 때와 같다고나 할까! ‘어디서 이런 좋은 물건을 이 가격에 살 수 있으랴!’싶고, 그 물건을 보고 좋아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언덕배기를 자전거로 오르면서도 힘 하나 들지 않으니 말이다.     

벼룩시장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엄마의 초인종 소리에 맞춰 맨발로 뛰어 내려온다. ‘엄마 배낭 속에 뭐가 들었을까?’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벼룩시장… 독일인들에겐 그저 하나의 재미겠지만, 유학생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필수공간이다. 혹자의 말처럼 ‘벼룩시장 인생’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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