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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교사 Aug 17. 2019

‘외국인 가정은 말문이 막힙니다’

“엄마, 방과후에 남아 독일어 수업을 받으래요.”     

큰아이와 작은 아이는 의무적으로 방과후 독일어 수업을 일주일에 두 시간씩 꼬박꼬박 받아야 했다. 이는 당시 불거졌던 독일 교육수준 저하 원인을 늘어나는 외국인에게 돌리면서 나온 자구책이다. 외국인들이 독일에서 살면서 겪는 언어장벽은 낮은 사회적응력과 사회통합 저하를 가져오고, 그것이 다시 각종 사회문제와 범죄를 일으킨다는 논리이다. 현재 독일 내 외국인 비율은 8.6%(Der Spiegel,2015.12)로 이 문제는 독일이 계속 안고 가야 할 고민이기도 하다.      

큰 아이 반의 경우, 전체 25명 중 8명, 반의 약 30% 정도가 외국인 가정이었다. 그 중 대부분은 터키 아이들인데, 그들의 부모, 즉 이민 2세대는 독일어로 의사소통 정도만 하는 게 고작이다. 이는 그들의 독특한 문화에 기인한다. 터키 사람들은 특정 지역에 모여 살며, 모국어를 사용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고집한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독일어 발음이 어눌하고 어휘력이 독일 또래 아이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이는 곧 성적부진으로, 그것은 다시 저조한 고졸 졸업율과 사회부적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터키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 가족 역시 언어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매일반이었다. 이 문제는 큰아이의 독일어 성적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은 독일어 평가, ‘관사를 정확히 사용하며 말하고 있는가?’라는 항목에서 ‘종종 실수가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독일어에서 모든 명사는 성을 갖고 있다. 남성(‘der’), 여성(‘die’), 중성(‘das’), 이렇게. 이런 명사의 성 구분과 관사의 격변화를 잘못하여 말하면 독일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듣는다고 한다.      

독일 아이들은 입을 떼는 순간부터 엄마로부터 모든 명사마다 관사를 붙여 단어를 배운다. 예를 들어 사과를 그냥, “아펠!(Apfel,사과)” 이렇게 배우지 않고, “데어 아펠(Der Apfel)!” 이렇게 배운다. 모든 명사를 입 떼는 순간부터 이렇게 배우고 격변화를 자연스럽게 익혀 나간다.      

하지만 관사를 정확히 모르는 엄마 밑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은? 그러다보니 관사를 완벽하게 알고 사용할 리가 없었다. 또한 아이들이 관사 사용을 잘못하더라도 외국인인 엄마가 먼저 알아차리고 고쳐줄 확률 또한 낮았다. 결국 관사와 격변화를 완벽하게 배울 환경이 아닌 곳에서 자란 아이들의 실수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독일어 장벽은 점점 더 두터워졌고, 부모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절감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새로 배운 단어의 개념을 물어올 때 독일어로 가르쳐주자니 내 독일어 실력이 부족하고, 한국말로 설명해 주자니 아이의 한국어 이해력이 부족하니 난감했다. 결국 아이를 위해 택한 차선책은 책이었다. 책을 통해 아이 스스로 문제를 풀어가도록, 아니 스스로 극복해 나가기만을 바랄뿐이었다.    

      

어린이 도서관책 읽어 주는 부모     

부모가 해결할 수 없는 언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주에 한번 꼴로 열심히 드나든 곳이 있다. 바로 어린이 도서관이다. 날이 좋고 시간이 있으면 자전거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만, 대부분은 나와 남편 중,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이들 수준에 맞는 책과 테이프, 비디오를 빌려오곤 했다.     

어린이 도서관은 지역을 크게 나눠, 우리로 치면 구마다 하나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도서관에는 장르별로 책이 분류되어 있는데, 동화, 모험담, 고전, 유머, 동물, 곤충, 역사, 소설, 만화, 동화, 여행, 종교, 미술, 음악, 학습용 교재, 어린이용 비디오와 CD, 신간, 잡지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거기다 여러 종류의 게임용품(예:보드게임)도 빌려준다. 모든 책의 대여 비용은 무료이지만, 신간이나 베스트셀러 작품은 권당 1400원 정도를 내야 빌릴 수 있다.       

대여기간은, 책은 한 달, 비디오와 CD는 2주이며 개수 제한은 따로 없다. 대신 대출 기간을 어기면 연체료를 물어야 한다. 권당 하루 연체료는 700원꼴이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생각지도 않은 생돈이 그냥 나간다. 


빌릴 수 있는 자격은 도시에 사는 시민이면 된다. 대신 연회비를 내야 한다. 하지만 대학생은 연회비 없이 공짜로 책을 빌릴 수 있다.      

자녀를 위한 일에 동·서양이 따로 있겠는가? 이곳 부모들 역시 자녀들의 책 읽히기에 열심인 것은 마찬가지다. 독서 습관을 초기에 잡아주기 위해 부모는 아이와 함께 도서관과 서점을 열심히 드나든다. 성의 있는 부모들은 아이가 흥미 있어 하는 주제가 하나 생기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열심히 동원해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런 독서 습관과 독서 방법이 아이들에게 한 주제에 대해 상당히 깊이 있는 전문지식을 갖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독일 부모들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곳이 공원이든, 병원의 대기실이든, 버스 안이든 아랑곳 하지 않는다. 끝없이 물어오는 아이의 궁금증에 대답하고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 주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의무처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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