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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교사 Aug 17. 2019

예약이라는 낯선 단어

“아이가 아픈데, 몇 시에 가면 되지요?”     

병원에 가려면 사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내 편한 시간에 맞추고 싶으면 며칠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 없이 가면 하염없이 기다리게 된다. 예약 환자가 오지 않는 빈 시간이 생길 때까지 말이다.      

성질이 급한데다, 이런 문화에 익숙지 않다보니 병원갈 일이 생길 때마다 짜증스러웠다. 미리 전화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함께, 스케줄을 서로 맞추다보면 내 편한 시간만을 고집하기가 어려워 더더욱 그러했다.      

한동안 예약문화에 적응 못하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체념을 하고 보니, 예약문화가 오히려 편하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무작정 병원에 갔다가 많은 환자들 때문에 마냥 기다리는 일도, 불특정 시간대에 밀려오는 환자들에 지쳐 사무적으로 대하는 의료진의 성의없는 서비스도 없기 때문이다. 하루에 받을 환자 수를 사전에 제한하다 보면 업무가 한꺼번에 밀리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그만큼 의료진의 업무 피로도를 낮춰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약제는 그렇게 나 위주가 아닌 의사와 환자, 그리고 나와 남을 배려한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생각을 경험을 통해 배워 나갔다.      

‘Sprechestunde(면담시간): 월,수(오전 10:00), 화,목(오후 3시)’     

이런 패찰이 사무실 앞, 어디든 붙어 있다. 만약 이 시간대에 맞춰 가지 못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학교와 시청을 포함한 관공서는 물론이고 어느 조직이든, 그곳에 몸담고 있는 공적인 사람을 만나자면 반드시 이 패찰에 표시된 면담시간을 확인하고 맞춰가야 한다. 그래서 사전에 면담시간이 몇 요일, 몇 시인지 확인해 보는 것은 만남의 필수이다. 나 위주로, 나 편한 시간에 가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좀 안되겠냐고 사정해도 통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것은 다음 면담시간에 오라는 냉랭한 대답뿐이다.       

담임교사와의 상담 시간 역시 요일과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 상담을 원하면 정해진 그 시간에 가야 한다. 교수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으로 정해져있다. 면담시간을 이용하지 않고는 교수가 만나주지 않는다. 아무 때나 덥석 들어가 “저기요!” 했다가는 상식 밖의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대신 그들은 면담 시간을 철저히 지킨다. 그 시간에 교수는 다른 일은 다 제쳐두고 오로지 자기를 찾아올 학생만을 기다린다.      

“생각나서 잠깐 전화했어. 차 한잔 어때?”     

이런 대화는 독일인에게는 일상적이지 않다.      

독일 사람들은 예약 없이 불쑥 남의 집에 찾아가지 않는다. 미리 약속을 잡는다. 초대의 경우는 적어도 한 달 전, 최소한 한 주 전에는 약속을 잡는다. 친구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어릴 때는 아이를 위해 부모가 나선다. 아이가 놀고 싶어 하는 친구가 생기면 그 친구의 부모에게 양해를 구해 시간을 잡는다. 그래서 그들 수첩에는 이러저러한 스케줄로 빼곡하다.      

계획성 있는 생활, 그럼으로 서로의 시간과 사생활을 존중하는 생활 습관이 독일인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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