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서둘러!’라는 표현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 살면서 서둘러야 하는 일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장보기’이다.
독일에서의 장보기는 거의 전투이다. 우리가 살던 지역에서 평일은 오후 8시, 토요일은 오후 6시면 모든 슈퍼가 문을 닫는다. 그 시간 이후로는 어디서든 물건을 살 수가 없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장보기에 바짝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긴긴 주말 동안 굶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분주함으로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나면 2(토, 일요일 이틀)+0.5(금요일 오후 반나절) 동안 걱정 없는 주말이 찾아든다. 집안에는 쌓아둔 양식이 있고, 시간이 있고, 함께 할 가족이 있으니 이 정도면 평온한 쉼이 있는 주말이 아니겠는가?
이런 쉼은 모든 독일 국민에게 허용된다. 국가는 주말과 공휴일 일체의 영업을 법으로 제한하고 있어 독일 대부분의 마트나 레스토랑, 그리고 소매업종은 일요일과 공휴일에 영업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마트나 레스토랑 노동자들도 일요일과 공휴일에 쉴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국가가 노동자의 쉼을 챙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소비자의 편익과 회사의 이익만큼 노동자의 권리도 중요함을 확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독일은 일보다 쉼이 있는 삶을 지향한다.’
이것은 노동시간과 유급 휴가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은 OECD 국가 중 가장 일을 적게 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OECD에서 발표한 '2016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가 연간 2,113시간 일하는 것에 비해 독일은 1,371시간을 일한다. 한국 근로자가 독일 근로자보다 연간 742시간을, 이것을 법정근로시간 8시간으로 나누면 92일 정도를 더 일하는 셈이다.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의 ‘2016년 유급휴가 사용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독일 직장인들의 연간 유급휴가일수는 28일, 한국 직장인의 연간 유급휴가일수는 8일로, 독일 직장인들은 세계에서 좀 놀 줄 아는 국가로도 분류된다. 그럼에도 독일의 GDP 규모는 매년 세계 5위권 안에 든다.
적은 노동시간, 누구 못지 않은 쉼(휴가), 그러면서도 생산성이 높은 이유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온 국민이 제대로 쉬기 때문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런 워라벨에 초점을 맞춘 제도 속에서 쉼이 있는 삶을 온 국민이 지금도 누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