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북부 발트 해 키일 만에 위치, 아름다운 항구도시이자 독일 해군의 본거지, 인구 25만에 조선‧기계‧수산가공업이 발달…”
큰아이 3학년 때였다. 갑자기 자기가 살고 있는 키일(Kiel)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독일 지도에서 우리 고장의 위치를 확인하는가 싶더니 이 도시의 역사와 변천사, 그리고 유적지와 명소까지 섭렵했다. 초등학교에서의 첫 지리수업이 막 시작된 것이다.
블록타임제를 활용한 교과 체험학습
독일의 교육은 단지 학교와 교실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블록타임제’를 실시하여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교실 밖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실습하는 게 보통이다.
‘자전거 구조 이해를 바탕으로 자전거 타는 법 익히기’
한 학기동안 이뤄질 자연시간의 학습내용이다. 바로 이런 블록 타임제 수업을 통해 가능했다.
큰 아이는 4학년 자연교과시간을 이용하여 자전거 면허증을 취득하였다. 처음에는 교실 수업에서 자전거의 구조, 자전거 도로법규 등을 배우더니,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실습장에 가서 직접 자전거 수업을 받고 자전거 면허증까지 따는 수업이 실재 이루어졌다.
지리수업도 좋은 예다. 초등학교에서 지리수업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먼저 자기 고장에 대해 공부한 후, 블록타임제를 적용하여 배웠던 곳을 직접 탐방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자기 고장을 실감나게 배우고 나면, 그 주(州)에는 어떤 다른 도시가 있는지, 무엇이 유명한지를 점차 확대하여 배워간다. 첫 수학여행 목적지로 동네 명소를 먼저 찾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생애 첫 지리 수업을 자기 고장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배웠던 곳을 직접 탐방하며 ‘산 지식’을 구한다.
체험형 수업 방식은 비단 지리교과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 시간에 주 의회에 대해 배우면, 반드시 그곳을 직접 탐방해 시장의 얘기를 듣거나 의회 회의 진행을 견학한다. 이 과정을 통해 지역 사회의 어른들이 어떤 문제를 놓고 어떻게 고민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미래의 정치 주체로 성장할 준비를 해 나가는 것이다.
종교수업 시간에는 다양한 종교에 대해 이론으로 배운 후 교회, 성당, 모스크를 돌면서 배운 내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미술시간에 배운 작품은 반드시 전시회나 극장을 찾아가서 관람한다. 이렇게 교과서 안의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생생한 수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발표수업
‘발표주제: 한국’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사회시간에 행한 발표수업 주제이다.
미안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 삼성, 현대는 알아도 그것이 한국기업이라고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한다. 아시아에서 알려진 나라는 중국뿐이다. 좀 웃긴 것은, 일본은 일본으로 여긴다. 아시아의 대표적 나라라 보지 않고, 그냥 선진국으로 안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어른들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그래서 큰 아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놀림을 많이 받았다. 두 손으로 눈꼬리를 올리며 시네진(Chinesin, 중국여자아이)이라고.
그런 경험들 때문에 큰 아이는 10분짜리 발표 주제로 ‘한국’을 선택한 것 같다. 주제발표를 위해 백과사전과 관련도서를 찾아 내용정리를 한 뒤, 설명에 필요한 PPT도 만들고, 형성평가 문제도 준비하였다.
주제 선정의 이유부터 시작해서 위치, 기후, 인구수, 경제상황, 사회문제, 분단 등의 내용을 발표하고, 발표에 대한 이해도를 형성평가를 통해 확인하는 것으로 진행을 마쳤다. 발표가 끝나면 요약내용을 교사에게 제출하고 그 자리에서 발표에 대한 평가를 교사와 반 아이들을 통해 받게 된다. 그리고 발표 시작 전에 참고한 책을 직접 가져와 그 자리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실재 발표준비정도를 확인시키기 위한 작업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발표수업 과정을 익히고, 그 과정에서 참고문헌의 출처를 밝히는 것을 배우고, 평가에 학생들이 참여하여 사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반별 단합대회
교과시간을 활용한 체험학습도 있지만 교과시간 외의 반별행사도 있다. 가을에 있는 ‘라테르네(등불제)’와 ‘할로윈 데이’가 대표적이다. 라테르네(Laterne, 등, 램프)는 등이나 램프를 뜻하는 것으로, 세상에 빛을 가져온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들은 이 날을 위해 등의 갓을 만들고, 그 안에 불을 붙여 모두 함께 마을을 돈다.
으스스한 복장으로 유명한 ‘할로윈데이’는 독일에서도 잘 지켜지는 문화다. 이 날에 아이들은 도깨비·마녀·해적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돌며 “과자를 주지 않으면 소란을 피우겠다”고 어른들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엄격한 독일 사람들도 이 날만큼은 아이들의 무례한 행동을 이해하고 초콜릿과 캔디 등을 준비했다가 건네준다.
이 같은 행사들은 반별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 날 아이들은 어떤 친구가 어떤 모양의 등불을 들고 올지, 어떤 친구가 제일 멋지게 꾸미고 올지 기대하며 자신도 그에 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분장하고 집을 나선다. 담임선생님도 흥을 돋운다. 파자마를 입고 오기도 하고, 괴기한 복장과 분장을 하고 학교에 등장하기도 하여 아이들을 즐겁게 한다.
반별 수학여행
큰아이는 3학년 때, 3박 4일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우리처럼 학년 행사가 아닌 학급 행사라는 게 특징. 담임교사와 보조교사 등 두 명의 교사가 인솔한다. 큰아이가 수학여행을 맞아 방문한 곳은 리조트가 있는 스키장이었다. 그곳에서 스키를 배우고 가벼운 등산도 하며 시간을 보냈고, 리조트 내 수영장과 스포츠시설 또한 마음껏 이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 장소에서 특별한 체험활동을 하며 반별 친목을 다지는 게 이곳 수학여행의 목적이다.
잠은 한 방에 세 명씩 자고 음식은 뷔페에서 해결한다. 비용은 한화 20만원 정도인데, 우리 같은 유학생에게는 사실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하지만 3일 밤을 자는데다, 음식제공과 각종 부대시설 이용금액까지 포함됐다는 점, 거기다 독일의 물가를 고려하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작은 아이도 2학년 때 2박 3일 일정으로 반별 수학여행을 떠났다. 장소는 목장이었는데, 난생 처음 볏단에서 잠을 자고, 말도 타보고, 말에게 빗질도 해주며 시골의 정취를 흠뻑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