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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교사 Jun 23. 2018

찐한 친구관계 만들어 주기

 독일 아이들의 노는 방식은 참 독특하다. 꼭 친구를 한 명 정해서 일대 일로 논다. 그러다 친해지면 그 친구 집에 가서 놀고, 더 친해지면 그 집에서 먹고 잔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자기 집과 친구 집을 번갈아 가며 함께 놀고, 먹고, 자는 그런 생활의 반복이 독일 유치원 생활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이런 관계를 맺어 주기 위한 부모의 수고와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먹이고, 재우고, 그리고 함께 놀아주는 일까지, 다 부모의 몫이다.      


 아이가 둘인 내가 그런 문화에 맞추자면 한 주에 네 번, 거의 매일 아이들과 친구들을 평상시보다 일찍 유치원에서 데려와 놀게 하거나, 친구 집에 가서 아이를 찾아와야 한다. 이것은 나에게 색다른 문화였고, 따라 하기 귀찮은, 또 하나의 일거리였다.     


 그런데 독일 부모들은 이 일을 부모의 당연한 역할로 여기고 아이들이 한 명의 친구를 사귀되, 아주 가깝고 친밀하게 사귀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돕는다. 자칫 부모가 이 일에 소홀하게 되면 아이는 또래집단에서 고립되기 십상이고 사회성을 기르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 파악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관계를 형성하는데 외국인인 우리에게 시간상의 문제 말고 또 다른 변수가 있었다. 아이들을 묶어 주려해도 독일 부모들이 꺼려하는 눈치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큰아이가 유치원에 다닌 지 서너 달이 좀 지나서이다. 큰아이와 제법 잘 지내던 또래 독일 여학생이 언제부턴가 눈에 띄지 않았다. 궁금해 물어보니 다른 유치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유치원을 옮긴 이유가 외국인인 우리 때문이란다. 유치원에 외국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싫단다. 그래, 이해도 된다, 또래 여학생 4명 중에 2명이 외국인인데, 그 중 한 명은 듣도 보도 못한 한국에서 왔다고 하지, 또 한명은 멕시코에서 왔다고 하지, 심란하겠다 싶었다. 아마 독일과 비슷한 문화권의 나라에서 왔다면 얘기는 좀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 아이 부모는 유치원을 오가면서 우리와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보통 유치원에서는 모르는 사이라도 스쳐 지나면서 “Hallo!” 로 인사를 건넨다.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행인들조차도 눈인사를 하거나, “Hallo!”를 하며 지나가는 게 독일 정서이다. 그런데 같은 유치원에 다니면서, 그것도 같은 반 학부형끼리 드러내 놓고 안면몰수를 하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이것은 작은 반 아이의 독일 부모들한테도 똑같이 느끼는 부분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부모가 이렇게 망설이며 눈치보고 있을 때 큰 아이는 스스로 또래관계를 알아서 형성해 나갔다. 큰아이의 사교적인 성격이 독일 부모 눈에 매력으로 느껴졌는지, 그 쪽에서 먼저 자기 집에 가서 놀자고 작업을 걸어왔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그런 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작은아이는 성격과 기질 면에서 언니와는 많이 달랐다. ‘저것이 거죽만 한국 사람이지, 속은 진짜 독일 아이 아니야?’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작은 아이는 독일 아이들처럼 차분하고, 조용하게 변해갔다. 성격이 밝게 튀질 않으니, 작업을 먼저 거는 독일 부모도 없었다. 거기다 부모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 부분에 신경을 써주지 않으니 둘째아이는 유치원에서 외롭게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 이 글은 더퍼스트미디어와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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