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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랑이 Feb 03. 2022

남자아이는 머리 길면 안 되나요

8살 남자아이 지노는 어깨에 약간 닿을 만큼 머리가 깁니다.


지노는 머리가 길다.


물론 다른 남자아이들보다 길다. 정도이다.


지노가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이유는 2가지 정도이다.

1. (엘사처럼) 긴 머리를 가져보고 싶다.

2. 긴 머리가 되면 아픈 친구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


내가 예전에 긴 머리를 잘라 가발을 만들라고 어머나 운동본부에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영향인지 지노도 머리를 길러서 아픈 친구들에게 가발로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생각에도 아이의 고운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든다면, 소아암 환자인 아이들에게도 나의 머리카락보다 잘 어울리고 훨씬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찬성했다.


다만 머리를 기르는 과정이 참 순탄치 않다.


1. 모르는 사람도 와서 여자애냐 남자애냐 묻는다.

2. 태권도에서 잘 모르는 동생들이 누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3. 주위에 나이 많은 어른들은 남자애가 고추 떼 진다고 (성희롱으로 고소할까 보다) 머리 자르라고 한다.



왜 남자아이는 치마 입고, 핑크를 좋아하면 안 돼? 왜 머리를 길면 안 돼?

여자아이는 머리를 짧게 하고 다닐 수도 있고, 파란색 좋아해도 되고, 바지도 입을 수 있잖아


여자아이를 향한 성고정 관념도 만만치 않지만

남자아이를 향한 성고정 관념 또한 만만치 않다.



어제저녁에 문득 지노가 말한다.

"엄마  머리 자를래."


"? 기부하고 싶어 했잖아."


"예전에는 머리카락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이만큼(동그란 원을 그렸다.)이었는데, 이젠 이만큼(조금 줄어든 원을 그렸다.) 되었거든"


" 그렇게 마음이 줄어들었어?"


"나는 남자인데, 자꾸 동생들이랑 친구들이 여자냐고 물어서 속상해."


"..  진짜 속상했겠다. (안아줌) 그래서 속상했어?"


", 그래서  머리 자르려고."


"그랬구나. 엄마도 작년에 여기  잘라버렸을  (너무 더워서  블록을 했다) 사람들이 아저씨냐 아줌마냐 물어봤어"


"진짜? ㅋㅋㅋㅋ"


", 근데 엄마는 그게 사실  웃겼어."


"나도 웃긴  같아."  


"지노가 자르고 싶으면 당장 내일도 자를 수 있고 언제든 자르면 되지, 근데 지노야.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어진 게 아니고 조금 작아진 거잖아. 그럼 아직은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다는 뜻이야?"

", 아직은 하고 싶어."


"....  생각에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기 스스로의 마음이야. 내가 하고 싶냐  하고 싶냐가 가장 중요한 거라고 엄마는 생각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 진짜 이렇게 말함 ㅋㅋ


"그러니까 지노가 머리를 길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때문에 자르는 거면 엄마는 지노가 너무 속상할  같으니까  잘라도 된다는 말이야. 근데 지노가 속상한 마음이 너무  거면 잘라도 . 엄마는 그것 때문에 지노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뭐가  속상한 마음이 클지 생각해 봐도 좋을  같아."


"나는 머리  길고 싶어. ~만큼 (가슴 정도까지 이야기한다.)"


"그럼 친구들한테 뭐라고 이야기할지 생각해보는  어떨까? 지금까진 뭐라고 했어?"


" 남자야. 나는 머리 기부하려고 길고 있어.라고 말했어."


"아주  말했네. 근데 어른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텐데, 친구들이랑 동생들은 머리 기부가 뭔지 모를 수도 있어. 엄마랑 같이 뭐라고 말할지 연습해볼까?"


"응! 좋아!!!!"



그리고 지노랑 자기 전에 앉아서 뭐라고 연습하면 좋을지 생각해보고 말을 정리해서 한번 연습했다.


그리고는 다음 달에 입학하면 자기소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좋아하는 것, 되고 싶은 것까지 넣어서 연습했다.

 

"나는 8살 박지노야. 나는 태권도랑 롤러스케이트 타는 걸 좋아해. 나는 커서 도자기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머리가 길지만 남자야. 나는 머리를 길어서 아픈 친구들에게 가발을 만들어주는 일에 기부할 거야."     




설사, 지노가 기부를 위해서 머리를 기는 게 아니어도 나는 그냥 지노가 하고 싶은 일이면 했으면 좋겠다.

그게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신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그래도 되는 거니까.







난 솔직히 그런 성고정 관념은 어른들이 만들어냈고 어른들이 무심코 뱉은 말에 아이들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가 항상 "남자는" 혹은 "여자는" 발언을 안 하려고 주의하고 있고 지노에게도 항상 주지 시키고 있다.


원래 핑크색을 좋아하던 지노였는데, 6살이 되자 파란색이 좋단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지노가 핑크를 좋아하던 파랑을 좋아하던 다 좋다!

하지만 문제는 왜 그러냐고 하니까

"친구가 남자는 파란색을 좋아해야 한다고 했어. 핑크는 여자 색 이래" 란다.

그 말을 듣고 솔직히 딥빡...


"지노야. 지노가 진짜로 보면 너무 예쁘고 좋아하는 색이 뭐야?  (핑크색) 그래... 지노는 핑크색이 좋구나. 지노야 진짜로 내가 좋아하는 색이 중요한 거야. 그렇게 남자가 여자가 이렇게 구분하면서 정해진 무언가를 좋아할 필요는 없는 거야. 그건 진짜 바보 같은 거야."

라고 하자


" 바보야?"


ㅋㅋㅋㅋㅋㅋ라고 말함 

6 아이에겐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던  같아서 

"친구 생각보다 지노 생각이 더 중요한 거니까 지노 생각을 이야기하면 좋겠어. 물론 파란색 핑크색 다 예쁜 색이니까 지노가 진짜 좋아하는 걸로.."라고 말해줬다.


7살부터는 누가 좋아하는 색깔을 물어보면

"저는 여러 가지 색깔을 좋아해요. 빨강, 파랑, 보라색 좋아해요"라고 말하더라.


이렇게 어른의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   


많은 어른들이 "여자는~" "남자는~" 이런 이야기 하지말고 아이가 진짜 바라는게 무엇인지 물어봐주고 바라봐줬음 좋겠다.


우린 그냥 남자와 여자라서 다른것뿐이고, 그것에 따라서 생각의 틀을 달리할 필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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