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경험한 열대야
요즘 무척 덥다.
7말 8초라지만 어릴 때 7말 8초는 그래도 나가 놀 정도의 더위였던 거 같은데, 이젠 나갔다간 타 죽을 거 같아 어린이집 방학인 아이를 놀이터에 한낮에는 절대 못 나가게 할 정도로 덥다. 우리 집에서는 놀이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모두 같은 마음인지 봄에는 떠들썩하던 놀이터가 요즘은 단지 내 사람 하나 없는 듯 조용하다. 저녁이 된다고 한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방안 온도는 29-30도를 감돌고, 아이는 덥다고 아우성. 집에 있는 고양이들은 바닥에 달라붙은 듯 축축 늘어져 있다. 에어컨을 잠시 켜고 실링팬도 돌린다. 집이 시원해지고 아이와 고양이들은 기운을 차린 듯 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쾌적하게 잠이 든다.
근데 독일에 도착했던 그날은 그럴 수 없었다.
우리의 독일 여행 첫 도시의 이름은 바로 뷔르츠부르크였다. 첫 도시가 유명한 프랑크푸르트도 뉘른베르크도 아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대학 시절 친한 친구였던 정이 거기에서 유학 중이기 때문이었다.
밤이 늦었기에 정은 다음날 만나기로 했고 우선 예약한 에어비앤비 집에 가야 했다. 짐을 찾은데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다소 늦은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다소 절망했다.
집이 너무 더웠다.
호스트가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 열기에 숨 막힐 거 같았다.
그날은 뷔르츠부르크 최고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간 날이었는데 우리 방은 3층 건물의 꼭대기층이었고 그곳에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조차 없었다.
에어컨을 시켰는데 아직도 안 온다며 미안해하던 호스트에게는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방 전체가 마치 찜질방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로비나 식혜나 얼음방 따위 없는 찜질방. 여름 최고 기온이 24-5도라는 이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분명 얇은 옷과 긴소매 옷을 잘 챙기라고 한 네이버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다.
캐리어 2개를 끙끙거리며 3층으로 남편과 함께 올렸다. 2층인 줄 알고 예약한 거였는데, 알고 보니 독일은 3층이 2층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1층은 0층이었다. (뭣?!) 그 이후 모든 숙소들이 그런 식이 었고 한국에서 에어비앤비 예약을 다 마치고 온터라 별 수 없이 캐리어를 이고 지고 날라야 했다.
처음엔 신이 나서 방을 탐험해보던 지노는 이제 본연의 업무에 집중했다. 징징거리기
"엄마 나 졸리고 배고파... 근데 너무 더워..."
5살의 졸림과 배고픔과 더위 콤비네이션이라니
경유하느라 너무 고생한 데다가 계획했던 비행기가 아니라서 키즈밀같은 밥이 아닌 그냥 일반 식사가 나와서 입맛에 안 맞은 지 잘 안 먹은 지노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엄마가 미안하다! 지노야......
밥을 달라는 아이에게 우선 버터가 잔뜩 묻은 바나나를 씻어주고 우선 그거 먹고 아침에 꼭 밥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생각해보니 모든 끼니에 밥과 김만 있으면 된다는 소문난 밥돌이인 지노가 그날 하루 종일 쌀밥 한번 먹지 못한 것이다. 짐 양을 줄이기 위해서 햇반 하나 안 가져온 게 아쉬웠다. 우선 쌀을 챙겨 왔기 때문에 쌀을 씻어두고 바나나 먹은걸 보고 조금 시원한 물로 애를 씻기고 나는 내 몸에 냉수를 쏟아부었다. 그래도 전 날 들어와 여력이 있는 남편은 짐 정리를 열심히 했다. (그 자는 여행 내내 짐 정리에 여념이 없었고 아주 유용했다,)
우리는 방 2개짜리 집을 잡은 터라 수면 독립하지 못한 지노는 나랑 자고 남편은 다른 방에서 자기로 했다. 가져온 온습도계를 바라보니 온도는 30도... 한국이라면 당연히 제일 쾌적한 온도로 에어컨을 세팅해서 방 온도를 내리고 잠을 재울 텐데 우리에겐 시원한 물건이라곤 공항에서 충동구매한 회전이나 예약 따위는 전무한 아주 작은 바람 양을 가진 뽀로로 손풍기만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냐.
뽀로로 손풍기를 창문에 대서 조금 더 시원한 바람을 들어오게 해 봤다. 30분 있어봤지만 전혀 차이는
없는 거 같은데... 덥다고 징징징 거리는 아이 몸에 갈 수 있게 해 줬는데 이게 회전이 되고 하는 게 아니라서 배탈이나 감기 걸리면 어쩌지 하고 고민을 했다. 그래 봤자 따뜻한 바람이었지만.... 차가운 물을 묻힌 수건으로 애를 닦아줘도 보고 이런 저런 오만 난리 법석을 벌이다가 침대에 누워보았다.
아 이건 아니네.
절대 잘 수 없다. 침대의 뜨거움이 상상초월이었다.
홑이불을 끌어당겨서 바닥에 내려서 누워보았다.
이것도 아니다.
그럼 그냥 바닥에 눕자.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맨 마룻바닥에 누워있는데 진심 찜질방에 누워있는 거 같았다. 바닥에 누워있는 그 순간에도 땀이 계속 쏟아졌다.
이미 애는 너무 덥다며 옷을 다 벗어서 팬티만 입고 바닥에 누워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나도 벗자.
어느 정도 이성을 차리는 나이가 돼서는 한 번도 벗고 자 본 적은 없지만, 방법이 없다.
마치 아기로 돌아간 것처럼(이라고 좋게 묘사해보자) 벌거벗고 자니 왜 지노가 저렇게 누워있는지 알 거 같았다.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몸이 찍찍 달라붙었고 내 몸으로 먼지를 청소한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그나마 이것이 제일 시원했다.
유일하게 한국에서 가져온 옥토넛 그림책을 읽어주고 불을 끄고 누웠다. 더웠지만, 독일에 드디어 들어왔다는 기쁨을 지울 순 없었다.라고 쓰고 싶으나 그날 저녁은 진심으로 후회만이 가득했고 너무 더워서 욕이 나왔다. 시차 적응과 더위 때문에 잠을 자기가 쉽지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마룻바닥은 삐걱거렸고 금세 누워있는 곳은 내 체온 탓에 뜨거워졌다. 벽걸이 에어컨이 달린 한국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었다. 그곳에서라면 아이가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 텐데...... 맨바닥에서 맨 몸을 둥글게 말고 자고 있는 아이 등에 뽀로로 손풍기로 바람을 보내주며 그날 밤을 그렇게 지나갔다.
3주 가까이 체감온도 38도에 육박한다는 바깥 날씨를 바라본다. 여름에 원래 이렇게 덥지 않았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에어비앤비 주인아줌마의 얼굴이 생각난다. 미국에선 계속 불이 나고 멈추지 않는다는 뉴스가 나오고, 연어들이 50도가 넘는 기온에 살이 익고 썩어버려 죽어간다는 뉴스를 본다. 어찌 보면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상 기온을 온몸으로 느꼈던 날이었었고, 에어컨이 없어서 선풍기가 없어서 전기세가 무서워서 더위를 온몸으로 감당하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심정을 느꼈었다. 그것이 우리의 독일에서의 첫날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