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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랑이 Aug 07. 2021

미니도넛과 크레페의 상관관계

온통 먹는 이야기


우리 도시에도 놀이공원이 있다.

내가 어릴 때도 이미 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그런 오래된 놀이공원이다.

에*랜드나 롯*월드 같은 찬란함이나 아름다움 현란함은 없는 그런 곳이다. 조용하고 소박하다.

물론 놀이공원답게 롤러코스터도 바이킹도 있다. 그 롤러코스터 자체가 주는 스릴보다는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떨어지면 어떡하지? 갑자기 레일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등의 의외의 부분에서 스릴이 넘친다. 그런 예상외의 스릴을 어릴 때부터 맛봐서인지 나는 어릴 적 부터 놀이기구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지만, 이 놀이공원을 무척 좋아했다. 그 이유는 바로 미니도넛 때문이었다.


어릴 때 소풍이나 가족들과 이곳에 갈 때마다 다른 친구들은 "이번에는 가면 바이킹, 롤러코스터, 워터슬라이드 꼭 타야지!"라고 말했다면 나는 "이번엔 반드시 잔돈을 챙겨가서 한 입에 쏙 들어가는 그 미니도넛을 먹어야지!"라고 다짐하곤 했었다.


돈을 내고 주문을 하면 아줌마가 기계를 돌렸다. 기계를 돌리면 반죽기에서 한 입에 들어갈만한 작은 동그란 모양의 도넛이 뽕뽕뽕 소리를 내며 기름 강으로 떨어졌다. 기름 길을 따라서 튀겨지다가 한번 아줌마가 뒤집고 마지막 장소에 도착하면 건져내서 기름을 뺀 후에 설탕을 묻혀서 갈색 종이봉투에 담아줬다. 종이봉투를 건네받으면 그 순간 도넛이 아무리 뜨거워도 하나 쏙 입에 넣었다.. 하~ 뜨거워  하~라는 소리를 내면서 씹으면 바삭함과 기름 냄새 설탕의 달콤함까지 입안에 가득했다. 간혹 도넛이 너무 많이 튀겨져 있어서 바로 튀기지 못한 도넛을 받을 때는 그렇게 실망감이 컸다.


여전히 그 같은 고장에서 살고 있지만 그 놀이공원을 가본 지 거의 15년이 넘었다. 그 기계가 아직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곳을 생각하면 그 도넛 생각에 입안에 침이 가득해진다.


독일행을 결정하기까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장소는 바로 뉘른베르크에 위치한 플레이모빌 펀파크였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 조사하기 전까지 플레이모빌과 레고의 차이점도 전혀 모르고 (지금도 사실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있었지만,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아이에게 너무 매력적인 장소여서 꼭 가보고 싶었다.

놀이공원이라고 해도 그 흔한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 워터 슬라이드 등은 하나도 없는 그런 곳이다. 어른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놀이공원인데, 플레이모빌을 기반으로 해적 랜드, 노아의 방주, 페어리 랜드, 동물 농장 등등 다양한 테마를 가지고 아이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곳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의 특징은 모든 것이 무동력이다.

해적선에 가려면 노를 저어서 해적선에 가야 하고 물대포를 쏘고 싶으면 돈을 넣는 게 아니라 힘껏 달린 바퀴를 돌리거나 옆에 있는 자전거를 타서 바퀴를 돌려야 물이 나온다. 작은 1인용 배를 타고 싶으면 자기가 스스로 옆에 있는 손잡이를 돌려서 노를 저어야 한다. (어른은 못 탄다) 대부분 놀려면 자기 손으로 해야 하는 곳이다 보니 기다렸다가 무언가를 타는 일은 거의 없다.


지노는 그곳에서 이틀 동안 개장해서 폐장할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면서 해적선을 타고 물대포를 쏘고 모래를 뒤져 보물(플라스틱)을 캐고, 광산에 가서 모래놀이+물놀이를 하고, 동물농장에서 가짜 소의 젖을 짜고, 작은 배 이용해서 물놀이를 하는 등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래서 다녀오고 나서 2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 나 플레이모빌 펀파크 가고 싶어. 가서 보석 캐고 싶어.."라는 말을 종종 해댄다.


그런데 나도 종종 그 플레이모빌 펀파크에 가고 싶다.


이상하게 거기에서 마신 커피와 크레페 맛이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이틀 전에 폭염으로 고생했다는 게 믿을 수 없도록 플레이모빌 펀파크를 간 이틀째 날엔 너무 추워서 긴팔에 바람막이를 입었었다. (첫날은 조금 더워서 반팔을 입었었다.) 아이는 긴팔과 재킷 사이에 카디건까지 입힌 그런 날이었다.


추워도 물 있는 곳에서 먼저 놀겠다는 아이의 말에 해적 나라 한참 놀다가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던 중 달콤한 냄새가 길가에 가득했다. 거기에는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노점의 크레페 가게가 있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하고 달콤한 냄새는 그날 방문한 사람들(특히 아이들이 놀 때 한참 서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부모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는지 줄이 엄청 길었지만, 나도 같은 심정이었어서 한참을 기다린 후 블랙커피와 바나나 초코 크레페와 시나몬 크레페를 샀다.


길가의 벤치에 앉아서 지노는 온 얼굴에 초코를 묻혀가며 바나나 초코 크레페를 먹었고 나는 시나몬 크레페와 커피를 먹었다.


커피는 그냥 일반 블랙커피였는데,

진짜 그냥 블랙커피였는데.... 정말 따뜻했고 고소했고 커피 향이 가득하여 너무 맛있었다.  며칠 전까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고 난리였는데, 날씨 하나에 따뜻한 커피가 이렇게 좋다니. 앉아서 홀짝홀짝 마셔댔다. 커다랗게 구워서 초콜릿을 가득 바르고 바나나를 얇게 썰어서 넣어 2번 접어줬던 초코 바나나 크레페, 얇게 부쳐서 설탕과 시나몬 가루를 잔뜩 뿌려줘서 달콤한 전병처럼 먹었던 시나몬 크레페는 커피와 환상의 궁합이었다.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나서 바나나 크레페 또 먹고 싶다는 아이 말에 엄마도 또 먹고 싶긴 한데... 줄을 너무 기다려야 되니까 다음에 와서 또 먹자고 달래고 장소를 이동했다. 물론 그 이후 먹어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만들어 본 적도 있지만 길가에 서서 종이에 싸인 뜨거운 크레페가 흐를까 봐 허겁지겁 먹었을 때의 그 맛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코로나가 끝나면... 이란 단어를 작년부터 어찌나 많이 썼던지.

아이가 더 커서 아이가 느끼기에 더 이상 플레이모빌 펀파크가 재미없어지기 전에 꼭 다시 가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언제 다시 갈 수 있게 될지 모르게 되었다.

코로나가 곧 종식되어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때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크레페와 뜨겁던 커피를 먹으러 다시 플레이모빌 펀파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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