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홍콩에서 햇반과 컵라면때문에 대판 싸운 이야기
엄마랑 떠났던 홍콩+마카오 여행 때 일이었다.
여행기 공모전에서 운이 좋게 당선이 된 나는 상품으로 1박 3일 홍콩+마카오 여행을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진짜 상품 맞나?라는 생각이 드는 잠을 이틀이나 못 자는 극한의 스케줄이었는데, 우선 공짜 해외여행이라는 점과 상품이라는 말에 당연히 가야지! 라는 생각 뿐이었다. 게다가 1명을 동행할 수 있어서 엄마와 가기로 결정하고 나서 "나는 정말 효녀야" 하며 효뽕에 취해있었다.
다만 하나 걸리는 건 전년도에 같이 일본 자유여행을 다녀왔었던 엄마는 딸내미가 효도한답시고 모시고 간 비~싼 전통 료칸에서의 하룻밤과 식사를 한 후 해외 음식=맛없음이라는 공식을 획득하고 왔었다는 점이었다.
"심심하고 밍밍한 것이 뭔 나물을 무치다가 말아가지고 못 먹겠더라" 이것이 엄마의 총평이었다.
사실 이전엔 "엄마 외국에 나갔으면 외국 음식을 먹어보고 그래야 그것도 추억이 되지, 가서 한국 음식을 먹으면 그게 무슨 해외여행이야?"라는 딸내미의 개 논리에 설득되어 한국음식이라곤 고추장 튜브 하나 가지고 가지 않았던 50대 어머니는 그 여행 이후 해외와 음식에 대해서 은근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1박 3일이라는 여행의 말에 3일이면 9끼... 9끼를 외국에서 먹어야 한다고?라는 말에 엄마는 백팩에 햇반 4개와 컵라면 4개를 쌌다. 두 명이 가니 2끼는 한국 음식을 먹겠다는 의지였다.
"엄마, 거기가 길도 안 좋고 쭉 이동을 하는 거라서 우리가 짐을 갖고 다녀야 해서 짐을 줄여야 한다니까? 무거우면 힘들어."
"내가 다 먹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챙겨. 니 가방에도 넣어라. 나 일본 음식은 밍밍해서 못 먹겠더라."
"일본이 아니라 홍콩이라고."
"일본이나 홍콩이나"
일본 사람이나 홍콩 사람이 들으면 기함을 할 발언을 하던 엄마와 나는 일본 반대쪽으로 새벽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갔다.
홍콩에선 캐리어를 끌지 않고 둘 다 배낭을 메고 여행을 했다. 둘 다 손목이 좋지 못해서 돌길에서 캐리어를 끌 생각을 하니 암담하였고 며칠 동안 숙소에서 묵을 예정이었으면 끌었겠지만 고작 1박만 할 예정이었으니 배낭을 멜 수밖에 없었다.
5월이었지만 몹시 더웠던 홍콩에서 옷이며 세면도구며 특히 햇반과 컵라면을 짊어지고 다니는 여행은 생각보다 정말 힘들었다. 무엇보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여행을 하니 20대 초반인 나는 어떻게든 견뎠지만, 50대의 엄마는 더욱 힘들어했었다, 그래도 엄마에게 하나 다행인 점은 음식이 입에 잘 맞다는 거였다. 딤섬 가게이며, 망고주스, 망고빙수, 완탕면, 에그타르트 모든 음식이 엄마 입에 촥촥 맞았다.
문제는 하루 종일 짊어지고 다니던 컵라면과 햇반이었다. 사실상 무게로 따지면 크게 무겁지 않았을 텐데, 그날 배낭을 메고 다니는 게 힘들었던 마치 이 모든 힘든 게 햇반과 라면 때문이었던 것처럼 나는 저녁 식사 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선언했다.
"자, 햇반 하고 컵라면 하나씩 얼른 먹자. 내일 아침에도 먹어서 없애자."
"저녁도 나가서 먹어야지 뭔 소리여. 여기에 또 언제 와본다고.(그 말을 사실이 되었다.) 가서 뭐라도 사 먹자."
"아 엄마 하루 종일 들고 다니느라 미치는 줄 알았는데, 뭘 사 먹어. 이걸 먼저 먹어야 없애지."
"한국에 가져가면 되지 뭔 말이 많아! 그냥 내버려두고 나가서 사 먹자니까!"
"아니 이걸 한국에 왜 가져가!!!"
"왐마, 난 암튼 그거 못 먹는다. 나가서 밥 먹을 거여"
"나 이거 지금 안 먹으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갈 거야. 나 이거 절대 내일 못 갖고 다녀!"
한참을 언성을 높이며 싸우다가 엄마는
"니년 없으면 내가 밥 못 먹을 줄 알고?"
하더니 가방을 메고 획 나가버렸다.
나도 분노로 가방 속의 햇반과 컵라면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나서는 씩씩 거리다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엄마 지독한 길치인데..... 말도 한국말밖에 못 하는데.....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던 시기여서 지도를 들고 여행을 다녔었는데, 엄마는 항상 가야 할 길 반대를 가리키며 "저기로 가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었고 본인이 길치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한 곳이 바로 이 홍콩이었었다. 엄마가 고집을 꺾지 않아서 무진장 헤맸다는 말이다. 우리 엄마는 일본 여행에서 구입한 온천 티켓이 마음에 안 들던 엄마는 "이거 3번 못 가. 환불해주세요. 환불 몰라요? 환. 불! 환. 불!!! 화. 아. 안. 불!!!"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영어고 한국어고 1도 모르는 일본인들을 매우 당황하게 만든 사람이다. (결국 환불을 못 받아서 더 분노) 나는 내가 모시고 왔는데 나랑 싸우다가 낯선 외국 땅에서 엄마를 잃어버릴 수 없으니 바로 호텔 밖으로 나가보았다.
다행히 엄마는 호텔 바로 앞에 있는 푸드코트 비슷한 식당에 들어가 있었고 가만히 보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언가를 주문을 한 거 같았다.
엄마의 안전소재를 확인하고 나서는 호텔로 돌아왔다. 엄마도 시킨걸 다 먹고 바로 들어온 거 같았다.
"뭐 먹었어?"
"완탕면. 맛있더라."
"잘했네."
"기언치 버렸네. 나쁜 년"
엄마는 쓰레기통에서 햇반과 컵라면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고 우리는 그걸 그대로 가지고 하루 더 꼬박 여행을 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방금 엄마와 둘이 앉아서 이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랑 홍콩에서 컵라면 가지고 싸웠던 거 기억나?"
"안 나는데, 그런 적이 있었냐?
"아 엄마가 1박 3일 여행 가는데, 일본 여행에서 일본 음식 맛없었다고 컵라면이랑 햇반 4개나 챙겨갔잖아. 그리고 그거 들고 다니느라 엄청 힘들어서 먹자니까 안 먹고 현지 음식 먹는다고 엄청 싸웠는데, 그거 기억이 안 나? 하긴 나도 뭐 본 기억은 하나도 안 나고 그거 싸운 기억만 나."
"그랬냐. ㅋㅋㅋ 별걸로 다 싸웠네잉."
"그때 컵라면이랑 햇반 싸갔었다가 안 먹는다고 다시 한국 가지고 왔잖아. 또 가도 그럴 거 같아? 아니면 두고 올 거 같아?"
"무조건 가져오지. 아까워서 어떻게 두고 오냐"
17년이 지났는데 엄마는 변한 게 하나도 없구먼.
고작 3일 여행에서 나를 정성껏 키워주신 엄마가 한국 음식을 찾는다고 투덜거렸던 딸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고작 3년 한국에서 산 게 인생의 전부였는데, 역시 그게 전부여서인지 밥을 하루에 한 끼라도 먹지 않으면 가시가 돋는 입맛을 가지고 있었다.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지 않나요? 가 통하지 않았다. 그 아이와 함께 30일 동안 유럽을 갔으니 상상이 되는가.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