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노래 중에 Oasis(오아시스)의 'Champagne Supernova'(샴페인 슈퍼노바)라는 노래가 있다. 그중에서 퍽이나 마음에 드는 구절은 이것이다.
Someday you will find me (언젠가 너는 나를 찾게 되겠지)
Caught beneath the landslide (무너져버린 더미 속에 갇혀)
In a champagne supernova in the sky (하늘의 샴페인 초신성 속에)
Champagne Supernova가 의미하는 바는 아무도 모른다. 초신성이 샴페인의 반짝거림처럼 수놓아진 것일 수도 있고, 샴페인과 초신성이라는 부조화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제목과 노래 가사가 가져다주는 무작위성과 부조화가 마음에 든다.
사실, 노래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순전히 저 구절 때문이다. 엉망으로 무너져버린 더미 속에 나 홀로 갇혀 하늘 안에 수놓아진 샴페인 초신성을 바라보는 것. 나는 그 샴페인 초신성을 술에 절인 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술에 절여져 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을 서러울 때마다 바라본다.
살면서 서러울 때가 있다. 그 서러움의 크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플 때가 있다. 이 아픔을 위로받을 수도 없고, 위로받는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다. 울음으로 토해내도 가셔지지 않고, 차마 울음도 나오지 않는 그런 응어리가 가슴속 한구석에 자리 잡을 때가 있다. 슬픔을 대면하기에는 내가 너무 작고 무시하기에는 아픔의 크기가 클 때 나는 가만히 엉망의 더미에 누워 술에 절여진 별을 본다. 아무런 질책도, 상념도 없이 하늘 속 가득히 수놓아져 절여진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나이 한 살을 먹고 해가 지나면서 슬픔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가 되고 만다. 아니, 나이가 들수록 슬픔의 크기는 더 커지고 나는 더 작게 느껴진다. 이제는 알 법할 만한데도 아픔에 대처하는 방법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술에 절인 별을 생각한다.
들판에 누웠을 때 올려다본 하늘 안 별이 술에 절여져 흐릿하게 보이는 것처럼
내 눈앞의 시야도 그렇게 뿌옇게 흐려져,
침잠하고 말리라.
2015년 가을 문집 『Writing in Autumn』에 쓴 글, 2018년 5월 21일에 수정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