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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Nov 10. 2019

브런치 작가 8개월, '내 글 노잼병'에 걸렸다.

나의 글쓰기도 이제야 배밀이 단계에 접어들었다.

카카오의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작가로 선정되어 나만의 페이지를 꾸려나간 지 어느덧 8개월이 되어간다. 그저 개인 콘텐츠를 올리는 SNS에 불과한 듯했는데, 이 플랫폼에서 글을 쓰기 위해서 두 번의 씁쓸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대학도 한 번에 간 나인데 말이다. '안타깝게도'로 시작되는 간결하면서도 냉정한 거절을 받고도 계속 작가 신청에 도전했다. 순전히 끓어오르는 열정 때문이었다. 글이 좋았다. 글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매일 밤 밤잠을 설쳤다. 글은 과거의 내가 현재와 미래의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손짓이자 새로운 세상이었다.


장장 9개월간의 기다림 끝에 꿈에 그리던 나만의 브런치 페이지를 오픈하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갔다. 주말에 머리를 싸매고 얼개를 짜보기도 하고, 과거의 상처가 드러나는 글을 쓰다가 울기도 했으며, 가끔은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기도 하고, '네가 잘 모르는 학교 동창 누구가, 우리 회사 사람 누구가 네 브런치를 염탐한다더라.'하는 기분 좋은 음침함도 전해 들어봤다. (그래도 기왕이면 '구독하기' 버튼을 누르고 염탐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났고, 나는 지금 '내 글 노잼병'에 걸렸다.



두 달 전 즈음에 브런치에 취업 준비의 시련과 엄마가 만들어줬던 소울푸드를 엮어 글을 한 편 썼는데 그 글이 '브런치가 추천하는 글'로 선정됐다.(brunch.co.kr/@youmni/13) 정신없던 어느 평일 날, 오후 1시가 되자마자 갑자기 브런치 앱 알람이 쉬지 않고 울렸다.


~님이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구독자가 10명을 돌파했습니다!
~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님이 라이킷했습니다.
...


지인, 회사 사람들, 어쩌다 검색을 잘못해서 페이지에 잠깐 발만 들였다 뺀 사람들, 최신 글에 있길래 들어왔다 나간 사람들만 드나들던 내 브런치가 처음으로 북적북적했다. 첫째 문단을 둘째 문단으로 보냈다가, 음식의 식감을 표현했다가 지웠다가, 힘들었던 기억에 눈물을 질질 짰던 몇 주 동안의 고생이 드디어 인정을 받은 느낌이었다. 잘 나간다는 작가들이 말하는 '공적인 글쓰기'의 중요성이 뭔지 새삼 깨달았다. 골방에 썩어있던 내 글이 드디어 세상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흥겨움은 찰나였다. 인기 글의 짜릿함에 너무 일찍 중독되어 수치의 노예가 됐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과가 브런치 통계 페이지에서 내 글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팔렸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전날보다 구독자 수나 조회수가 줄면 기분도 덩달아 가라앉았다. 인기 브런치 작가 페이지에 가보면 구독자 수가 몇천이고 글의 조회수는 몇십 만에 달한단다. 내 페이지로 돌아오니 두 자리의 구독자 수가 썰렁하게 나를 반긴다. 조금 있으면 글의 개수가 구독자 수를 넘어서게 생겼다. 대체 왜? 내 글이 그렇게 매력이 없나? 자괴감 넘치는 생각을 뭉게뭉게 피어 올리다 다른 한편으로는 얄팍한 수치가 대단한 작품의 질을 대변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기 위안을 했다.


브런치 구독자 30명을 돌파하던 날, 엄마의 차디찬 반응


글을 위해 팔아넘길 인생의 화두마저 벌써 바닥을 보였다. 콱 막힌 듯한 갑갑한 기분으로 겨우겨우 쓰고 나면 내 글이 노잼이다. 책을 몇 권이나 출간한 작가들의 글은 감칠맛이 나는데 내 글은 무맛이다. 취미로 즐겁게 글을 썼던 날이 언제였나 싶다. 심지어 가장 비판적이고 냉철한 독자 중 한 명인 엄마도 내가 낭독하는 최근 글을 듣다가 중간에 끊었다. "지루해."


처음으로 인생에서 글쓰기가 힘들어졌다. 여섯 살 때부터 일기를 쓰고, 초중고 시절 내내 담임선생님에게 제출하는 일기장 외에 나만의 일기장을 몇 권이나 만들어내고, 각종 교내외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글로 대학교에 입학하고, 졸지에 이제는 생계로 글을 쓰는 내가 글을 어려워하게 됐다. 글은 무남독녀 외동딸인 내게 형제이자, 인생 최고의 친구였는데 말이다. 나의 형제, 나의 친구가 언제부터 이렇게 멀어진 걸까.


그러던 중 우연히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글 쓰는 이들을 위한 가이드북과 같은 책이었는데 그전까지 나는 '글쓰기 책이나 강연으로 내 고유의 글쓰기 영역을 흐리기 싫어서'라는 오만방자한 이유로 글쓰기와 관련된 책은 읽지 않았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집어 든 책에서 은유 작가는 내가 지니고 있던 그동안의 고민에 대해 정곡을 찔렀다.


pp. 55~56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하나는 기분이 삼삼해지는 일이고 하나는 몸이 축나는 일이다. (중략)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즐기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p. 52
이래저래 몇 편 쓰고 나면 학인들은 너도나도 글감 부족을 호소한다. 어떤 이는 "경험 돌려막기"가 한계에 달했다고 말해 동료들의 큰 공감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열 편 남짓 글을 쓰고 나서 예외 없이 글감의 고갈에 직면하는 이유는 삶 혹은 나에 대한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한다. 어쩌면 글감의 빈곤은 존재의 빈곤이고, 존재의 빈곤은 존재의 외면일지도 모른다.


툭툭 손가락으로 이마를 치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힐난하는 말에 머리라도 얻어맞은 듯 댕 하고 종이 울렸다. '글 좀 쓴다.'라고 말하며 자랑하던 나는 20여 년의 글쓰기 인생에 '쓰는 기분에 취해 있던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입이 댓 발 나온 작가의 글쓰기 교실 수강생처럼 '경험 돌려막기'의 밑천이 다 드러났던 나는 그동안 커피 한 잔을 두고 글 쓰는 멋들어짐에 취했던, 모양새만 내는 사람이었다. 글감의 빈곤은 존재의 빈곤이라니. 내가 이토록 빈곤한 사람이었다니. 작가의 일침에 뜨끔했다. 물론 풍부한 내 감수성은 으르렁대는 짐승이 득실대는 정글 같은 회사가 앗아갔으니 나름의 변명은 있다.


'내 글 노잼병에 걸렸네.', '글을 쓰다 슬럼프에 빠졌네.'라며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글쓰기 강연을 전전해보고, 다시 책상머리에 앉아 노트북을 싸우듯이 마주 보며 글감을 고민했다가, 다른 잘난 작가들의 페이지를 엿보며 시기하던 것을 반복하기를 며칠. 작은 구독자 수와 방문자 수에 자존감도 덩달아 작아질 무렵 『글쓰기의 최전선』을 덮고 잠시 생각해보았다. 문득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나는 슬럼프에 빠진 게 아니었다.


글 쓴 지 이제 8개월 차다. 그동안 썼던 일기, 논술, 회사를 위한 글 등 기록에 불과하거나 이해타산이 뚜렷한 글을 제하면 말이다. 진지하게 인생을 마주한 채 글감으로 될만한 것들을 뽑아내어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씨름을 한 지 고작 8개월이 됐다. 생후 8개월 된 아기는 배밀이를 할까 말까 하고, 손으로 장난감을 어설프게 쥘 수 있으며, 사물을 겨우 알아보기 시작한다. 여전히 의사 표현이 어렵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으며 심사가 뒤틀리면 울기만 하는 단계라는 뜻이다. 나의 글쓰기도 이제야 배밀이 단계에 접어들었다. 책을 몇 권이나 내는 청소년기에 들어선 작가처럼 글을 쓰려고 하면 아기가 서서히 성장하면서 겪는 고군분투처럼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상의 사소한 파편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수도 없이 작성과 퇴고를 반복하며, 때로는 쓰레기 같은 글을 쓰레기통에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노련한 작가가 인생과 작품을 넘나들면서 때로는 그 두 가지를 융화시켰다 분리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이제 보니 나는 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애니까. 글로 흥하겠지?'했던 한때의 거만함이 이제야 많이 부끄럽다. 다시 한번 새겨야겠다.


나는 슬럼프에 빠진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초짜다.




난생처음 참여해본 글쓰기 모임에서 윗글의 초본을 내고 합평을 했는데 모임 동료 중 몇몇이 글 내용 속 엄마의 피드백에 영향을 받았는지(그랬다고 믿고 싶다.) 역시 글이 지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 애들이 내 글이 지루하대."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푸념을 늘어놓다가 마음을 다잡고 퇴고를 거듭했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글쓰기 모임에서 혹평을 받은 뒤 쓴 글 중 하나가 2주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브런치 추천 글에 올랐다는 것이다.(brunch.co.kr/@youmni/18) 이번에는 '브런치가 추천하는 글' 중 가장 첫 페이지에 게재되어서 좀 더 뜨거운 반응을 꽤 오랜 시간 동안 즐길 수 있었다. 공적인 글쓰기를 결심한 순간 독자의 반응을 눈치 보듯이 면밀히 살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일련의 과정인가 보다.



역시 글을 못 놓겠다. 고민의 과정이 진하면 진할수록 글은 어떤 방식으로든 꼭 보상한다. 그것이 구독자든, 조회수든,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든, 하다못해 개인적인 만족감이든 말이다. 나의 형제이자 친구인 글과 잠깐 싸웠다 화해한 셈 치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쓰다 보면 (좋은 작가가) 되겠지.'라는 태평한 마음가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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