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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May 31. 2020

싫어했던 동창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다.

퇴사 말고 그냥 회사 에세이-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회사원이 되어버렸다.

올해 들어 개인적인 시간이 많아졌다. 코로나19의 여파에 매출 감소를 견디지 못했던 회사가 무급 휴가, 유급 휴직 등 다양한 형태의 ‘쉼’을 선물하더니 급기야 최근에는 보수적인 우리 회사에서 절대로 용납되지 않을 것 같았던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일감이 없는 상황에서 출근해봐야 사무실에서 정수기 물 축내고, 직원 식당에서 쌀밥이나 축내니 연차까지 더해 쉬어도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어떤 주는 3일 출근하고 그다음 주는 조금 더 열심히 일한다 생각하고 많아야 4일 출근하니 여유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이 많아져서 좋긴 하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무실 생활에 길들어 있던 나는 별달리 생산적으로 그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쓸데없는 생각만 많아지고 생각의 뭉치가 모여 한 덩어리 뭉게구름처럼 형태를 띠면 충동적으로 무모한 짓을 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어제였다. 노트북을 쓰다가 갑자기 16년 전 중학교 1학년 때 동창이 떠올랐다. 대학교 시절을 회상하던 것이 시발점이 되어 고등학교, 중학교로 내려가더니 어느새 16년의 세월을 거슬러 열네 살의 기억을 헤집고 있었다. 머리 위로 우중충한 회색 뭉게구름이 둥둥 뜨면서 그때 내가 정말 싫어했던 중학교 동창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동창이 잘나서 싫었다. 얼굴도 예쁜데 조용조용하게 학교에 다니면서 전교 2등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친구의 모습이 질투 나서 싫었다. (당시에는 그래도 그 친구가 1등 할 재목이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 됐다.) 친구들과 소리 지르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우악스러운 몸짓으로 복도를 휘젓고 다니는 나와 그 친구가 너무 달라서 싫었다. 새벽 2시까지 침침한 눈으로 책을 붙들어도 가장 내세울 만한 성적이 4등이었던 내게는 저 위에 2등이라는 자리에서 그 자리도 못마땅해 했던 그 동창의 존재가 열등감의 기폭제였다.


질투라는 감정은 묘해서 나는 그 친구를 싫어하면서도 동시에 친구와 친해지고 싶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아빠가 차로 교문 앞까지 데려다줬던 날이었다. 등교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쥐불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오른손으로 신발 주머니를 빙빙 돌리면서 천천히 학교 건물 현관까지 걸어갔다. 현관 앞에서 조용히 신발을 갈아신던 그 친구와 마주쳤다. 실내화 주머니에서 실내화를 꺼내 탁 소리가 나게 떨어뜨리면서 친구에게 인사하고는 껄렁껄렁한 말투로 “이번에 전교 2등 했다며?”라고 물었다. 뒤이어 축하한다고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친구가 나를 탁 쏘아보더니 실내화를 마저 고쳐 신고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2등이 콤플렉스였던 동창에게 2등이라는 단어를 꺼내니 당연한 반응이었는데 그때는 ‘저게 지금 내가 4등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하면서 도리어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선명한 기억만큼 그 동창은 내 인생 처음의 진한 열등감이었다.


불현듯 인생 첫 열등감을 검색했다. 마지막으로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소식을 기반으로 친구의 대학교와 이름을 구글 검색창에 집어넣고 엔터(Enter) 키를 눌렀다. 페이지 상단에 결괏값이 보였다.

○○ 한의원
원장 △△△
□□대학교 졸업


‘마지막으로 남은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더 클릭하지 마!’라며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울부짖는 외침을 무시하고 한의원 소개 홈페이지로 넘어갔다. 열네 살 그때와 똑같은 얼굴의 그녀가 새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번듯한 한의원의 원장으로 삶을 영위해가고 있다는 것을 클릭 몇 번에 알게 됐다. 내가 그렇게 꿈꿨지만 이룰 수 없었던 전문직의 삶을.


각종 미디어에 ‘한의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전문가로서 조언을 건넨 그녀의 인터뷰도 여럿 보였다. 생각해보면 친구나 나나 출발선은 언뜻 비슷해 보였는데 언제 이렇게 격차가 벌어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전문가로 일반인에게 훈수를 둘 동안 나는 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차지했는지 자연스레 비교했다. 의견 제시는 고사하고 평범한 업무 메일 참조에 사수를 넣지 않았다고 지적을 받고 일장연설을 듣는 내 처지를 생각하자 16년 전 신발 주머니를 어정쩡하게 들고 있던 나를 쏘아봤던 동창의 얼굴이 겹쳤다.


네모난 홈페이지 창의 오른쪽 위에 있는 작은 X 표시를 눌러 창을 없애고 모니터만 멍하니 쳐다봤다. 힘든 취준(취직 준비)의 끝에 입사하고 나서는 열등감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괜찮은 회사에 입사하고, 또 더 괜찮은 회사로 이직해서 어느 조직에서나 1인분 이상을 해낸 내가 느낀 감정은 열등감보다 자부심 쪽에 더 많이 치우쳐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고만고만한 직장인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SKY 대학교 나온 동기도, 선후배도 내 옆자리에 앉아 나와 같은 회사 밥을 먹고 회사 돈을 받으니 이 우물은 개구리가 사는 우물이 아닐 것이라며 안심하는 동안 나는 점점 개굴개굴 우는 진녹색의 개구리 한 마리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양쪽 입꼬리가 축 처졌는데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조금씩 현실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전문직 동창을 시기하기에 나는 이미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고 더 나은 일을 하기에 이번 인생에서 재능을 찾지 못했다. 더 나아가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 회사원이 되었다.’라고 되뇌며 패배 의식에 빠져들기에는 당장 내가 몸담은 이 회사라는 터전마저 없어지면 내 생활의 기반은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회사는 내게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네’이다. 출근하고 나서 상사의 모든 말에 대답하는 간결한 ‘네’처럼 회사를 재단할 선택권이 내게는 없다. 안정적인 일상을 얻기 위한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마음이 편해진다.


주말이 저물어간다. 어김없이 월요일이 찾아온다. 재미도 보람도 하나 없는 한 주가 나를 기다린다. 등교하기 싫은 학생처럼 출근 가방을 싸야겠다. 개굴개굴 개구리울음을 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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