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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택근 Dec 25. 2021

Life in Scotland Episode 7-2

학교 수업들

(월)


오전에 같은 전공 친구들과 교수님과 줌으로 미팅을 가진다. 이번 주에는 어떤 수업들이 있는지, 학업 진행은 잘하고 있는지, 각자 한 주 어떻게 보냈는지,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에 대해서 서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시간이 정규 시간표에 포함되어 있고 매주 이렇게 진행을 한다는 것에 대해 꽤 흥미로웠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꿈이 있고 어떤 길을 걷고 싶은지 서로 공유하며, 그 과정을 통해서 서로를 신뢰하고 도와주는 관계를 만드는 것을 이 교수님은 중요시하는 것 같다. 학생으로 왔지만 우리를 이미 훌륭한 뮤지션, 음악감독으로 불러주고 레슨을 진행하더라도 너희가 나를 가르쳐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거고 너희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나 문제점들이 있다면 본인이 그것을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얘기를 하신다.

 

Vocal Health and Anatomy 수업이 오후에 있다. 성대 건강 및 해부학이라고 해야 하나. 목소리에 관한. 목소리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리는 어떻게 나는 건지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진짜 놀랐다. 이거를 학교에서 가르친다고? 의사를 하려는 친구들도 아닌 예술을 하는 친구들을 앞에 두고 이 과목을 가르친다고?

와, 근데 수업을 계속 듣는데 이런 수업이 왜 한국에는 없었을까 싶었다. 우리가 지금은 아직 어려서, 노래를 해서 목소리가 상해도 회복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언젠가 전문적으로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일을 하게 될 때 너희는 분명 목을 다치게 될 것이고 회복이 점차 더딜 것이라는 말을 해주신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상하지 않게, 관리하는 법부터 차근차근히 알려준다. 되게 사소한 것들이다. 야식이나 먹고 바로 자지 말라던지, 제습기 사용하라던지 그런 사소한 것들이다. 근데 정말 가르치는 방식에 너무나도 놀랐다. 학업 도중 목소리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나 학교에 연락하란다. 학교에 성대 쪽 봐주는 전문의사가 항상 계시다고 한다. 이 정도로 학생의 건강 문제까지 신경을 써준다는 거에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생들의 수업태도도 대단하다. 교수님이 수업을 진행 못할 정도로 질문을 계속한다. 질문보다는 교수님이 설명만 해주시길 바랬던 한국인 한생으로써는 조금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학기말쯤이 되었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있더라.


이렇게까지 학생 개인의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챙겨주는 학교는 (물론 많은 학교들 다닌 건 아니지만) 처음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키우기 위해 정신교육도 하는 학교다. 학교 밖에서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다 보면 실망을 할 때가 많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확고한 믿음을 내려버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동안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게 본인의 자아와도 같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왔지만 우리는 그러지 말라고. 너희들의 생각을 확실하게 얘기를 해야 하고,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게 있으면 당하고만 있지 말고 소리를 내라고 얘기하신다.  


물론 어떤 수업은 이렇게까지 심오하고 진지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수업 정말 웃으며 놀듯이 수업을 진행한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이곳의 교수님들과 학생들은 대단한 사람들인 것 같다.


(화)


수업이 오전 9시부터 시작하니 아침 6시 30분 정도에 일어난다. 30분 성경 읽고 아침 먹고 씻으면 8시 정도가 된다. 수업 듣기 전 잠깐 음악을 듣거나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연락을 한다. 한국과 8~9시간의 시차가 있기에 여기가 아침이면 한국은 오후고 여기가 오후면 한국은 밤이다.


오전에는 학사 친구들과 함께 Artist in Development 강의를 듣는다. 결국엔 아티스트로써 나를 어떻게 브랜드화할 것인지에 대한 수업이다. (속으로 이것 또한 수업으로 가르친다고? 싶었다.) SNS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등등 말이다. 너만의 것들을 계속해서 표현을 하고 그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이걸 왜 중요시 안 하고 수업 과정에 없었나 싶다. 아니, 나를 브랜딩 하는 수업을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것 같긴 하다. 전공 수업에도 이 수업이 들어가도 정말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전에서 오후 넘어가는 시간에 뮤지컬 역사에 대한 수업도 있다. 뮤지컬이 언제 생겨났는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수업이다.


오후에는 퍼포먼스 전공 친구(배우)들과 Voice 강의를 듣는다. 이 학교는 정말 목소리에 관한 수업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하나는 Speaking Voice에 관한 것. 다른 하나는 Singing Voice. 소리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해 연구를 하고 여러 실험을 해보고 몸을 움직여가면서 이런 소리를 낼 때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경험해보는 수업이다. 경험한다기보다는 인지한다는 게 맞겠다. 교수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 'Tension is the devil.'. 긴장하다 보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해 더 알수록 이 긴장감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아니, 긴장감 속에서 더욱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숨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여기는 학생들과 교수님과 나누는 대화가 곧 강의다. 교수님이 질문을 하시면 학생들은 정말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대답을 한다. 이렇게 자유롭게 손을 들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아마 교수님이(또한 다른 학생들도) 그 대답한 학생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저 아이의 질문이나 의견이 이상할지라도, 교수님은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준다. 그 학생만의 생각에서 나온 질문과 대답이기에 그 자체로 존중을 해주고 전혀 질문하거나 의견을 던진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해 준다.

"Be hard on the work you do. But don't be too hard on yourself."

Voice 수업 중 강의실 안을 걸어 다니며 기분과 상황에 따른 걷는 자세와 호흡에 대해 인지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걷고 있는 도중 교수님이 뜬금없이 이 말을 갑자기 내뱉으셨다. 네가 하는 일에는 열심히 해야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너무 채찍질을 하지 말라는 뜻처럼 들렸다. 조금 여유를 가지라는 말을 하시는 것처럼 나한테 다가왔다.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으며, 여기까지 오기 위해 내가 놓아버린 것에 대해, 놓쳐버린 것에 대한 것들이 그 짧은 시간 안에 휙 지나갔다.


그동안은 남에게는 너그럽고 나 자신에게는 엄청 엄격했었다. 그게 잘하는 건 줄 알았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도 알았다. 근데 너 자신에게 조금 너그러워지라는 그 말에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해본다.


(수)


오전에는 Sound에 관한 수업이 있다. 뮤지컬 디렉터로써 다뤄야 할 여러 음악 관련 프로그램들(로직, 메인 스테이지, 프로툴즈, 큐랩 등등)을 잘 다루기 위한 수업이다. 이 수업 역시나 토론 위주의 수업이다. 학생들과 교수님 서로 대화하는 것이 수업이다. 정말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교수님께서 계속해서 질문을 하시는 방식이 이 학교의 교육방식이다.

공연 때 메트로놈을 틀고 하는 게 옳은 걸까 아니면 틀지 않는 게 옳은 걸까에 대한 토론을 한 적도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러면 메트로놈을 틀고 할 때의 좋은 점과 불편한 점들 등등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오후에는 지휘 수업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 타교양으로 지휘법을 수강한 적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가장 부드럽고 아름다운 4분의 4박자 지휘는 처음 봤다며 교수님이 칭찬해주셨다. 지휘에 소질이 있나 보다.

지휘를 배우면서 음악을 듣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 피아노만 연주하는 자의 귀가 아니라 전체적인 걸 들으며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악기를 연주하는 자에게 지휘법을 꼭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정말이지, 듣는 귀가 달라진다.

합창 지휘할 때의 방법과,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의 방법, 그리고 뮤지컬 곡들을 밴드 구성일 때 지휘하는 방법 또한 서로 너무 다르다. 그래서 많이 애를 먹은 과목이기도 하다. 한 가지 깨달은 건, 정답은 없다는 것. 손 짓, 몸 짓, 표정 등으로 상대방이 정확히 알아들을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근데 그 정확히 표현을 한다는 것이 어려운 거기에, 표현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익히고 있다.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곡부터 해서 웅장한 곡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지휘하며 여러 지휘 스타일을 배우고 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씩 다 경험한 후에 스스로 본인만의 지휘 스타일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목) 


Scoring and Arranging에 대해 배운다. 오케스트라 각 악기별 특징, 현악 편곡법, 악보 적는 방법 등을 배운다. 특히 엄청 기대를 했던 수업이다. 한국에 있을 때 꼭 배워보고 싶던 것들이었다. 교수님은 Stuart Morley라는 분이신데, 정말 엄청난 전설이신데, 본인은 그걸 모르시는 것 같다. 뮤지컬 We Will Rock You 음악감독으로 투어까지 돌았던 분이신데! 수업 때 본인이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말아먹었었는지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신다. 정말 겸손하신, 사람 자체가 좋으신 분 같다.

재밌는 것은, 수업 때 물론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시지만, 직접 일을 하면서 많은 실수들을 하면서 결국에는 배우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실수를 줄이는 거라고.   


오후에는 학사 친구들 3~4명 정도 만나서 다음 날 있을 퍼포먼스 수업의 곡들을 연습한다. 학사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고 나는 반주를 해주는 식이다. 만나서 곡에 대한 해석들을 서로 나누고 몇 번 같이 맞춰본다. 아직 20살도 안 된 친구들이 대부분이기에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이렇게 어린 친구들인데 이렇게도 생각이 깊고 노래도 잘 부르고 연기도 잘하고 대단하네...'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초견 연습이 되는 시간이다. 콩나물 음표들을 보기보다는 알파벳 코드를 보는 것이 익숙한 나로서는 굉장한 부담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클래식 기반의 엄청난 뮤지컬 곡들을 가지고 와서 반주해달라고 하면 식은땀이 줄줄 나기도 한다. 이것을 매주, 내년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코스가 끝날 때쯤이면 초견은 만렙 찍겠네 생각을 해본다.   


피아노 개인 레슨이 있다. 피아노 터치에 대해서 고민이 많기에 이러한 부분들을 얘기해드렸다. 내 연주에 대해서, 내 톤에 대해서, 이 정도의 톤을 낼 수 있는 연주자를 찾기가 쉽지도 않고 분명 나만의 아름답고 예쁜 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뮤지컬 곡들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톤이 더 다양해야 한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모든 곡들이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기쁨, 슬픔, 분노, 아픔 등등 이 모든 감정을 더욱 담는 연주를 하라고 하신다.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뮤지컬을 하러 온 가수들에게 교수님들이 처음 하시는 말.

'너희는 가수가 아니라 연기자, 배우들이야. 노래를 하지 말고 연기를 해야 해.'

그동안 연주자로서 피아노를 연주해온 나이기에 '가수'적인 입장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던 것이다. '가수'가 아닌 '배우'로 음악을 연주하도록 훈련을 시키시는 것 같다.


(금) 


오전부터 해서 오후까지 퍼포먼스 수업이 있다. 이 수업은 주로 뮤지컬 배우와 음악감독 혹은 반주자 간의 호흡에 관한 수업이 될 듯하다. 배우 과정 하는 학생들이 뮤지컬 곡을 하나 정해서 음악감독 과정 중인 우리와 매주 연주를 한다.

여기서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거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학생이 곡 가져와서 저 이거 부를 때 이게 불편해요, 이게 조금 힘들어요, 하면 그걸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될 때까지 계속 시키면서 용기를 주신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본인이 변하는 것을 보니,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도 있다.

심리학적인 부분이 많다고 느끼는 것이, 항상 다른 시각으로 음악을 바라보게끔 하신다. 이 곡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이 사람은 어떤 식으로 노래를 부를 것인지, 이 사람이 왜 이 노래를 지금 부르고 있는 것인지 등등 교수님과 서로의 생각들을 공유한다.  

뮤지컬은 노래를 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계속 얘기를 하신다. 그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와 억양 그리고 성격이 드러나게 연기를 하는 것이 목적이다. 연기가 먼저, 그리곤 노래다. 


오후 늦게 또 다른 피아노 레슨이 있다. 건반을 치며 지휘하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다. 요즘에는 작은 카메라에 대고 음악감독들이 건반을 치며 지휘를 한다고 한다. 그걸 이제 다른 연주자들이 보고 연주를 한단다. 밴드 구성에서 직접 건반을 치며 지휘하는 것은 합창이나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와는 너무 다르다. 손은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무엇으로 지휘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결론은 피아노를 치면서도 손으로 지휘를 할 수 있다.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음, 덜 중요한 음들을 정해서 조금 자유롭게 연주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곤 요즘처럼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에는 눈빛, 몸짓, 고개 끄덕임 특히 중요하다고 한다. 목디스크를 앞으로 조심하라는 농담도 하신다. 직업병이 생길 거라고.



이렇게 한 학기가 끝났다.

이거를 두 학기를 더 해야 한다니.

정말 내년, 이 코스가 끝날 즘에는

아이언맨이 되어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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