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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택근 Sep 13. 2024

뮤지컬 수첩

#6 소포클레스 - 오이디푸스 왕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


오이디푸스 왕과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비극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비극적 서사 중 하나이다. 이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주요 작품들과 그 줄거리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 - 소포클레스

Nationalmuseum, The Blind Oedipus Commending his Children to the Gods, Bénigne Gagneraux, 17831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은 예언과 그 운명을 바꾸려는 한 인간의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소포클레스가 이 신화를 바탕으로 극을 창작했다.


신화에 따르면 라이우스 왕은 신탁으로부터 "그의 아들이 그를 죽이고 왕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받는다. 이 예언을 두려워한 라이우스 왕은 태어난 아들 오이디푸스를 산에 버려 죽이려 했지만 하인이 그 아이를 살려주었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 왕에게 입양되어 자라게 된다. 시간이 흘러 오이디푸스는 자라서 결국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테베를 다스리고 있는 오이디푸스 왕이 전염병에 시달리는 도시를 구하기 위해 그 원인을 추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이디푸스 신화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태어나서 버려지고,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예언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인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관객은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지만,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보지 못하는 상태다. 관객들은 눈앞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의 연기와 대사를 보며 '왜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에게 드러나게 될 비극적인 진실에 연민과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오이디푸스는 결국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사실을 깨닫고, 어머니이자 부인이었던 이오카스테가 자살한 것을 보고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스스로 눈멀게 만든다. 이 행위는 어쩌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처벌이자,  더 이상 진실을 보고 싶지 않다는 절망적인 선택이었으리라. 동시에, 신의 계획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최종적으로 본인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신들의 계시에 의해 예언된 운명에 맞서 싸우는 오이디푸스를 단순히 비극적인 인물로 봐야만 할 것인가? 오이디푸스는 그의 행동과 선택을 통해 선한 인간으로서의 면모 또한 보여준다. 그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터무니없는 예언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리고 떠나 불합리한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는 그가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찾으려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물론, 그는 예언에 따라 여러 비극적인 범죄를 저질렀지만, 이는 악의 표현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힘에 저항하려는 필사적인 한 인간의 노력이었다. 오이디푸스가 신의 계시를 거부하고 운명을 바꾸려 한 행동은 오만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당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오이디푸스 왕은 오히려 선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그의 선함과 도덕적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2)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Oedipus at Kolonos) - 소포클레스

Oedipus at Colonus, Jean-Antoine-Théodore Giroust, Dallas Museum of Art.

소포클레스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Oedipus at Colonus)>는 오이디푸스왕이 딸 안티고네와 함께 테베를 떠나 방랑하다가 콜로너스(Colonus)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그는 예언과 운명을 거부하며 투쟁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주어진 예언과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물로 변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폴로는 오이디푸스가 삶을 마칠 곳이 "에리니에스의 숲(Grove of the Furies)"이라고 예언했으며, 오이디푸스는 바로 이곳에 도착하게 된다. 이 숲이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적 운명이 끝을 맺는 종착지가 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에리니에스는 복수와 정의를 상징하는 여신들이며, 그들의 숲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오이디푸스 왕을 묘사한 장면에서는 그가 마침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방랑자로서 시작했던 오이디푸스는 극의 끝에 이르러 영적인 모습으로 보이며, 그의 죽음이 단순한 비극적 종말이 아닌 구원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 작품은 기원전 406년에 집필한 작품으로, 소포클레스가 죽기 직전 완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원전 401년 그의 손자가 아테네 디오니시아 축제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올렸다. 이 시기 아테네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년 - 404년)에서 스파르타에 패배한 아테네는 위상이 크게 추락했으며 경제, 정치, 군사적인 힘이 매우 약화된 상태였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 작품이 공연되었다는 것은 당시 아테네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소포클레스의 고향인 콜로너스는 아테네 근교에 위치한 지역으로, 이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사실상 아테네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오이디푸스가 콜로노스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테네는 그를 신성한 인물로 받아들이고, 그의 죽음은 아테네에 축복과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예언이 담겨 있다. 이는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 시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재건에 대한 상징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절망 속에서도 시민들에게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자극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3) 안티고네(Antigone) - 소포클레스

Antigone with Polynices' Body, Sébastien Norblin, National Museum, Warsaw.

오이디푸스가 죽은 후 테베는 내전을 겪게 된다. 그의 아들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가 서로 테베의 왕위를 두고 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폴리네이케스가 외부 군대를 이끌고 테베를 공격하는 사건을 다룬 이 이야기는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테베를 공격한 일곱 장수(Seven Against Thebes)>에서 다루어진다.


<안티고네>는 전투를 마치고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 크레온의 명령으로부터 시작된다. 오이디푸스의 죽은 두 아들 중 한 명, 에테오클레스는 테베를 방어한 영웅으로 여겨져 장례를 치르지만, 폴리네이케스는 침략자로 간주되어 시신을 매장하지 말고 길거리에 내버려 두라고 명령하며, 이를 어길 시 처형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상황에서 등장하는 오이디푸스의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죽은 형제의 장례를 어떻게 할지 논의한다. 안티고네는 크레온 왕의 명령을 어기고서라도 형제에게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스메네는 왕의 권위를 두려워하며 주저한다. 결국, 안티고네는 홀로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르려 하며 비극이 시작된다.


크레온은 안티고네의 행위를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고 그녀를 처벌하기로 결심한다. 이 과정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등장해 크레온에게 신들의 경고를 전하지만, 크레온은 이를 무시한다. 결국 크레온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바로잡으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음을 알게 된다. 그의 아들 하이몬과 아내 에우리디케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크레온은 자신의 고집과 자만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어느 누구도 전적으로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 인물은 자신의 입장에서 옳은 선택을 하지만, 다른 이의 입장에서 그 선택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 "옳고 그름"의 복합적인 조화가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테베를 침략한 자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라는 크레온의 명령은 나라의 권위와 존엄을 지키려는 왕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형제의 장례를 치르려는 안티고네의 행동 역시 이해가 된다.


작품은 코러스의 리더가 고통과 슬픔에 빠진 크레온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교훈을 전하며 끝을 맺는다.


Good sense is crucial to human happiness.
올바른 판단력(지혜)은 인간의 행복에 필수적이다.

Never fail to respect the gods,
신들을 존경하는 것을 결코 소홀히 하지 말라.

For the huge claims of proud men are always hugely punished-
교만한 자들은 언제나 큰 처벌을 받기 마련이고-

By blows that, as the proud grow old, pound wisdom through their minds.
그들이 늙어서야, 그 자만심은 지혜가 되어 마음속에 새겨진다.


이 마지막 코러스의 대사는 <안티고네>의 주요 주제를 요약한다. 인간은 올바른 판단력과 신에 대한 경외심을 유지해야 하며, 교만은 결국 파멸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크레온의 비극은 그의 자만심과 신성한 법(죽은 자를 장례 지내는 것)을 무시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결국 그는 그로 인한 고통을 통해 지혜를 얻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읽고야 만다. 이 마지막 대사는 단지 크레온만이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교훈을 전하며, 인간의 한계와 신의 권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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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부터는 고대 그리스의 희극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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