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비극의 본질: 신의 뜻과 인간의 도전
왜 비극이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몇 가지 요소들을 살펴보자.
1) 당시 고대 그리스의 상황
고대 그리스, 기원전 5세기경의 아테네. 이 시기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철학적 사유가 확산되었으며, 문화 예술이 크게 발전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특히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했다. 또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인간 존재와 윤리, 정치, 그리고 우주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질문들을 던졌다. 그러나 이 시기는 또한 도시 국가 간의 경쟁과 전쟁, 특히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년 - 404년)과 내부적인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불안정한 시기이기도 했다.
2) 신화(Myth)에서 비극(Tragedy)으로
고대 그리스 비극이 형성되기 이전, 다양한 신화들이 이미 그리스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신화는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인간과 신의 관계를 설명하며,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극 작품들은 주로 신화 속 인물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메데이아 등은 모두 신화에서 유래한 인물들이다. 이러한 신화 속 인물과 이야기들은 비극 작가들에게 인간의 본성, 운명, 죄와 벌, 가족 간의 갈등 등의 주제를 탐구하며 여러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3) 왜 디오니소스를 위한 축제(Dionysia)에서 비극을 공연했을까?
디오니소스 축제는 술과 풍요 그리고 연극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기리기 위해 아테네에서 매년 개최되었다. 처음에는 농업의 풍요와 풍작을 지원하는 농경 축제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극예술이 중심이 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감정, 그리고 삶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에서 인간의 고통, 운명, 죽음과 같은 주제를 탐구하는 비극 작품들을 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할 수가 있겠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긴 비극 작품들은 인간 삶의 복잡성과 개인이 특정 상황에서 내리는 선택과 행동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이 탐구하고 싶던 것은 인간의 주체성으로,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현대인, 특히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비극 작품들을 읽어보면, 비극의 인물들이 "내 인생은 누구의 것인가? 나만의 것인가? 신의 것인가? 내가 하는 행동들이 나만의 선택인가 아니면 신의 섭리 아래 있는 것인가?"와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삶은 주의 것"이라는, 전지전능하신 여호와가 내 삶을 주관하시며 인도해 달라는 기독교적 고백과 달리 그리스 비극 속 인물들은 "내 삶은 나의 것"을 외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죄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로 정의하며 죄책감은 이러한 죄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내적 감정으로 이해한다. 영혼의 여정, 회개의 중요성, 그리고 최후 심판의 날에 자신의 죄에 대해 심판받는다는 개념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 비극에서는 인물들의 행동이 절대적인 선과 악의 기준에 따라 평가되지 않으며, 대신 상황의 맥락과 개인의 선택이 어떻게 그들의 운명을 좌우하는지에 더 큰 초점이 맞춰진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적 권위나 도덕적 절대성보다는 인간이 주어진 상황에서 내리는 결정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에 관심을 두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신의 질서에 도전할 때 발생하는 비극적 결과에 주목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성경 속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살펴보자.
창세기 3장에서 뱀(사탄)은 하와에게 다가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를 것을 부추긴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세기 3장 6절 상)라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의해 자아 중심적 선택을 하게 되었고, 이는 인간이 원죄를 짓게 되는 계기가 된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는 인간이 저지른 죄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이 된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이며, 그 결과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죄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관점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이 곧 죄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즉, 절대적인 선과 악의 기준에 따라 인간의 행동이 평가된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 이야기를 읽었다면, 그들은 하와의 자아 중심적 선택을 단순한 범죄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하와가 신의 질서에 도전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한 거만함으로 인해 신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하와의 행동은 신적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의 오만으로 여겨지며, 그 결과로 닥칠 신의 응징에 더 큰 초점을 두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서 기독교인은 인간의 선택을 죄로 해석하겠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이야기를 신에 대한 도전으로 보며, 인간의 오만이 어떻게 신의 질서에 반발하는 행동으로 해석될지,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신의 분노를 초래하게 될지에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서 등장인물들이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이유는 그들이 절대적인 악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에게 도전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이 신의 질서과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동을 할 때 그들이 직면하게 되는 필연적 결과이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며, 그 선택이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를 통해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도전, 개인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에 주목하며 운명과 자유 의지 사이의 갈등을 탐구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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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바탕으로, 다음 편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작품들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