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수아이 Jun 15. 2021

안녕

[185~186일차 끝]


전날에, 일을 하던 중 문득 옆에서 통역 일을 하는 베이사에게 물었다.


'베이사, 헤어질 때 터키말로 뭐라고 그래요?'


'헤어질 때? 교루슈루스?'


'아니, 그냥 헤어질 때 말고. 작별할 때.'


'그것도 쓰는데.. 음..'


뭐가 좋을까 고민하던 베이사는 잠깐의 고민 끝에 처음 듣는 생소한 터키어를 내게 알려줬다.


'켄디네 이이 박(kendine iyi bak - 너 자신을 잘 돌봐). 켄디네 이이 박이라고 해요.'


'켄디네 이이 박.'


나는 그 말을 깊게 외웠다.


마지막 출근날의 날씨는 화창하다. 마치 처음 이곳에 도착했던 그날처럼.


아무런 아쉬움이 남지 않을 정도로 맑은 날이어서, 그것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동안 많은 날씨들이 있었다. 태어나서 가장 많은 눈을 봤던 날도, 가장 센 비바람을 (공중 300미터에서)맞아본 날도, 모두 여기였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노을과 구름 한점 없이 펼쳐진 넓은 하늘. 그런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구름처럼 바다 건너 저편으로 둥실둥실 떠가던 캐리어와 케이블 선.


터키의 하늘은 하루하루 달랐고, 하나의 하늘이라도 더 눈에 담고 가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덧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지나고 나면 금방, 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또 그렇게 말해놓고 사실은 시간이 천천히 가길 기대했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이란 것은 점점 빨라지기만 하는 건가 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 마지막 날이 찾아왔고 나는 별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내일도 여전히 출근할 것만 같은 화창한 날. 군시절도 이렇게 빨리 갔었으면 얼마나 좋아.


가기 전에 터키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싶었다. 뭔가 일이 바쁘고 쑥스럽기도 해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결국 마지막 날까지 와버렸다. 최근 들어 날씨가 우중충해서 미리 날씨 좋은 날 사진을 찍어놓을걸, 하는 후회를 했었는데, 마지막 날 날씨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아침체조를 하고 일을 하러 흩어지려는 친구들을 급히 불러 모아서 사진을 찍는다. 정들었던 드라이브 윈치 사단. 모이고 보니 수가 제법 많다. 사진을 찍고 보니 누구 하나 해맑게 웃지 않는 사람들이 없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생겼었다니. 어딘지 뭉클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정들었던 친구들과 마지막 날이라니. 어쩌면 평생. 그들의 모습을 어디에 어떻게 담아놔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고민하는 사이 손을 흔들던 친구들은 각자의 일터로 흩어진다. 나는 G와 함께 컨트롤룸으로 들어간다. 그래, 마지막 날이라도 일은 해야지.



일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사람의 마음은 두둥실 떠도, 기계는 정말 기계처럼 한결같이 일한다.


'캐리어 속도 5로 출발.'

'캐리어 정지, 장력조정하고 가겠습니다.'

'캐리어 정지, 럭비공 체결 구간입니다.'

'캐리어 속도 1로 출발.'


어색하고 긴장됐던 무전이 이제는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올 정도로 입에 붙었다. 다행히 마지막까지 내 손으로 누군가를 해치지(?) 않고 끝났다. 내 몸도 무사하고. 그거면 된 거다. 비록 다리가 완성되는 모습을 보진 못하고 가지만, 언젠가 먼 훗날 한 번쯤은, 이 다리위로 차를 타고 지나가게 되지 않을까. 그때 옆에는 누가 있을까. 이봐, 이 다리 내가 만들었다고. 상상이 안 가지? 그래 지금의 나도 상상이 안 간다.


마지막까지 야근을 꽉꽉 채우며 일은 끝난다. 새로 온 알바생 두 사람에게 하루 만에 인수인계를 하면서 동시에 빡빡한 작업도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열심히 말을 하면서도 사실 하루 만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밖엔 없었다. 뭐 그래도 남은 사람들이 있어서 어떻게든 되겠지. 교대를 하러 야간조의 S형과 알바생 J와 O가 오고, 마치 전역식을 하듯 그들의 축하와 작별인사를 받는다. 알바생들 중 오늘 떠나는 것은 나 하나뿐이다. 일주일 뒤면 G가 떠날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한 달 정도 더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공항에서 만났던 8인의 알바생들. 처음엔 어색하고 서먹서먹했던 우리들도 시간이 지나며 우여곡절을 함께 겪었고 친해졌다. 처음에 근무지가 나뉘고 영영 못 보게 줄 알았던 친구들도 신기하게 이리저리 이동하며(주로 내가) 어떻게든 함께 일을 했다. Y와 U와 G와 J와 O와 H와 결국 같이 일하진 못 한 L까지. 머지않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겠지. 그때 만나면 다 같이 이태원에 가서 케밥이라도 먹으며 '이 맛이 아니야'하고 투덜거리며 웃지 않을까. 이리저리 다른 사람들의 부탁에 치이면서도 알바생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해주시던 S형과 터키 여자친구와 결혼을 준비 중인 G는 어쩌면 다시 못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 평생에 터키를 다시 한 번은 가게 되지 않을까. 그때라도 볼 수 있으면. 기약 없는 그날까지 터키에서 행복하게 잘 사시길.


고향 친구인 JB는 이제 절반 왔으니 고생 좀 하고.



교대를 마치고 퇴근하려다, 문득 생각이 나 일터로 다시 달려간다. 거기엔 아직 퇴근을 하지 못한 터키 친구들이 있다.


언젠가 일을 마친 후 회사 컨테이너 앞에서 퇴근하던 제밀 아저씨를 만났을 때, 헬멧을 벗고 땀에 젖어 피곤해 보이는 그가 활짝 웃으며 '바이~바이~'하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한 적이 있었다(종종 그랬다). 나는 그 '바이바이'를 꼭 간직하고 싶었다. 어딘지 장난기 많으면서도 아련한 그 목소리.


나는 핸드폰을 꺼내 그들의 작별 동영상을 촬영한다. 각자에게 인사를 하고, 그들도 작별 인사를 한다. 끌어안고 양쪽의 볼을 순차적으로 맞대는 작별 인사.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그 낯선 인사에, 이제 정말 그들을 떠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켄디네 이이 박.'


나는 열심히 기억했던 작별 인사를 건네본다.


'켄디네 이이 박, 수스쿤.'


'제밀 아저씨, 바이바이 해줘 바이바이.'


그러자 제밀아저씨는 그때의 그 목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을까 걱정했던 내 우려를 단숨에 날려버릴 정도로, 밝고, 활기차고, 아련한 그 목소리로 내게 외친다.


'바이~바이~. 수스쿤! 바이~바이!'


공사장의 우렁찬 기계소리와 함께, 내 핸드폰에 제밀 아저씨의 목소리가 담긴다.


이 파일은 내 평생의 보물이 될 것 같다.



사람과 이별했으니 동물들과도 이별할 차례다.


사람을 무서워하며 개집 안으로 깊이깊이 숨어 바들바들 떨던 뒤집개의 강아지들이, 이제는 사람을 보면 먼 곳에서 짧은 다리로 발발 뛰어와 궁둥이를 흔들며 신발을 물고 뒤집어지고 난리다. 공사장에는 이제 봄이 되어 새로운 세대가 또 자라날 것이다. 공사가 끝나면 이 동물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리게 될까.



몸이 녹아 바닥에 붙어버린 차우차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녀석은 너 하나뿐일 거다. 어쩐지 이녀석만큼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이렇게 바닥과 하나가 되어 차나칼레의 다리를 지키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내 마지막 근무는 끝이 난다.


오늘 떠나는 것은 나 혼자다. 지금도, 내일도 다른 모두에겐 언제나와 같은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바로 이 순간부터, 나는 거대하게 흘러가던 그들의 시간에서 홀로 빠져나와 나만의 시간을 만들며 걸어가야 한다. 나는 그들에게 어쩌면 그저 지나쳤던 한 사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별거 아니었던 그 자리는 금방 무언가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어야만, 나는 또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떠날 수 있을 테니.


그리고 다음 날.


더 이상 회사 사람이 아니라 민간인이 되어버린 나에게 랍세키의 풍경은 한가롭게 다가온다. 바쁘게 돌아가는 공사장의 숙소가 있는 마을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고 무얼 해도 좋은 한가로운 시골 마을이 되어 있다.


이제 다음날의 출근에 마음이 쫓겨 허겁지겁 마을과 식당을 둘러봐야 할 그 초조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몸과 마음이 붕 뜬 느낌. 아쉬우면서도 기분 좋은 느낌에 혼자 묘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 나는 이제 자유로구나.


회사에서는 고맙게도 오후 두 시에 나를 이스탄불로 데려다줄 밴을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나 하나를 위한 단독 밴이라니. 이렇게 사치스러울 때가. 덕분에 큰 걱정이 하나 줄었다. 나는 느긋하게 있다가, 두 시에 그냥 호텔 앞에 짐을 가지고 우두커니 서 있으면 된다. 그러면 편하고 쾌적하게 나는 이스탄불로 갈 수 있다.


마침 시간이 비는 알바생 친구들 몇 명과 정말 마지막 식사를 함께 한다. 그들은 떠나는 날 부러워하지만, 나는 이 맛있는 라흐마준을 조금 더 먹을 수 있는 그들이 지금만큼은 부럽다. 언젠가 케밥이 아니라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왁자지껄 떠들 날을, 지금은 기약하도록 하자.


식사를 마친 뒤 돌아와 방을 나름대로 깨끗이 치워두고 캐리어를 끌고 숙소 밖으로 나온다. 짐은 무겁고, 이제 등 뒤에 내가 있을 곳이란 건 없다. 내가 있을 곳은 오로지 앞일뿐이다.


한국에 가기 전 잠깐 터키를 여행하기 위해 비행기를 보름 정도 뒤로 미뤄놨다. 바깥 구경도 제대로 못 하고 일만 하며 오랫동안 참고 참았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터키의 금식절인 라마단 명절이 이미 시작되었고, 라마단을 맞아 코로나 대비 터키 전체 외출 금지령이 다시 시행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고 있다. 여러모로 여행하기에는 좋지 않은 상황. 식당은 열긴 하냐는 물음에, 터키 현지인들도 어떻게 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스탄불의 숙소에 갇혀서 마트 식품으로만 연명하며 보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 라는 생각이다. 그러면 미뤄왔던 글이라도 느긋하게 쓰지 뭐. 외국에서 호텔을 하나 잡아 느긋하게 글을 쓰는 것. 한 번쯤 꿈꿔오지 않았던가. 어떻게 보면 그것을 위해서 이렇게 몸을 던져 터키로 온 게 아닌가. 거창한 작업실. 그것도 좋지.


앞길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상황이, 한편으로는 두근거리기도 하다. 이것은 정말로, '여행'이 아니라 '모험'이다. 캐리어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두 시가 되자 약속대로 밴이 한 대 숙소 앞으로 온다. 마지막 마중을 나온 것은 U. 차문이 닫히고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흔든다. 나는 U에게, 정들었던 일디즈 호텔에게, 랍세키에게, 그리고 그 너머의 모든 것, 6개월간의 그 모든 것들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헤어질 때의 인사와, 무언가를 만날 때의 인사가 똑같다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를 만든다. 이제 나는 또 다른 모험 속으로 몸을 던질 것이다. 내 몸뚱이의 그림자가 좀 더 또렷해진 느낌이다. 타이어 소리를 내며 밴은 서서히 출발하고 나는 멀어지며 또 가까워진다.



안녕. 정말로, 안녕.







- '어느 소설적 화자의 터키 걷기'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후의 휴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