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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Dec 17. 2021

다섯째 날, 비 오는 날에는 토마토소스

이스탄불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슬슬 아마시아로 이동해야 하는 날이었지만 일기예보를 본 나는 조금 고민이 되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아마시아의 날씨가 맑아지는 날은 이틀 뒤. 오늘과 내일은 계속 흐리고 비가 내릴 예정이었다.


이스탄불의 칙칙한 분위기에 질려가는 마음을 아마시아의 산악 풍경이 위로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기대하고 갔다가 마주친 풍경이 비가 질척질척하게 내리는 스산한 산동네의 풍경이라면? 물론 하얀 구름이 바위산 허리에 걸리고, 비에 젖은 숲에서 신선한 냄새가 나는 그런 날이 좋을 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사진에서 잠깐 봤던 것처럼 쨍하고 맑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삼각형의 바위산을 보는 것이었다. 압도적인 맑음. 그것이 아마시아의 첫인상이기를 바랐다.


고민 끝에 나는 출발일을 하루 더 미루기로 했다. 실은 어딘가로 이동하기에 체력도 좀 떨어진 상태였다. 여행을 한다고 며칠 열심히 걸어 다닌 것 때문만이 아니라, 6개월 동안 공사장에서 일해오면서 누적된 무거운 피로가 서서히 밀려오는 것 같았다. 출발은 내일로 하기로 하고, 오늘은 먹고 싶은 걸 실컷 먹으면서 편안하게 쉬자. 그렇게 다짐하고 숙소를 나섰다. 부은 발이 좀 삐그덕거려서 나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했다. 오늘은 여행을 가는 게 아니야. 나들이라고.

제대로 비가 내린 후라 도로는 완전히 젖어 있었다. 이런 날에는 풍경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건물이나 도로도 특별해 보이지 않고 우중충한 구름 아래 하나로 뭉개져 보일 뿐이었다. 기껏 밖으로 나와 놓고는, 어디든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


이런 날 중요한 것은 양말이 젖지 않게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것이었다. 양말이 젖는 순간 기분도 질척거리게 될 거니까.

그렇게 '사뿐사뿐' 걸어 도착한 곳은 김밥천국처럼 가벼워 보이는 어느 케밥집.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근방에서 '이스켄데르'의 이름을 달고 있는 케밥집을 찾았다.


터키인에게 최고의 케밥이 '아다나 케밥'인 것처럼, 내게 최고의 케밥은 '이스켄데르 케밥'이었다. 이스켄데르 케밥은 세로로 세워 돌려 구운(한국에서 '케밥'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바로 그 기계) 케밥을 긁어낸 '되네르 케밥'의 고기를 잘게 자른 피데 빵과 함께 접시 위에 올려서, 토마토소스와 끓인 버터를 끼얹어 요구르트와 함께 먹는 케밥이다.


그냥 쉽게 줄여 말하자면, '토마토소스가 있는 케밥'.


공사장 일을 하러 터키에 와서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음식들을 먹으며 실망(예전에 여행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하던 차에, 한순간에 입맛을 살려줬던 것은 공사장 옆 동네인 겔리볼루의 이스켄데르 케밥이었다.


날씨 때문에 우울해진 기분을 상큼하게 살려줄 토마토소스를 기대하며, 나는 이스켄데르 케밥을 일단 시켰다. 그리고 잠시 더 고민하다가, 물을 가져오는 아저씨에게 토마토 파스타를 추가주문했다. 우울한 날은 새콤한 토마토로 박살 내버리겠다,라는 각오였다.

곧 나온 이스켄데르 케밥의 새빨간 토마토소스를 보자 나는 눈의 색감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입에는 침이 돌았다. 비 오는 날에는 역시 토마토소스.


「내가 불을 피우고 식사를 준비하겠어요.」


그는 이렇게만 말했다.


그는 구석에서 땔나무 한 아름을 안고 밖으로 나가 두 개의 바위 사이에다 나무를 교묘하게 쌓고는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오지 그릇을 그 위에 올리고 물을 부은 다음 양파, 토마토, 쌀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식탁에 상보를 깔고 보리 빵을 넙적넙적하게 썰어 놓은 다음 아나그노스티 영감이 우리가 도착한 날 보내 주었던 무늬 있는 잔에다 포도주를 그득그득 따라 놓았다.



                                                                              -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


생토마토는 여전히 꺼려 하는 내가 토마토소스만큼은 중독적으로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나서였던가. 토마토소스나 케첩이나 어릴 때부터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나 또한 그랬지만, 언젠가 조르바가 주인공을 위해 수프를 끓여주는 장면을 본 이후엔 토마토소스에 조금 더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가 올리브기름을 만나 지글지글 끓어서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뭉개진다. 그래도 살아남은 미세한 토마토의 입자 덕분에 소스는 걸쭉한 느낌으로 흘러내린다. 소스의 겉면에는 올리브기름에서 나온 것 같은 황금빛 윤기가 감돈다. 스푼 끝으로 살짝 떠서 입에 넣으면 틀림없이 시큼한 토마토 맛 뒤에 고소한 감칠맛이 따라올 것이다. 이런 소스와 함께 익히면, 어떤 내용물이든 맛있지 않을 수가 없다.


토마토소스에 들어간 야채를 먹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익은 토마토의 감칠맛 때문에 마치 고기를 먹는 듯한 착각이 드니까. 물론 토마토소스 아래 깔린 것이 진짜 고기라면 더할 나위 없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스켄데르의 이름을 달고 있어서 전문점인 줄 알고 찾아왔지만 캐주얼해 보이는 메뉴판에서부터 느껴지듯 좀 쉽고 가벼워 보이는 맛이었다. 마치 돈까스 전문점을 찾아갔다가 김밥천국 돈까스를 먹게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특히 고기가 좀 푸석푸석한 데다가 얇고 네모반듯 균일하게 잘려 있어서 영 재미가 없었다. 물론 가벼운 마음으로 먹어서 나름 즐기면서 먹을 수 있었지만.

이스켄데르 케밥을 먹다 보니 뭔가 부족한 게 느껴졌다. 전체적인 양도 아쉬웠지만 뭔가 결여된 것이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메뉴판을 뒤적이다가,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탄수화물이었다. 토마토소스와 어울리는 것은 역시 고기가 아니라 탄수화물이다. 나는 욕심을 내서 토마토 스파게티를 하나 더 시켰다.


제법 시간이 걸려 도착한 스파게티는 그야말로 급식에서 나올 것 같은 느낌의 나폴리탄 스파게티였다. 틀림없이 토마토소스가 모자라 보이는 밍밍한 느낌에, 그 빈자리를 강렬한 피망 맛이 채워서 면 한 가닥 한 가닥마다 피망의 존재감이 메아리치는 그런 맛의 스파게티.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던 것은 스파게티 면이었다. 비록 알덴테는 아니더라도 뭔가 퍼지지 않고 쫄깃하게 익어 있어서, 면을 씹는 맛으로 어쨌든 스파게티를 다 먹을 수 있었다.


순식간에 두 명 분의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나는 배가 무척 불렀음에도, 그것이 토마토소스로 채워진 배라고 생각하자 어쩐지 상큼한 포만감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비 오는 날에 짬뽕도, 튀김도, 라면도 없는 이곳에서 우울함을 달래기에 토마토소스는 훌륭한 선택이었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정처 없이 걸어 다니던 나는 묘한 분위기의 '계곡'에 도착했다. 사람이 없어 고요한 번화가였다. 모든 가게들은 불을 끄고 닫힌 상태였고, 지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텅 빈 이곳엔 뭔가 불쾌한 느낌의 인기척이 가득했다. 아무도 없지만 너무나 많은 것이 있다, 라는 감각.


나는 그게 무엇 때문인지 곧 알 수 있었다. 사방을 둘러싼 가게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네킹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은 옷, 특히 아동복들을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보였는데, 평소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마네킹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을 이곳이 코로나로 인해 텅 비어버리자, 마네킹들이 사람들 대신 기묘한 인기척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불쾌한 골짜기라고 해도 될 것 같은 묘한 감각 때문에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상한 감각의 일정 부분은 아마도 '공포'였는데, 나는 그 공포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나는 전설이다>라는 영화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좀비영화(뱀파이어였던가)라면서 좀비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데도, 오히려 그 때문에 길거리와 건물들 하나하나가 더욱 공포스러웠던 그 영화. 해가 서서히 질 때쯤에 도로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 있던 마네킹 하나가 주던 그 공포를 잊을 수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세상의 모두가 사라지고 나 혼자 남아 마네킹만이 즐비한 도시를 걸어 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염병이 돌아 모두가 사라진 도시를 걸어 다니는 한 생존자. 그런 건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는데, 최근의 현실은 정말로 그런 설정들이 판타지가 아니라 리얼리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만국 공통의 요리사 마네킹. 원조는 어디일까.

번화가를 빠져나와 해변에 가까운 곳에 들어서자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민가에 도달했다. 특유의 정겨운 집 냄새가 진하게 나는 거실에 오래된 브라운관 티비가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집들과, 해맑으면서도 조금은 못된 기질을 숨기지 않는 그런 아이들이 돌아다닐 것만 같은 곳. 오스만 시절에 지어졌을 폐가(거의 유적이라고 봐야 할 정도의)와 낡은 현대식 집이 공존하는 곳.


그곳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엄청나게 높은, '빈 벽'이었다.


그 벽은 작은 마당을 가진 2층짜리 가정집과 붙어 있었는데, 분명 그 마당보다도 훨씬 큰 면적을 자랑했다. 특이한 것은 이 광활한 벽이 창문도 배관도 없이 빈 도화지처럼 깨끗한 상태로 펼쳐져 있다는 것이었다.


문득 나는 그 커다란 벽을 누리고 살았을 그 집의 어떤 꼬맹이를 상상했다. 놀 수 있는 마당을 가진다는 건 좀 식상하다. 이 동네에 사는 어느 누구도 이 집의 꼬맹이처럼 넓은 벽을 가진 집에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상 속의 그 꼬맹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테니스 공을 가지고 벽에 던지는 놀이를 즐겨 했다. 그 벽은 공을 아무리 세게 던진다 해도 깨질 창문 같은 것 따위는 없었으며, 아무리 높게 던진다 해도 닿을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높고 넓었다. 아이는 점점 자라났다. 마침내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보다 키도 훨씬 커지고, 앙카라 같은 곳에서 좋은 직업을 가져서 비싼 차를 타고 고향인 이스탄불의 이 작은 2층 집으로 돌아왔다. 완벽한 성인이 된 아이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테니스 공을 들고 그 벽 앞에 섰다. 그 벽은 어린 자신에게 결코 넘지 못할, 그리고 어떤 짓을 해도 모든 걸 받아 줄 만큼 크고 웅장한 바다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이제 자신이 어릴적처럼 작지 않다는 걸 알았다. 몸집은 커졌고 눈의 높이가 달라졌다. 다 자란 자신에게 망망대해 같던 그 벽은 그저 어릴 적의 추억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했다.


실망할 것을 각오한 채로 벽과 마주한 그 아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크고 넓고 높은 벽이었다. 자신이 맨몸으로 아무리 뭔가를 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기분 좋게 비어 있는 거대한 벽.


나는 어쩐지 상상 속의 그 아이가 무척 부러워져서 그 집 앞에서 한참을 서서 그 벽을 바라보았다. 내가 거기에 살았다면 틀림없이 벽 중앙, 까마득히 높은 그곳에 농구 골대를 달랑 하나 달아 놓았을 것이다. 심심할 때마다 힘껏 농구공을 던지면, 일주일에,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공을 그곳에 넣을 수 있겠지.

어느 집 문 앞, 고양이 석상을 놓으면 좋을 것 같은 자리에 딱 앉아 있던, 살아 움직이는 고양이


민가와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던 나는 점심으로 먹었던 빨간 음식들의 포만감이 조금 가셔있다는 걸 알았다. 여행 중에 뭔가 입에 넣어야 할 때는 배가 고플 때가 아니라 배가 부르지 않을 때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향한 곳은 오늘도 바로 그 카이막 가게. 모든 것이 닫힌 이스탄불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호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먹고 싶어 할 바로 그 카이막을 내킬 때, 양껏 먹어치우는 것이다. 언제 한번 터키에 가서 저걸 먹어보나 하는, 소망으로만 존재하는 그 음식을, 마치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새우깡을 사듯이 간편하게.


가게에 들어가자 저번의 주인 할아버지는 없고 조금 더 젊은 남자가 가게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와 또래인 것 같은 남자 한 명이 가게 안의 탁자에 앉아 뭔가를 주문했다. 분명 저번에 왔을 때는 안에서 식사를 할 수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마도 단골이었을 그 남자는 예외겠지.


내 눈은 자연스럽게 그 남자가 지금 받은 음식으로 향했다. 그는 꿀에 절여놓은 케이크 같은 것을 주문했는데, 그걸 주기 전 카운터의 남자가 물었다. 카이막 올려 줄까? 그는 답했다. 물론이지. 그러자 꿀에 젖은 스펀지 같은 케이크 위에 하얀 카이막이 듬뿍 올라갔다.


그저 카이막과 에크멕 빵을 먹을 생각만 했던 나는 저런 호사스러운 비쥬얼에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혈관을 터뜨려버릴 것 같지만 분명 끔찍하게 맛있겠지. 그 메뉴는 뭐랄까, 현지인 동네 주민들이 심심할 때마다 들러 슬쩍 한 접시 먹을 것 같은 비밀(이라기엔 대놓고 카운터에 펼쳐져 있었지만) 단골 메뉴 같았다. 저런 것을 자기들끼리만 먹고 있었다니.


나는 그 남자가 다 먹고 자리를 비울 때까지 시간을 끌며 기다렸다가, 그가 나가자 똑같은 메뉴를 나도 저 자리에 앉아서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조금 고민하는 것 같이 보였던 그였지만 물론, 나 역시 그 자리에 앉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당에서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 코로나로 인한 일상 봉쇄가 진행 중인 지금의 터키에서는 쉽지 않은 호사였다.


꿀에 촉촉하게 젖은 푹신한 케이크를 한 아름 정도는 되는 커다란 덩어리에서 한 조각을 떼어낼 때, 그리고 그 위에 우유의 수분이 채 가시지 않은 농후한 카이막을 금속 나이프로 넉넉하게 떠서 발라낼 때, 그 끈적끈적하고 쫀득한 소리는 온몸의 털을 기분 좋게 곤두서게 만든다. 나는 마침내 내 앞에 도착한 쾌락의 한 접시에 몹시 행복해한다. 흐리고 습기 찬 날씨의 여행지에서 그런 것들은 흑백사진 속의 컬러사진처럼 생생하게 기억 속에 간직될 것이다.


비주얼을 보고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70% 정도의 만족감을 주는 케이크(촉촉하다기보단 축축했다)였지만, 단 것과 카이막과의 조합은 언제나 옳았다. 마지막 포크까지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는 달콤한 것은 분명 드물었다.

오늘의 이스탄불 나들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어떤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득 기시감이 강하게 들었다. 상가가 붙은 오래된 아파트 같아 보이는 그 건물은 꽤나 낡아서 벽에는 오래 묵은 그을음이 가득했고 아래쪽은 이미 떼어내버린 다른 건물들의 철거 자국이 그대로였다.


회색빛으로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지저분하고 별 볼 것 없는 그 건물의 풍경이 왜 내게 기시감을 불러일으킨 걸까. 그것은 대략 일곱 살을 전후로 한 어린 시절에 각인된 어떤 느낌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당시에 저런 풍경 앞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기시감은 복합적인 감각으로 다가왔다. 나는 테라조 바닥의 건물 내 복도 풍경과, 여름에도 서늘한 그곳의 공기, 그리고 차가운 돌벽과 돌바닥에서 나는 특유의 시원한 냄새를 머릿속으로 맡을 수 있었다. 그곳은 아무런 손님이 없는 시기에 혼자서 들렀던, 유행이 지나 썰렁해진 동네 과학관 건물의 느낌 같기도 했고, 오래된 카펫과 담금주 병과 진열장과 최신 오락기, 낯설면서 익숙한 밥 냄새가 나던 친구네 집 같기도, 먼저 나가 주차장으로 가버린 아버지를 허겁지겁 따라 나오며 헤매던 불 꺼진 공업 고등학교 체육관 부속 건물 같기도 했다.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그 수많은 시간들 사이에서 어떤 감각에 대한 기억이 도드라져 튀어나왔다. 그런 게 기시감이었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느낌이 하필 이스탄불의 낯선 골목길에서 느껴진 건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이유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날들도, 이렇게 흐리고 낡았던 거였겠지.

숙소 바로 근처의 골목까지 왔을 때 언제나 한적하던 그곳이 오늘따라 떠들썩한 것이 느껴졌다. 얼추 대여섯 명이 되는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무슨 게임을 하는 건지 깔깔거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규칙을 알 수는 없었다. 담벼락 근처에는 버려진 소파가 있어서 쉬는 건지 소외된 건지 모를 한 아이가 거기에 앉아 노는 아이들을 관망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노는 배경으로, 폐허가 펼쳐져 있었다. 건물이 있다가 부서진 자리에는 흠뻑 젖은 길닭(주인을 알 수 없는)들 몇이 먹이가 아닌 무언가를 찾는 듯이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그런 풍경들이 왠지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무엇이 다행일까.

그렇게 호텔에 도착해 고단한 몸을 침대에 누이고 달콤한 낮잠을 자려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눈이 말똥말똥해서 잠이 오질 않았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한가롭게 낮잠이라니. 생각해 보면 무척 사치스러운 일이었지만 사실 슬슬 이스탄불이 지겨워져가던 차였다. 푹 자고 나서 눈을 뜨고 나면 내일이 돼서 새로운 도시, 아마시아로 가슴 설레는 여행을 떠날 수 있으련만. 그런 생각에 또 잠이 안 오는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침대에서 맨정신으로 뒹굴거리고 있으려니 배부름이 슬쩍 줄어드는 게(결코 허기는 아닌) 느껴졌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호텔 밖으로 나왔다.


비가 오는 건 아니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흐렸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새빨간 토마토소스를 갈구하고 있었다. 이번의 식욕은 무척이나 구체적이었는데, 나는 바로 '펜네' 파스타를 먹고 싶었다. 면이 아니라 쫄깃쫄깃 미끌미끌한 삶은 밀가루의 질감이 잘 느껴지는 펜네가.


대학 1학년 시절 이탈리아 여행에서 나는 처음으로 스파게티가 아닌 '파스타'라는 단어를 펜네를 먹으면서 배웠고,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 음식 중 하나로 파스타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은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세상에서 파스타를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내게 펜네는 특별하다.


터키에서 '파스타'란 단어를 보고 가게에 들어가면 마주할 수 있는 건 '케이크'다. 덕분에 터키에서 파스타를 찾다가 몇 번이나 속았는지 모른다. 제대로 찾으려면 '마카르나'라는 단어를 찾아야 한다.


펜네는 내게 특별했기에, 나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맛있는 펜네 '마카르나'를 먹고 싶었지만 지금은 펜네는 고사하고 문을 연 마카르나 가게를 찾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숙소에서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본 결과, 펜네를 파는 가게를 찾아냈다. 걸어서도 충분히(충분히의 기준이 좀 넓긴 하지만)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에스머 셰프라는 카페였다.

쿵짝쿵짝거리는 현란한 음악이 나오는 카페는 생각보다 꽤나 캐쥬얼한 느낌이었다. 나는 오래 고심한 끝에(사실 토마토 소스가 들어간 펜네 메뉴는 하나뿐이었지만) 끝에 펑키한 스타일의 종업원에게 수줍게 주문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펜네 파스타가 나왔다. 가지와 채소가 들어간 토마토소스 펜네 파스타. 그 새빨간 자태를 마주하자 나는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을 느꼈다. 파스타가 취향보다 좀 많이 익었고 특별한 맛은 없었지만, 나는 이것이 내가 원하던 바로 그 맛이라는 걸 알았다. 잘 구워진 가지를 베어 물 때 잘 배어 있다가 육즙처럼 흐르는 고소한 기름. 살짝 뿌린 치즈가루가 살려주는 감칠맛 나는 첫맛. 포크로 두 개씩 세 개씩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펜네 파스타. 무척 뜨거웠던 그 파스타, 아니 마카르나는 식사를 마칠 때까지 충분히 따뜻했고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무거워진 몸과 가벼워진 기분으로 숙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저녁이 되어 조금 어두워진 하늘은 더 이상 '흐리게'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해가 졌기 때문에 어두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꽁초가 떠 있는 물을 마시는 검은 고양이

숙소에 도착한 나는 이곳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자신의 작은 호텔에 별로 자신이 없는 종업원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작은 공간.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내가 내일 이 호텔을 떠나도, 여전히 그는 이곳에 남아 시간이 날 때마다 몇 년을 매일 같이 보았던 그 풍경을 질리지도 않고 보겠지. 친한 동네 친구들과 물담배를 피우면서.

그런 생각을 하며 올라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그 종업원이 먼저 루프탑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친구 장사는 안 하는 걸까. 혼자서 풍경을 즐기며 이스탄불과 이별할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간단히 인사를 하고, 나는 그가 그곳에 없는 것처럼, 그리고 그는 그것에 맞춰주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옆 건물로 시선을 돌리자 묘한 것이 보였다. 옆 건물의 창문 옆벽에는 새장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엔 이스탄불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까마귀가 들어 있었다. 완전히 까맣지는 않고 몸통은 잿빛인 녀석들이었는데, 한국으로 치면 비둘기 같은 위상을 가진 새들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녀석은 누군가의 새장 속에 갇혀버리게 된 걸까. 녀석의 주변에선 녀석과 똑같이 생긴 까마귀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꼭 새장 안에 갇힌 자신들의 동료를 놀리는 것 같이.


새장 안의 그 까마귀는 그곳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횃대를 위아래로 옮겨 다니며 앉다가, 똥을 찍 싸다가, 물을 마시다가, 그러다가 까마귀는 창문과 가까운 벽을 쪼았다. 그 녀석이 쪼는 그 부분의 벽은 이미 어느 정도 돌이 깨져서 색이 달라 보였다. 분명 오랜 세월에 걸쳐 탈출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새를 특별하게 새장에 넣어 기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로수 위에, 쓰레기통 위에, 지붕 위에 있지 않고, 어떤 집의 창문 옆벽에 설치된 새장 속에 들어 있는 특별한 새에 대해서. 그건 뭔가 익숙한 행위였다. '언어'라고 할 수 있는 것. 그건 분명 감옥이었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 풀어놨던 짐들을 정리했다. 내일 아침에 바로 아마시아로 떠날 수 있도록. 어느새 권태로워진 이스탄불을 떠날 생각을 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사장 일을 끝내고 이스탄불을 향하는 밴을 탔을 땐 들지 않았던 느낌이었다. 이제 정말로 여행이 시작되는 걸까. 나는 내가 선택한 그 도시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구름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쨍하게 맑은 날, 눈으로 따라잡지 못할 해상도를 가진 바위산과 예쁜 건물들이 시원하게 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바로 그날을 위해 잠을 청했다.


감은 눈으로 흐린 이스탄불의 풍경들이 보였다. 젖은 닭과 물을 마시는 고양이. 맨발로 노는 아이들. 그리고 하늘처럼 넓었던 어느 집 마당의 커다란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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