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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un 24. 2019

[유월] 나의 필름카메라, 야시카 t3

카메라를 모으는 취미는 없다. 돈 없는 학생일뿐더러, 진득하게 하나에만 몰두하는 성격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미는 장비빨'이란 말을 맹신하는 성격이라 실력에 비해 자꾸만 장비만 늘어가고 있다. 고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몇 십 년의 손길과 기술이 담긴, 대대로 내려오는 그들만의 연장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에겐 조금씩 건드려본 4대의 카메라가 있다. 정확한 용도들도 정해져 있지 않고, 때에 따라 조금 더 손길이 가는 아이와 조금은 들고 나오기 망설여지는 아이 정도만 있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첫 번째로 주로 나의 영상들(뮤직비디오라든지, 웹 예능이라든지 보통 동아리에서 작업한)을 담당하는 dslr이 한 대 있다. 가장 비싼 아이고, 가장 질 좋은 사진을 보장하는 아이지만 왠지 무거운 몸체와 들고 있으면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손길이 잘 안 가는 아이기도 하다. 둘째로는 나의 첫 카메라인 미러리스가 있다. 고등학교 때 아빠가 사준 이 카메라는 20살 유럽여행에서 가장 빛을 발하기도 했다.  세번째로는 올해 초, LA를 여행하면서 작은 동네의 플리마켓에서 사 온, 모델명도 모르고 누군가의 손때가 덕지덕지 탄 수동 필름카메라가 있다. 계란에 바위치기로 시작하는 나의 다른 취미들과 다르게 꽤나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해 아직은 책장에 소중히 모셔져 있다. 마지막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는 행위에 지쳐갈 무렵 아는 오빠의 추천으로 중고나라에서 주문한 지금의 필름카메라 야시카 t3(모델명)이 있다.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는 나의 거래자를 철석같이 믿고 주문했다가, 한 달 동안 오지 않는 연락에 맘을 졸이기도 했다(사실 거의 울 뻔했다). 그래도 안전히 우리 집에 도착해 요즘 나의 사랑을 가장 듬뿍 받고 있기도 하다.

이 글은 4개의 카메라 중, 요즘 들어 가장 애정이 가는 나의 첫 필름 카메라 야시카 T3에 관한 글이다. 아날로그 감성, 뉴레트로가 유행하면서 우리 나라에 다시금 필름카메라 붐이 불기 시작했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초보가 찍어도 작품이 되는 그런 카메라들, 그리고 그 성능을 거의 따라 잡고 있는 폰 카메라들이 있지만 왠지 모르게 사람들의 '갬성'을 자극하는 필름의 질감들, 그리고 특유의 편안함이 원인일 것 같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에 비해 압도적인 불편함과 취미의 유지 비용은 또 필름카메라 진입의 장벽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나와 취미를 함께하는 사람이 조금 더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나의 개인적인 필름카메라 입문기를 조심히 적어보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며 항상 왠지 '연인'같은 나의 야시카 T3의 이야기를 적어보겠다.




첫 만남


한창 인스타그램에서 필름사진들을 보며 필름카메라 구입을 망설이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친한 오빠의 필름사진들을 보게되었는데, 왠지 정말로 필름카메라를 사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필름카메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지금도 모르지만) 다짜고짜 어떤 기종을 쓰냐고 물어봤던 것 같다. 그때 그 오빠의 카메라가 '야시카 T3'. 지금 나의 필름카메라 기종이기도 하다. 사실 다른 어떤 기종도 살펴보지 않았다. 이 카메라에 대해 알고 있던 건 자동 카메라고, 단렌즈라는 것 정도. 그래도 이렇게 빨리 구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좋아하는 사진가인 라이언 맥긴리가 쓰던 카메라가 '야시카 T4'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야시카T3는 그 하위 기종), 또 그저 필름카메라면 상관 없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결정 후에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중고나라에 들어가 '야시카T3' 검색어를 활성시켜 놓고, 괜찮은 매물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바로 구매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위기가 있긴 했지만, 안전하게 그는 우리집에 도착했다.

*자동카메라: 조리개 값, 셔터스피드, ISO와 같은 설정이 자동. 그냥 셔터만 누르면 찍히는 카메라.

*단렌즈: 사물이나 풍경을 확대하거나 축소해서 찍을 수 없음. 발로 왔다갔다 하면서 조절해야하는 렌즈.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카메라를 연인에 비유해보자면 한 눈에 꽂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체 시작한 사랑인 것 같다. 나는 그래도 나름 디지털 카메라를 다루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DSLR이나 미러리스를 구매할 땐 이것저것 따지게 되고  새로 나온 제품과 나의 제품을 비교하며 기기를 변경할까, 팔까 생각하면서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필름카메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짜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따질 생각없이 일단 만나 서서히 스며가길 원했다. 그래서 가끔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도, 그래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의 야시카를 누군가에게 넘겨주거나 아니면 새 아이를 들여올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아이를 보고 있자면 마치 스무살에 처음 만난 나의 연인이 생각난다.


찍기
항상 마음대로 찍히지는 않는 사진들

필름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에 비해 검색해봐도 많은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필름카메라와 함께 동봉되어있던 설명서는 온통 읽을 수 없는 일본어뿐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의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거칠게 그의 몸통을 열고 알수 없는 방법으로 필름을 우겨 넣었다. 그랬더니 당연히 결과는? 와장창. 셔터를 누르자마자 거친 소음을 내며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나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다행히도 내가 필름을 넣는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해 실수로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한달을 기다려 얻은 필름카메라가 한 순간에 운명을 달리할까봐 너무 겁이 났다. 


상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솔직히 말하면 알아가려는 노력없이 행했던 많은 실수들이 있다. 지금까지 나를 지나온 인연들 중 다행히 계속된 인연도 있지만, 이렇게 멀어진 인연들도 있다. 상대를 알지 못할 수록 더욱더 조심히, 세심하게 다루었어야 하는데 후회가 남는 지난 순간을 떠올리며 처음 나에게 필름카메라를 소개한 오빠에게 연락을 했다. 알려준 방법에 따라 조심스럽게 필름을 넣고 한 장씩 사진을 찍어보았다. 지잉-찍 하는 소리와 함께 손 끝에 감기는 필름이 돌아가는 진동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를 조금 알았다고 해서 그가 내 마음대로 움직일 것이라 생각한 건 큰 오산이었다.

첫 롤의, 어리둥절하게도 망한 사진들.

나의 첫 롤에서 그 때 느꼈던 어리둥절함을 엿볼 수 있다. 카메라를 들이밀고 셔터를 누르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주 단단히 그를 오해한 것이었다. 빛의 양과 방향, 사물의 거리, 뷰파인더와 실제 화각의 차이같은, 고려해야할 많은 요소들이 있었다. 한 롤씩 한 롤씩 나를 지나쳐가며 나는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첫 롤보다는 조금 더 나의 마음과 비슷한 사진들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왜 이런 사진이 나왔나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사진들이 있지만, 항상 나의 예상을 빗나가는, 또 다시 나를 공부하게 만드는 그는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필름카메라만이 주는 완벽하지 않음에 대한 편안함. 그 편안함에 매료되어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찍자마자 바로 결과물을 확일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필름 카메라는 '좋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단 찍힌 사진은 내가 36장의 사진을 찍어 필름을 인화하기 전까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니 내가 남기는 이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다. 나의 사진 실력과, 이 순간을 기막히게 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부담이 없다고 해서 그만큼 결과물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내 휴대폰엔 몇만장의 사진이 있지만 그 중 대부분은 쉬이 찍히고, 나의 기억에서 잊혀진 것들이다. 하지만 36장의 제한된 필름 안에서 나는 셔터를 누르기 전, 내 앞에 서있는 사람에 대해 한 번 생각하고 그 뒤의 배경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하고, 지금 이 순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흐려진 그 때의 기억들은 필름을 현상하면 또 새로운 느낌으로, 마치 다른 사람이 찍어준 사진인 양 나의 마음에 다가온다. 한번쯤 경험해본 사람들은 인화된 사진에서 발견하는 익숙한 낯설음에 계속 계속 필름을 사고, 찍고, 인화하고, 이 귀찮은 과정을 견뎌내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를 잘 알것이다.

초점이 나가도 괜찮아


결과물
첫번째 인화소
두번째 인화소. 첫번째 인화소보다 밝은 느낌의.

필름 카메라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설렘'이다. 연인에 비유하자면 따뜻하고 다정해 편안하지만, 언제나 설레는 연인이다. 필름의 따뜻한 색감과 질감은 어딘지 과거에 온 것처럼 편안하지만 반대로 그 결과물을 얻기 전까지의 과정은 설렘의 연속이다. 편안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필름 사진의 결과는 많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름 카메라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은 종종 필름에 따라, 인화소에 따라 사진의 결과가 많이 달라지냐고 묻곤 하는데 대답은 완전 YES다. 사용하는 필름에 따라, 그리고 인화소에 따라 그 결과는 천지차이다. 따라서 한 필름을 가지고 여러 인화소에 맡겨보며 자신만의 인화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과 맞는 필름, 자신과 맞는 인화소를 찾고 난다면 조금은 더 그 결과를 예측하긴 쉽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필름이 가지는 우연성과 설렘은 여전할 것이다.

Agfa vista 200 / Fujicolor c200

우선 내가 주로 쓰는 필름은 Agfa vista 200, 400이나 Fujicolor c200이다. 뒤에 숫자가 높을 수록 빛 감도가 높은 필름이다. 쉽게 말하자면 더 밝은 사진을 얻을 수 있고, 필름만의 자글자글한 노이즈를 더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비싸기도 하다. 또한 필름 겉면을 보면 그 필름이 잘 표현해낼 수 있고, 주력하는 색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그파의 경우에는 빨갛고 노란 색감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고, 후지의 경우는 초록의 색감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경우에 따라 필름을 잘 사용한다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을 조금 더 강조해 표현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엔 가을 경복궁에서는 아그파를, 한 여름 초록의 대만에서는 후지 필름을 사용하였다.


다음은 인화소다. 인화소에 따라 필름의 감성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그 인화소가 사용하는 현상액, 그리고 후 보정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화소에 필름을 맡기면 인화 후 한 달 정도의 기간까지는 필름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으므로, 찾아와서 여러 인화소에 맡겨보는 것이 나에게 딱 맞는 인화소를 찾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전국에 인화소가 많지 않으므로 미리 검색해보고 유명한 인화소들을 찾아가는 것도 좋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필름의 결과물을 얻는 과정은 정말로 귀찮다. 하지만 이를 다 버텨내게 해주는 힘은 아득한 지난 추억을 향한 그리움과 설렘, 기대감이다. 이미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며 또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필름카메라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다. 더이상 잘 기억나지 않는 지난 장면을 예측하고 기대하는 것, 그리고 다시금 새로운 시선으로, 덧입혀진 필름의 특유의 색감으로 그 때를 떠올릴 수 있다는 건 나로 하여금 귀찮음을 모두 감수하게 한다. 


필름을 사고, 36장의 필름을 찍고, 버스를 타고 인화소에 가서 필름을 맡기고, 또 며칠을 기다리고, 사진이 도착한 메일창을 열어보는 그 순간까지의 모든 과정이 '사진 찍기'의 과정이다. 그 순간 '찍기'와 결과에만 집중하는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그 사진을 만드는 모든 순간과 그때의 감정 그리고 그 이후의 기대감까지 모두 사진 찍기의 과정이자 결과물이 된다. 이는 막상 사진이 인화되어서 나의 예상과 다른 결과물이 나오더라도 크게 상관하지 않거나, 실망하지 않는 이유이다. 필름 사진을 찍을 때 만큼은 나의 사진 실력에 대한 한탄, 생각보다 못나게 나온 나의 얼굴, 완벽히 지금의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해 놓아야 한다는 강박 등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오로지 '사진'이라는 나의 취미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앞서 비유한 것들도 있지만, 필름 사진은 정말로 연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 잘 모르지만 왠지 모르는 끌림에 의해 관계를 맺게 되고, 또 이제는 다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나의 예상을 빗나가고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온통 귀찮은 과정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는 수많은 설렘과 결과물에서 느껴지는 추억의 새로운 모양들이 이를 이겨내도록 해준다. 또한 점점 시간이 지나며 맞춰가고 익숙해져가며 서로를 더 이해하고 더 아름다운 장면들을 만들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내 야시카t3를 보고있자면 스무살에 만난 연인이 생각난다. 지금도 그는 나의 주 모델이기도 한데, 책장에 놓여진 이 까맣고 투박한 카메라를 볼 때마다 그가 생각나 더욱 손길이 가고 애틋해진다. 가끔은 질리고, 그래서 다른 카메라에 눈이 갈때도 있고 이미 다 찍어버린 필름들을 귀찮음에 책장에 쳐박아 두기도 하지만 언제든지 날이 예쁘고 기분이 좋은 날엔 그것들을 가방에 소중히 챙긴다. 그리고는 상쾌한 바람과 오후의 햇빛과 함께 설렘을 가득 안고 인화소로 가는 버스를 탄다. 그와의 지난 추억들을 생각하며, 카메라가 담아주었을 그때의 우리들을 감히 예측해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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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롤의 필름을 남겨두고,

유월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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