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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ul 28. 2019

[서룩] 보잘것없이 고요하자, 에드먼튼의 캠퍼스에서

앞서


 타지에 있는 걸 그렇게도 티 내고 싶은 건지, 어떻게든 어물쩡 넘어가려는 건지, 지난 늦여름에서 계절이 겨우 한 뼘 반 정도 변했는데 벌써 세 번째 '가담'이다. 그리고 쉼표를 찍었던 강릉, 그림자가 되었던 밴쿠버에 이어 이제 막 쓰기 시작한 오늘의 에드먼튼까지, 나의 '가담'들은 더없이 나의 살이 연한 부분들을 건드린다. 보담, 듣담, 읽담은 '내가 소화한 작품들'을 나와 엮어 말하지만, 가담은 유일하게, 특정 공간에 서 있는 '나'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가담'은 벌거벗은 기분이다. 그게 꽤나 초라하고.

  어제는 캐나다에서 보낸 날들과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남은 날들의 수가 같은 날이었다. 그 말은 에드먼튼의 학교 캠퍼스에서 보낸 날들이 보낼 날들을 넘어섰다는 얘기고, 아쉬움도 기대감도 아닌 애매한 감정을 내내 느꼈다. 어제는, 누군가로부터 내가 지내는 모습을 보고 여기로 교환학생을 오는 걸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날이었다.
 또 어제는, 내 방만큼이나 익숙해진 친구의 방에서, 스스로가 깜짝 놀랄 만큼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새벽 네 시 여기에 와서 뭘 얻어가는 것 같아, 뭘 배우고 가는 것 같아 따위의 대화를 하다가 곯아떨어진 날이었다.
  앞으로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한국에 돌아가기까지 가담 - 더군다나 비슷한 느낌의 것들 - 은 자제해야지 싶었는데! 괜시리 민망함에 서두가 길다.
  그래도 부디, 여러분! 얘 또 징징대네 싶어도! 나의 가담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나만큼 나를 동정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초라한 나'를 내보이는 가담만큼 조심스레 쓰는 글들이 또 없기 때문이다. 


보잘것 없이


가을의 캠퍼스들


 학교 생활에 적응하면서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옷차림이다. 아무도 서로에게 신경쓰지 않고, 그게 당연하다. 가끔 몇몇 친구들과 페이스톡을 하면 자다가 일어났냐는 반응도 있을 정도로 요즘 나의 데일리 룩은 위아래 똑같은 추리닝이나 레깅스, 일어나서 세수도 겨우 한 얼굴이다. 한국에서 하고 다니던 모습에 비하면 볼품없어 보이겠지만 마냥 편하고 좋을 뿐.
  나를 보잘것없게 만든 것은 너어무 편해진 외면이 아니라, 중요한 건 외면이 아니라는 사실 자체에 있다. 정말로 공부가 너무나 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 들뜬 마음으로 달갑게 공부한다는 학교 자체의 분위기와, 그냥, 그래서 빛나 보이는 사람들. 뒤돌아볼 새 없이 하루를 완성해내기 바빴던 내가 놓쳤던 수많은 것들이 이제서야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시간이 남아돌아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고, 들여다볼 수록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더불어서 나만 멈춰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럴 걸 알고, 이럴 작정으로 온 교환학생인데도, 한국의 속도에 맞춰진 내 조바심이 갈 곳 없이 왕왕거렸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약간의 좌절과 그걸 채우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합심해서 나를 내리눌렀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것도 안 봤다. 그러고 있는 모습조차도 우습고 볼품없었다.
  어느 오후는 하늘이 높았고 햇살이 좋았다. 높은 건물 하나 없이, 시야에 하늘이 엄청나게 '많이' 담기는 걸 창가에 앉아서 내내 바라봤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바쁘게 지나갔고, 나는 간만에 쓰는 문장들을 낯설어하며 담쟁이 글을 썼다. 평소의 나의 글투와 다른 느낌이라는 피드백을 받자 지금의 나를 들킨 기분이었다.
  어느 아침은 눈이 내렸고 조용했다. 친구네 방에서 밤을 새고 기숙사로 돌아가던 중, 혼자 묵묵히 눈길을 걷던 그 5분 남짓에서 고등학교 시절 등굣길에서 나던 이슬 냄새 산 냄새가 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얇게 깔린 눈 위에 발자국들이 텅 비었고 나는 작았다. 


고요하자


    그럴 수록,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던 시간들이었다면 얼마나 귀중하겠어, 하고,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앞으로 살면서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나를 계속 들여다보고 나 하나 고민하는 데 하루를 전부 쏟는 날들이 다시 있을까, 하면서. 이런 시간들을 보낼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자, 하면서.
  지난 주말 캠퍼스 근처의 공원에 별을 보러 갔을 때 살면서 처음으로 별똥별이 하늘을 가르는 걸 목격했다. 살면서 본 북두칠성 중 가장 큰 북두칠성과 하늘을 촘촘히 메운 별들 사이에서, 몬트리올의 성당에서 빌었던 것과 똑같은 소원을 빌었다. 다만 사랑하게 하시고, 고요하게 해 주세요.
  결국 결론을 내린다. 나는 조용하고 넓은 에드먼튼을 사랑한다. 햇살이 따스운데 눈도 엄청 오는 곳, 11월이 되자 오후 5시에 해가 져 버리는 곳. 터무니 없이 넓어서 다른 지역으로 가려면 비행기를 무조건 타야하는 곳. 내가 나의 보잘것없음을 마주하고 울고 위로하고 웃는 것을 반복할 수 있는 곳. 나는 여기 참 잘 왔다.



에드먼튼의 캠퍼스에서


  한국보다 15시간이 느린 여기, 글을 쓰고 있는 날짜는 11월 6일이다. 담쟁이의 첫 소개한담이 12월 6일에 올라왔으니 우리는 다음 달이면 1년을 맞는다. 야심차게 시작해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이런저런 날들에 치여 성가시게 느껴질 때도 종종 생기곤 했다. 가끔은 좋아하는 이 마음을 어떻게 글로 풀어쓰나 했고, 가끔은 좋아하는 게 더 이상 없는데 어떡하나 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 이런데, 왜 다들 멋들어진 주제로 재깍재깍 글을 쓰는 거야, 하면서 담쟁이들의 글들을 괜히 피하기도 했다.
  그래도 잘 했다 싶다, 해서 다행이다 싶다. 그걸 다른 곳도 아닌 캐나다 알버타 주의 에드먼튼에서 가장 절절히 느끼고 있다. 방금 이 문단의 두 번째 문장을 쓰면서, 우리는, 이라는 단어 하나에 부끄러운 감상에 빠질 만큼.

  이 글은 일종의 고백이다.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인지 깨닫게 하는 이 공간을 사실은 사랑하고 있다고.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지만, 그만큼 소중한 마음들을 상기시켜주는 이 공간을.

 결국 인정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떠날 날짜는 정해져 있으니까 남은 날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수밖에. 최선을 다해 보잘것없고 최선을 다해 고요할 수밖에. 다시 한국 땅을 밟을 때 후회 한 조각 없도록, 지난 반 학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마음껏 불안해하고, 마음껏 나를 마주할 예정이다. 내가 사랑하고 다시 오기 힘든 공간, 에드먼튼의 캠퍼스에서.

(담쟁이에 대한 애정을 끼워팔기한 게 맞다. 의도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서룩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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