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시간을 날아 일루리사트까지 온 것은 좋았지만 유념해야 할 부분은 역시 겨울은 어딜 가나 비수기라는 점이었다. 그린란드 이미지를 검색하면 꼭 나오는 빙하 사이를 누비는 카누 체험, 빙하 위를 누비는 비행기 체험 등 정작 하고 싶었던 것들은 여름에만 할 수 있었다. (왜 겨울에 갔을까ㅋㅋ 그래도 오로라는 겨울에만 볼 수 있으니까!) 카누는 그렇다 치더라도 빙하 위 비행체험은 UNESCO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빙하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기에 기대를 많이 했건만 이를 진행하는 여행사가 겨울에 문을 닫아 허탈감이 컸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가능한 투어를 알아보기 위해 또 다른 그린란드 대표 투어 사인 'world of greenland'를 방문했다.
들어가자마자 벽에 보이는 해당 주의 스케줄. 한눈에 볼 수 있게 투어들이 촤르륵 정리되어 있었다. 인터넷에서도 예약을 할 수 있지만 현장과 시간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기에 현장에서 직접 정보를 얻는 것이 더 확실했다. 이 맘 때 가능했던 활동들은 개썰매, 오로라 투어, 빙하 보트 투어, 스노 모빌, 얼음낚시, 도시 투어, 문화체험 등이었다. 그중 Northern light Safari와 Iceberg Sightseeing 두 개를 선택하여 진행을 하였고 빙하투어가 먼저 진행되었다.
빙하투어 당일, 여행사에서 집합 후 차를 타고 5분 거리에 있는 항구에 도착하였다. 배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2층 크기의 배였는데 탑승 후 걱정거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먼저 2층에서 1층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했는데 갑판 위가 얼어서 엄청나게 미끄러웠다. 난간이 있긴 했지만 넘어지면 그대로 미끄러져 바닷속으로 입수가 가능한, 그야말로 물아일체를 이룰 수 있던 곳이었다. 사다리쪽으로 겨우 움직여 조심조심 내려가다 앞선 친구의 머리를 밟는 실수도 잠깐 하였지만 너그러이 용서를 받았다. 배 안에서 간단한 안전교육을 받았는데 역시 추위의 나라이다 보니 구명조끼가 아닌 몸 전체로 입는 점프슈트 구명복 사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배가 출발한 후 제공되는 따뜻한 커피와 차를 마시며 빙하들 사이로 향했다.
출발 후 타임랩스 영상을 위해 고프로를 설치했는데 평소에도 한 시간도 잘 못 버티는 배터리가 추위를 만나니 금방 죽어버렸다. 너무 추워.
그 어떠한 표류물도 없었던 출발지점과 달리 빙하들과 가까워질수록 배가 빙하조각, 얼음들을 깨고 나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마주한 엄청난 크기의 빙하들
생각보다 더 멀리 깊숙한 곳까지 배가 들어갈 수 있었는데 가이드에 의하면 예전에는 배로 떠있는 이곳까지 개썰매로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점점 썰매로 갈 수 있는 곳이 적어지니 주민들은 또 다른 생존수단으로 배들을 구입하기 시작했고 그 많던 썰매견들은 거의 무직 상태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여행 중 묶여있는 썰매견들을 볼 수 있었는데 예전 같으면 바쁘게 달렸을 친구들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했다. 사실 동물학대에 일조하는 기분이라 개썰매 투어는 선택하지 않았는데 또 한편으로는 차라리 달릴 수 있는 상황이 더 나은 건가..?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찌 됐던 지구온난화로 인해 삶이 억지로 바뀌어버린 이들의 모습을 보니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날아와 지구온난화에 일조한 나 또한 숙연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빙하들을 느끼다 볼과 귀를 쓰리는 칼바람에 배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근데 배 안 뷰도 꽤 좋았다. 미리 알았다면 밖에서 청승맞게 콧물 안 흘리고 있었을 텐데. 배 안에서도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빙하를 즐길 수 있어서 저절로 부르주아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제대로 빙하체험을 끝낸 후 숙소로 돌아와 얼큰하게 라면 한 사발 해주었다는 k-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