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경험
보시다시피 저는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은 못됩니다. 어쩌다 가끔씩 눈팅하러 들어오는 브런치 어플에는 제 글을 기다린다는 알림만 가득 차 있죠. 코로나가 시작된 후 좋아하던 여행도 못 가고 시작한 사업도 부진해서 (아직도 자리잡지 못했지만…) 매우 답답했어요. 다들 그러셨겠지만 저 또한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마땅한 방법은 찾지 못하고, 떠나고 싶은 욕구를 조금이나마 풀고자 그동안 속으로만 간직해왔던 여행일기를 브런치에 적어두었습니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운이 좋게도 잡지사 에디터님으로부터 제의를 받아 제 사진과 글이 작게나마 실리게 되었습니다.
잡지에 실린 나의 사진과 글
살면서 이런 경험을 언제 또 해볼 수가 있을까요. 배송된 잡지를 펼쳐 제 사진과 글을 봤을 때는 정말로 벅찼습니다. 이 잡지를 읽는, 저와는 접점이 없을 사람들이 내 작품을 봐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답니다. 사실 근데 100% 만족했다고는 못하겠더라고요. 아무래도 여행을 부추기는(?) 취지의 내용일 수밖에 없다 보니 제가 원하던 방향으로 글이 작성되진 못했습니다. 당연히 검수도 받고 나니 제 글에서 제 글 냄새가 안 났습니다. 내가 썼는데 내 글이 아니라니, 좀 기분이 오묘했어요. 그러나 첫 술부터 배부를 순 없다고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귀찮아도 내가 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여기에 제가 원래 작성했던 원고를 공유하려고 해요. 저는 이 원고를 보면서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위로를 해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뭐 그다지 멋있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제 글이 다시 일어나서 걸을 수 있게 하는 지지대가 되면 좋겠어요.
———————————
특별한 곳을 간다고 해서 내가 특별해지진 않았다.
하지만 창문 밖 풍경이 바뀌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조금 달라져있었다.
북극을 가는 데에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영화 ‘월터미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이 그린란드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였기에 왜인지 그곳에 가면 나에게도 휘황찬란한 일이 펼쳐질 것 같았다. 떠날 결심을 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20시간 만에 그린란드 대륙에 닿을 수 있었다. 그린란드의 첫인상은 겨울 그 자체였다. 코 털까지 뾰족한 크리스털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극심한 추위 때문에 숨 쉬는 행위조차도 걸음마를 배우는 신생아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모든 것이 새로웠던 나의 그린란드 여행은 시작되었다.
하루는 빙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트래킹 루트를 걷고 있었다. 전 날 눈이 많이 온 탓인지 길이 없어져 어디를 밟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어떤 이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차근차근 목적지로 향했지만 점점 자국들은 희미해졌고 결국 내가 길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발 딛는 대로 나아갔지만 발은 푹푹 빠지고 일부 구간에서는 늪에 빠진 것 마냥 불쌍하게 기어 나오기도 했다. 제대로 된 길이 아니었기에 불규칙해진 호흡을 고르려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본 순간, 여행객으로 보이는 또 다른 일행이 내가 밟아온 그 말도 안 되는 길을 힘겹게 따라오고 있던 것이 보였다. 본의 아니게 베테랑처럼 과감하게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들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이 얼마나 어이없고 민망한 상황이었는지 어색한 웃음으로 그들을 맞이한 뒤 길을 비켜 그들을 먼저 보내주었다. 황당한 해프닝에 속으로 웃으며 머릿속 잡념이 사라질 때까지 걷던 중 문득 내가 처음 따라갔던 발자국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아, 나 또한 길 잃은 초심자의 흔적을 따라왔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단지 먼저 출발했다는 이유로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뒤를 의심 없이 밟았다는 사실에 내 엉성한 길을 따라온 일행들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했고 한 편으론 분하기도 하였다. 만약 내 목표가 확실하다면 눈 속에 파묻히고 네 발로 기어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불확실한 길 말고, 나만의 길을 걷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깨달음을 얻으며 마주한 그린란드의 빙산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따스한 눈물 한 방울 정도는 내놓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단순히 멋진 풍경을 보고 싶어서 온 그린란드였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내 인생의 자세를 바꾸게 할 순간까지 이끌어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동안 주위사람들 혹은 선배들의 조언을 따르며 나의 발걸음을 온전히 새기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내놓는 걱정 어린 시선에 고민하고 주저했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이제는 그들의 길이 아닌 나만 길을 걷고 싶었다. 이러한 결심을 축하해주듯 내가 마주한 빙산 또한 파랗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린란드를 다녀온 후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나는 특별해지지 않았고 휘황찬란한 일도 펼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바뀐 창 밖의 풍경이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끈 덕분에 그곳이 아니었다면 느낄 수 없고 배울 수 없던 고유한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어디로 떠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떠나온 그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