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의심증상으로 어제부터 병원을 갈 수 있는 월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린 사람, 아침부터 이사 준비로 집안 온갖 잡다구리를 당근 나눔 후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께 발진 부위를 보여드리자마
1초의 말성임도 없이 “대상포진입니다.” 진단을 내리셨다. 그 후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면역력이 약해졌다, 스트레스 관리를 해야 한다, 적당한 수면이 필요하다.’
알고는 있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해결책을 주셨다.
그러면서 하신 말,
“너무 열심히 살지 마시고요”
‘제가요…?’
차마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속에서 곱씹은 생각이었다. 다들 치열하고 경쟁력 있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한참이나 뒤떨어진 나. 나이는 들어가고 친구들과의 격차도 느껴지면서 어떻게든 사람구실하려고 부족하지만 노력하고 있었다. 우울함을 이어가는 안타까운 infp의 습성 때문인지 생각만 가득 차서 창피하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스스로도 열심히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느끼는 찰나에 대상포진이라니. 참으로 인정할 수 없는 병이었다. 한참을 달려도 모자를 시기에 열심히 살지 말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돌이켜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외에도 추가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건강하자고 운동은 힘들지만 나갔고, 마지막으로 이사의 콜라보가 겹쳐버리니 몸이 버텨주지 못한 것 같다. 내 그릇이 진작에 넘쳐버린 느낌. 세상은 멘털, 체력을 강화하여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만 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오히려 아팠다. 맨 처음은 내 주변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 중학생 때 겪은 은따, 왕따인가(?)로 시작된 원형탈모와 또 대학 졸업 이후 생긴 두 번째 원형탈모, 코로나 때 생긴 위장병까지! 스트레스받을 일이 생기면 나는 건강한 해소법 그런 거 없이 그냥 몸으로 현상이 직통으로 뚫렸다.
여태껏 예민한 사람인가 하고 살았지만
이번에는 힘들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어이없게 또 아파버리니 나는 내 그릇이 작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한껏 부푼 꿈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만 타고난 멘털과 체력에 맞게 살아야겠음을 느끼게 되었다. 나와는 다른 그릇을 가진 이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끌고 나아가는 것이 나를 해치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방향이었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는 중이다.
맛있는 빙수나 구수하게 속을 데워주는 된장국을 가득 담아줄 순 없어도 단 한 모금만으로도 향기로운 커피의 잔향까지 머금어주는 에스프레소 잔 같은 사람이 되겠다. 그것이 오늘이자 앞으로의 인생의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