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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디맨 Mar 21. 2019

영화 《우상》 후기

당신의 '우상'은 어떤 제물을 요구하는지요?

몰입도 최강! 그러나 완성도는 2% 부족!


결코 짧지 않은 144분이라는 런닝타임이지만 영화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영화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 걸맞은 연출과 구성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관객의 이해도를 높히기 위한 배려가 없다는 사실이다.

메인 포스터

이해도를 저하시키는 요소는 우선 배우들의 딕션이다. 

영화 전반을 통해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뿜어 낸 연기력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눌한 대사가 곳곳에 숨어 있다. 연변 출신으로서 흑룡강 억양을 흉내내는 설정도 관객으로 하여금 다이얼로그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마치 감독의 의도인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명회와 유중식

또 하나는 곳곳에 깔아 놓은 수 많은 실마리들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연결점을 찾지 못한다는 점이다. 흔히 스릴러물이나 수사물은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차츰 차츰 실마리가 풀리며 퍼즐 - 관객에 따라서 여러 개를 풀 수도, 혹은 몇 개만 풀 수도 있지만 어쨌든 문제와 정답이 있는 - 을 맞춰가는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내러티브의 근간이 되는 '사건'에 대한 정황 뿐만 아니라 실마리들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지점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한 마디로 '머리 아프고', '난해한' 영화의 전형을 따르는 듯 보인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결국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수진 감독은 스릴러 장르의 영화처럼 만들기는 했으나 실상 다양한 사건의 해석이  가능하도록 일부러 여러 가지 단서를 뿌려 놓았다고 볼수 있다. - 애초에 정답은 없다. 그는 우상에 대해 다른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스릴러물의 사건 해결이 관심사는 아니라는 말이다. 감독은 자신이 의도한대로 영화를 만든 것이다.


두 번째는 이수진 감독만의 특별한 스타일의 스릴러를 시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통상 스릴러물은 대단한 내용이나 의미를 담고 있다기 보다는 흥미진진한 과정을 즐기는 장르이다. 따라서 플롯이나 연출기법, 카메라 액션 등이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다. 실제로 클리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긴하다. 하지만 제작, 편집에서의 정교함이 조금 부족하다 보니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즉, 내공의 문제라는 것이다.

아들의 죽음으로 오열하는 유중식

필자의 생각은 당연히 후자 쪽다. 하지만 만약 전자였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감독이 일부러 딕션을 흐리게 하고, 실마리를 오픈 상태로 둔 것은 의도였다는 사실 정도는 관객이 인지할 수 있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관객들은 필자보다 더 많은 정보와 은유를 감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평균 수준의 관객이 알아 볼 수 있도록 장치하는 것은 대중영화에서 일종의 매너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마디로 매우 불친절한 영화다!




여기서 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신 분은 읽지 말아주세요.


사건의 해석은 영화 특성상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아래의 임의적인 해석에는 일부 오류가 있을 수도 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구명회(한석규 분)는 차기 도지사를 바라보는 소위 '잘 나가는' 정치인이다. 그러나 휴가 나온 아들이 교통사고를 일으킴으로써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한적한 해안도로를 달려 집으로 오던 아들의 차에 한 남자가 치여 죽게 된 것이다. 이 남자는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으로 지방의 어느 모텔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변을 당했다.

그의 아버지유중식(설경구 분)은 급작스런 아들의 죽음에 망연자실하지만 현장에 함께 있었을 며느리를 수소문해 찾으며 사건을 파헤치려 한다. 그러나 사건은 파헤칠수록 의문 투성이가 될 뿐이다. 구명회는 꼬리를 물고 드러나는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갖은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하고, 유중식은 억울한(?) 아들의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와중에 등장한 며느리 최련화(천우희 분)은 연변출신 중국동포로서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열혈의 캐릭터다.

이들은 한 사건을 중심으로 얽히게 되었으나 각 자가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우상에 빠져 있다. 추구하는 바를 얻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한다. 그 과정에서 살인을 비롯한 온갖 악행이 벌어진다. 그리고 결국 아무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사건이 종결되고 만다.

구명회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 정치인으로서의 생명도 끝났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팔아 연단에 서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유중식은 결국 자식을 잃고 후회한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던 이순신 동상 폭파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질타를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최련화는 일생의 목표였던 한국 국적 취득을 이루지 못한 채 불같은 생을 마감한다. 모두가 파국이다. 목이 떨어져 나간 동상이 그 허무함을 말해준다.

몰래 사건의 목격자를 찾으려는 구명회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출 20:4)

우상(偶像)

1. (신과 같이 섬기는 그림·조각) idol, image
2.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대상) idol, icon

                                                            -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사건의 목격자를 찾아 전말을 파헤치는 유중식

일반적으로 우상이라고 하면 어떤 형상화된 숭배의 대상물을 떠올린다. 하지만 요즘은 형이상학적인 어떤 것에 투영하는 경향이 강한 듯 하다. 지나치게 빠져있거나 과도하게 무엇인가를 추구할 때도 '우상'이라는 개념을 대입하곤 한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이 열렬히 과도하게 추구하는 어떤 것들을 우상으로 상정한 듯 보인다.


성경을 비롯한 많은 문헌에서 보여지는 우상들의 특징은 '믿을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 나무, 돌, 쇠붙이, 흙 따위로 만든 신불(神佛)이나 사람의 형상을 한 무생물이다. 설사 사람이나 어떤 신(?)이라고 하더라도 숭배자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대상이다.


또 하나는 숭배자들은 무엇인가를 원한다는 점이다. 즉, 숭배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고 그 근간은 바로 탐심이다. 또한 숭배자들은 그들의 목적하는 바를 얻기 위해 '바치는' 행위를 한다. 바로 예배(제사)다. 예배에는 제물에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의 주요 캐릭터들을 바라다 보자.

구명회(한석규 분)

그의 우상은 대중으로보터 얻는 <인기>다.

그는 한의사 출신으로 학벌이 변변치 않음에도 인터넷 상의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인이 되었다. 당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우측깜빡이를 켜고서 좌회전'하는 행보를 계속한다. 권력욕보다는 인기에 연연하는 단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들의 죄목이 시체유기보다 뺑소니가 낫다고 하는 이유가 단지 형량 차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입지의 유불리라는 사실은 그의 아내의 입을 통해 전해 준다. 


자신의 인기도에 치명적인가 아닌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사건의 목격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는 광분한다. 사건을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면 대중들에게 질타를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신분은 노출시키지 않고 흥신소에 몰래  의뢰해서 련화를 찾아낸다. 납치, 폭행과 약물까지 동원해 자백을 받아내는 잔인함을 보이지만 정작 사고장면을 목격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죽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신분을 눈치 챈 흥신소 사장을 죽인다. - 수고비 천만원이 아까워서가 아닌 것이다.


유중식이 련화의 국외추방을 막아달라고 부탁하자 자신의 선거유세 지원팀장을 맡아 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악재를 역이용하는 교활함을 드러낸다. 자살을 기도하고 입원한 아들의 바이탈사인이 꺼져가는 순간조차 외면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는 자신의 인기를 지키기 위해 모든 관계와 상황을 이용하고 희생시킨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불행(?)까지도 말이다.


련화의 보복으로 어머니와 아내가 죽고 자신도 크게 화상을 입지만 여전히 그는 대중들 앞에서 강연을 한다. 프롬프터로 일부만 보여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왜 자신이 성형을 끝끝내 안하는지 설파하며 대중들의 열광을 이끌어내려 안간 힘을 쓴다. 그러나 발음도 안되는 망가진 입으로 쏟아내는 국적불명의 언어에 청중들의 기계적인 반응만 할 뿐이다. - 무표정, 연설이 끝나자 수 초후에 일제히 박수만 친다.


대중의 인기를 맹목적으로 쫒지만 정작 소통은 안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 중국출장에서 귀국하는 구명회가 공항터미널 유리벽 바깥으로 당간부와 답답한 소통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구명회라는 캐릭터에 대한 암시다.


유중식(설경구 분)

그의 우상은 <연고(緣故)>다.

영화는 그의 배경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말이 약간 어눌하고 학력이나 신분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정보 밖에는 말이다. 그의 결혼이나 아내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들이 친자인지도 석연치 않고, 함께 동거하는 듯한 여자도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한 마디로 연고가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파헤쳐가는 능력은 매우 놀랍다. 그것은 지연(地緣)을 통한 처리방식이다. 유독 아들에 대해 애정을 쏫는 모습이나 아들의 아이를 임신한 며느리 련화에 대한 세심함은 그가 혈연(血緣)에 매우 집착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특히, 련화가 임신한 아이가 자신의 혈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씨(?)를 지키기 위해, 혹은 지켜주기 위해 혼인신고 - 아들이 죽었으니 본인이 련화의 호적상 남편이 되어주려한다 - 까지 하는 것은 가히 정상적인 수준을 뛰어 넘어서는 것이 분명하다.


'나라의 높은 양반의 머리를 잘라야'만 일이 풀릴 것이라는 무당의 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도지사가 된 구명회를 절단(?)내지 못하게 되자 대신 광화문 광장에 서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의 머리를 폭파하는 테러(?)를 일으키고는 구속된다. 결국 아들은 죽었고, 며느리와 호적상의 아들이 될 뻔한 뱃속의 아기도 죽었다. 다시 홀단신이 되어 사회와도 격리되는 신세가 된다.


영화의 오프닝은 보수중인 이순신 장군 동상과 유중식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사춘기 성욕으로 힘들어 하는 발달장애 아들의 딸따리(자위)를 대신 쳐주기가 버거워 신부감을 구해 주었지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 작금의 현실 속 푸념인 것이다.

최련화(천우희 분)

그녀의 우상은 <신분>이다.

변출신은 언제나 멸시와 차별의 대상이었다. 대개 중국동포가 그러하듯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일생의 목표가 되었다. 한국행을 위해 살인까지 한 그녀는 쫏기는 몸이 되었지만 혼인을 통해 한국에서 영주권을 얻으려는 집념은 사그러들 줄을 모른다.


목표달성에 지장이 생긴다면 함께 범죄에 가담한 사촌언니의 입에 황산을 뿌리는 만행도 서슴지 않는다. 혼인신고를 해주지 않는 전 예비남편(왜관 오모씨)도 절벽에서 밀어 죽이고, 자신의 목을 가지러 온 킬러를 오히려 죽여버리는 썸뜩함과 놀라운 광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을 협박하고 죽이려 했던 구명회와 그의 가족을 몰살하고 스스로 자살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구명회의 어머니가 죽은 이유는 말 때문이기도 하다. 하얼삔 출신을 흉내내는 연변족이라는 자신에 대한 지적 때문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입은 아이대오

칼로 그은 상처는 아물면 되지만 말로 인해 받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이다. 그 만큼 출신성분으로 인해 받은 그녀의 상처는 깊고 큰 것이었다는 반증일 터이다. 결국 련화 역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이 영화는 구명회, 유중식, 최련화 3명의 주요 캐릭터 간의 역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우상을 쫒아 광란의 질주를 보이지만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마는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비단 그들 뿐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아닐까?


구명회의 아내는 무엇보다 자식이 중요하다. 시체를 유기하고, 뻔뻔한 거짓진술을 늘어 놓는다. 아들의 범죄를 덮을 수만 있다면 그녀는 남편까지도 버릴 태세다.

구명회의 어머니는 돈이면 다된다. 초상집에서의 흥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구명회가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때 다시 통장에 넣어 놓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은 그녀의 성품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구명회의 지지자들은 그를 위해 거짓증언을 하기도 한다. 정치인을 우상으로 생각하는 대중들은 단지 정치인 개인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항상 바란다. 일종의 구복행위다.

대중들은 이순신 동상의 머리를 폭파한 것을 보고 '테러'라고 규정한다. 압송되어 가는 유중식에게 돌과 피주머니를 던지며 광분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대중들에게 영웅 이순신은 우상이기 때문이다.


구명회의 차 안에는 십자가와 염주가 동시에 걸려있다. 요즘의 종교라는 것도 사실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음을 넌지시 보여 주는 것 같다.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무엇을 믿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당간부가 구명회에게 넌지시 던진 이 말은 마치 현대 종교에 에 대해 비웃음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 이 영화에는 신체를 자르는 모티브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과연 '우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련화의 사촌 언니의 모가지 잘린 닭과 식칼이 클로즈 업 된 장면. - 신체절단의 메타포어이다.

결국 사촌언니는 중국에서 온 킬러에게 목이 잘려 죽는 것으로 나온다.

'나라의 높은 양반의 머리를 잘라야 한다'고 유중식에게 했던 무당의 말은 동상의 머리를 날리는 것으로 실현되었다.

구명회가 흥신소 사장을 차로 치여 죽이면서 팔목이 절단되고 목을 부러뜨리는 장면이 있었고,

련화를 죽이러 온 킬러는 사촌언니처럼 목을 자르기 의해 식칼과 목 담길 상자를 들고 왔고 역으로 련화에게 성기가 잘려 죽임을 당한다.


굳이 신체절단의 잔인한 장면을 삽입해 보여 준 목적은 어떤 상징성의 부여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바로 '인신제사'다.


주)신체절단이 없는 캐릭터는 죄없이 죽은 사촌언니 남편과 유중식의 아들 뿐이다. 최소한 그들은 영화 속에서는 우상과 관련이 없다.




우상의 역사는 참으로 인간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할 정도로 깊고 오래된 것이다. 우상에게 바치는 최상의 제물은 인신(人身)이 아니었던가?몰렉이나 부두교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앞서서 필자는 모든 사람들너나할 것 없이 우상을 섬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냥 자연스러운 욕구의 발현이라고 말하지 말라! 과한 것은 아니라고 자위하지 말!


그대가 추구하는 것이 이미 탐욕을 넘어선 우상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당신에게 제물을 요구할 것이다. 단순히 감정적, 정서적, 정신적 피해가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의 생물학적인 희생을 요구할 것이라는 말이다.


마지막 련화의 자살 장면에서 련화의 등에 칼이 꽂혀져 있다. 물론 자세한 경위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련화는 '우상'에게 자기 자신의 육마저도 바쳤다는 생각이 든다. - 칼 그리고 화염에 휩싸여 죽는 것은 일종의 번제다.


우상숭배는 결코 관념적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실질적인 문제다.


오늘 날의 교회는 성경구절을 왜곡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우상숭배(불신앙의 근본)를 관념적인 문제로 오도하게 만들고 있다. 역설적으로 불신앙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우상은 어떤 제물을 요구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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